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문신(專經文臣)"의 두 판 사이의 차이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XML 가져오기)
 
(차이 없음)

2017년 12월 10일 (일) 02:39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경학 공부에 집중하도록 선발하여 교육시킨 연소한 문신.

개설

조선시대에는 경학(經學)을 진흥시킬 목적으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으며, 그 대상은 유생뿐만 아니라, 문과에 급제한 문신(文臣)에게도 해당되었다. 예조에서는 매 식년(式年)마다 37세 이상 41세 미만의 당하관(堂下官)으로서 사서오경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문신을 몇 명씩 선발하여 전경문신(專經文臣)이라 부르고, 1년에 네 차례 왕 앞에서 행하는 전강(殿講)에 응시하게 하였다. 전강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전경문신은 이후 승진에서 성적이 반영이 되었으며, 성적이 부진한 경우에도 경학 공부에 계속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문과에 급제하기 위하여 준비할 때는 물론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 전경문신이라면, 무신의 경우에도 같은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있었다. 무반 관원이 된 이후에도 계속 무경(武經) 공부에 전념하게 하기 위해서 40세 이하의 젊은 무신을 선발한 전경무신(專經武臣)이 그것인데, 이들 역시 전강에 응하게 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로 문반 관원을 선발하는 문과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 것이 경학(經學)이었다. 경학에 대한 강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관원이 된 문신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러나 맡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문신들이 경학 공부에까지 전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성종은 경학이 쇠퇴하는 풍조를 걱정하여 식년마다 경서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문신을 몇 명씩 선발하여 전경문신(專經文臣)이라 부르고, 이들을 대상으로 왕 앞에서 경서를 강독하는 전강을 실시하였다(『성종실록』 14년 1월 19일).

예조에서는 3년씩 돌아오는 식년마다 37세 이상 41세 미만의 당하관 중에서 전경문신을 선발하였으며, 1년에 네 차례 행하는 전강에 응시하게 하였다. 전강에서는 사서오경 중에서 한 대목을 추첨하여 시험하고, 성적은 우수하면 통(通), 보통이면 약(略), 미흡하면 조(粗), 낙제하면 불통(不通)으로 나누어 매겼다. 성종대의 사례를 보면, “왕은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전경문신 성희증(成希曾)·권주(權柱)·이오(李鰲)·이자견(李自堅)·유인홍(柳仁洪) 등 5명에게 강독을 시켰다. 성희증은 『시경』 「관저편(關雎篇)」을 강독하여 통을 획득하였으며, 유인홍은 『서경』 「우공편(禹貢篇)」에서 조를 받고, 나머지는 모두 불통하였다(『성종실록』 18년 12월 6일).”

전강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전경문신은 이후 승진에서 성적이 반영이 되었다. 그러나 전강의 성적이 부진하여 불통을 받은 경우에도 승진 상의 불이익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성록』에 나타난 정조대 사례를 보면, 왕이 불통을 맞은 전경문신만을 대상으로 전강을 실시하고, 전경문신으로서 불통을 맞은 사람들을 입직(入直), 즉 당직에서 교체해 주라는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었다. 이는 전경문신을 설치한 목적이 경학의 발전을 위해서이니만큼, 전경문신이 경서 공부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경학 공부에 전념하도록 선발하여 교육시킨 연소한 문신을 전경문신이라고 한다면, 무신 중에서도 40세 이하의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무경(武經) 공부에 전념하도록 뽑은 전경무신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전강에 응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전경무신과 관련된 자료는 주로 영조 이후에 나타나며, 전경무신을 대상으로 하는 전강은 전경문신 전강과 함께 실시되기도 하지만, 각각 별도로 실시되는 경우도 많았다(『영조실록』 26년 12월 18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