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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41 기준 최신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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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직부회시 |
한글표제 | 직부회시 |
한자표제 | 直赴會試 |
상위어 | 과거(科擧) |
관련어 | 급분(給分), 직부전시(直赴殿試), 사학합제(四學合製), 승보시(陞補試), 공도회(公都會), 전강(殿講), 춘추도기(春秋到記), 절일제(節日製), 황감제(黃柑製), 통독(通讀) |
분야 | 정치/인사/선발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김경용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직부회시(直赴會試)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46년 7월 6일, 『세종실록』 12년 7월 27일, 『세종실록』 15년 5월 17일, 『세종실록』 15년 8월 22일, 『세종실록』 15년 9월 11일, 『세종실록』 26년 2월 4일, 『세조실록』 5년 7월 9일, 『성종실록』 24년 5월 5일, 『중종실록』 2년 6월 2일 |
정규 과거 이외의 특별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었을 때에 초시를 면제하고 회시를 치르게 하는 특전.
개설
직부회시란 정규 과거 이외에 시행하는 과시(課試)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을 때, 초시를 거치지 않고 회시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직부회시의 특전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소과[생원·진사시]와 관련된 것과 문무과와 관련된 것이 있는데, 사학합제(四學合製)·승보시(陞補試)·공도회(公都會) 등은 소과와 관련되는 것이고, 전강(殿講)·춘추도기(春秋到記)·절일제(節日製)·황감제(黃柑製)·통독(通讀) 등은 문과와 관련되는 것이었다. 무과의 경우는 지역별 분야별로 각종 시험이 다양하게 있어 이에 따른 직부회시 조치가 내려졌다.
내용 및 특징
정규 과거 시행 이외에 각종 특별 시험을 치렀을 때, 성적의 고하에 따라 초시·회시를 면제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특전인 직부전시·직부회시·급분(給分)등의 시상을 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직부회시였다. 이에 대한 증명서를 승정원에서 발행하여 해당자에게 지급한 것을 직부첩이라고 하였다. 해당 직부 회시자가 회시에 나아가고 난 다음에는 성균관에서 직부첩을 회수하여 폐기시키고 그 사실을 기록하여 두었다.
당초에 문과 직부회시자는 식년시 회시에만 나아갈 수 있었으나 나중에 증광시 회시에도 나아가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영조대에는 식년시·증광시·별시 가운데(중) 원하는 바에 따라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영조실록』 46년 7월 6일).
- 00016211_그림1_윤교성의 직부회시첩, 1828년
위의 직부첩은 전강(殿講)에서 수석을 차지하였지만 임금의 친림(親臨) 전강이 아니기 때문에 직부회시를 받은 증명서였다. 임금이 친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직부전시를 주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변천
직부회시의 제도는, 과시(課試)에 우수한 성적을 거둔 유생에게 회시에 직부하는 특혜를 줌으로써 성균관의 삼일제와 구일제 춘추과시(春秋課試)와 사학(四學), 지방의 도회(都會)를 활성화하여 교육을 진흥시키려는 방책으로 모색되고 마련된 것이다.
1430년(세종 12)부터 모색되기 시작하여(『세종실록』 12년 7월 27일) 반대가 있긴 하였으나 결국은 춘추과시와 도회 모두에 대한 권학책으로서의 직부 규정이 다 마련되었다. 1432년(세종 14)에 사학의 도회에 대하여 제술·강경 우수자 각 학교에 5명씩을 생원회시에 직부하는 조치가 마련되었고, 1433년(세종 15) 5월에는 지방의 도회에 대해서도 사학의 예에 따라 각 도회소마다 우등자 3명을 생원회시에 직부하는 특혜가 규정되었다(『세종실록』 15년 5월 17일). 같은 해에 태학생에 대해서도 우등유생 10명을 문과회시에 직부하자는 대사성권채의 건의를(『세종실록』 15년 8월 22일) 예조와 상정소(詳定所)에서 의논하여 결정한 바 3년간의 성적을 통산하여 우등유생 5명을 문과회시에 직부하는 것으로 하였다(『세종실록』 15년 9월 11일).
이러한 직부법은 1444년(세종 26) 혁파되었다가(『세종실록』 26년 2월 4일), 1459년(세조 5) 성균관 춘추과시(春秋課試)에 따른 문과 직부회시법이 다시 시행되었다(『세조실록』 5년 7월 9일).
전강(殿講)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유생에 대해 문과 직부회시의 특혜를 주는 규정은 1493년(성종 24)에 마련되었고(『성종실록』 24년 5월 5일), 사학생도 가운데 제술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소과 직부회시의 특혜를 준 조치는 1507년(중종 2)에 나타났다(『중종실록』 2년 6월 2일).
이외에도 각 도의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도회(公都會)나 사학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학합제(四學合製)·승보시(陞補試)에 따른 소과 직부제와 관학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일제(人日製)와 칠석제(七夕製)·황감제(黃柑製)에 대한 문과 직부제가 시행되었으며,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새로운 고시제도로 바뀔 때까지 지속되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은대편고(銀臺便攷)』
- 김경용, 『장서각수집 교육·과거관련 고문서 해제(권1)』(장서각연구총서 2), 민속원, 2008.
- 김경용, 「조선시대 과거제도 시행의 법규와 실제」, 『교육법학연구』 제16권 2호, 대한교육학회, 2004.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직부제 운영 실태와 그 의미」, 『조선시대사학보』 제63집, 조선시대사학회, 2012.
- 최광만, 「17세기 과시제도의 형성과정」, 『교육사학연구』 제22집 2호 , 한국교육사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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