"피곡(皮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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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1 기준 최신판



겉껍질을 벗겨내지 않은 곡식.

내용

피곡(皮穀)은 겉곡식, 즉 찧지 않은 상태의 곡식을 말하였다. 쌀을 예로 들면, 겉껍질을 포함하고 있는 벼를 말하며, 보리인 경우 겉보리[皮麥]를 일컬었다. 환곡 운영 시 피곡은 껍질을 제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대봉(代捧)할 때에 상대 비율이 달랐다. 피곡을 이용하여 단대봉하는 경우 원래의 곡물과 상대하여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곡은 크게 줄었고 역으로 피곡의 양은 크게 늘어났다. 이와 같은 방식을 이용하여 수령이나 이서들이 농간을 부릴 수 있는 여지들이 많았다.

게다가 환곡을 탕감할 경우 미곡(米穀)인 경우에만 해당되었으며, 피곡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방에서 진휼할 때에 쌀을 나누어 주는 대신 피곡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용례

我國糶糴之弊 北關尤甚 其弊之大者曰三剩 (중략) 三剩之弊 則前後屢登於道臣及繡衣之啓 今當申明其禁 一切以法從事 至若作米·作穀等名色 尤爲切骨之瘼 蓋作米之弊 專出於所謂皮雜穀代捧 而雜以戶式·土式等法於元還及新磨舊磨之間 所謂戶式者 卽戶曹元作穀式例 粟麥每二石七斗五升 稷耳牟木米三石十一斗零 各作田米一石者也 所謂土式者 卽各邑本土謬式田米一石代 粟麥各二石 稷及耳牟木米各三石者也 無論分給與收捧 純用土式 及夫元會穀田米計減時 則乃以戶式十三斗 計減以米 則每一石得三斗 皮穀則得十一斗二升零 本道列邑穀簿 多者十餘萬石 小不下五六萬石 而皮各穀常三分居二 以此推之 每年作米 何啻一二萬石(『순조실록』 20년 7월 23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대전회통(大典會通)』
  • 『홍재전서(弘齋全書)』
  • 『만기요람(萬機要覽)』
  • 『지호집(芝湖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