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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8 기준 최신판



1년의 처음과 달의 처음이라는 의미로, 정월 초하루 또는 책력(冊曆)을 지칭하는 용어.

개설

정삭(正朔)은 음력에서 새로운 달의 시작이 되는 기점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국 황제가 반포하는 책력을 의미하였다. 정삭을 사용함은 중국의 시간 질서를 따르는 것으로 중국 연호와 함께 중국에 사대(事大)를 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정삭을 사용하다가 현재의 양력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96년부터이다.

내용 및 특징

정삭은 새 달[新月]이 초하루가 되도록 달의 대소(大小)를 적당히 배정하는 역법(曆法)을 의미한다. 역법은 태양이나 달의 운동과 같은 천체의 천문학적 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과거에 오랫동안 사용한 역법은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었다. 태음태양력은 달에 의한 삭망월과 태양에 의한 회귀년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가 역법의 근본이 된다. 음력의 기준이 되는 초하루, 즉 삭(朔)과 양력의 기준이 되는 기(氣)를 기본 요소로 하여 기와 삭을 맞추는 것이 기본 원리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음력이라는 것은 달의 주기와 24절기로 대표되는 태양의 주기가 혼합된 태양태음력이다.

우리나라의 종래 역법은 중국의 역법을 그대로 받아 써왔는데 해와 달에 의한 단순한 음양력(陰陽曆)으로부터 시작하지만 한(漢)나라의 태초력(太初曆) 이후부터는 음양력의 추산뿐만 아니라 일월식(日月食)의 추보(推步)와 오행성의 운행과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 등이 포함된 광범위한 내용의 천체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에 한대(漢代)에 들어서 왕조의 교체에 따라 “정삭을 고친다.”라는 원리가 확립되었고 그 후 왕조의 교체에 따라 천명사상(天命思想)에 입각한 개력(改曆)이 행하여졌다. 왕조 교체에 따른 개력은 ‘수명개제(受命改制)’라는 이데올로기가 뒷받침된 것이었다.

개력의 주된 내용은 윤달을 넣는 방법인 치윤법(置閏法)과 크고 작은 달의 배치법(配置法) 그리고 절기(節氣)와 삭을 정하는 방법과 1년이나 1달의 길이 등을 나타내는 천문 상수의 개정을 포함하였다. 또한 개력의 과정을 통하여 역 계산의 방법과 천문 상수값들이 점차 개량되고 정밀화하였다. 그리고 관측 기술의 발달에 따라 해와 달의 운동에 빠르고 느림의 현상이 있다는 사실과 황도와 백도의 교점이 이동하며 동지 때 태양의 위치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발견되면서 관측으로 얻은 값들을 처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즉 중국의 역법은 정확한 관측과 이를 처리하는 계산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음력의 어느 달을 해의 시작점으로 하는가 하는 것이 정삭의 문제인데, 이는 각 왕조별로 달랐다. 하(夏)나라는 인월(寅月)인 1월이었으나 뒤를 이은 상(商)나라는 축월(丑月)인 12월이었고 주(周)나라는 자월(子月)인 11월이었으며 진(秦)나라는 해월(亥月)인 10월이었다. 뒤를 이은 한(漢)나라는 건국에서 기원전 104년까지는 해월을, 그 이후는 인월을 썼으며, 위(魏)나라는 220년부터 237년까지는 인월을, 237년에서 239년까지는 축월을, 239년 이후에는 인월을 번갈아 썼고, 당(唐)나라도 700년부터 761년까지 자월과 인월 등을 번갈아 썼다. 기타의 모든 중국 왕조는 인월을 썼으며 현재의 음력도 인정 기준이다.

변천

조선은 정삭에 외교 의례로 중국 황제를 알현하는 사신을 보냈다. 정삭을 받는 일은 곧 황제로부터 역서(曆書)를 받아옴을 뜻하고 이는 조공의 예와 함께 중국에 대한 사대 행위 중의 하나였다. 세종 때 박연(朴堧)은 “주나라는 자월로 세수(歲首)를 삼고, 상(商)나라는 축월로 세수를 삼았으며, 하나라는 인월로 세수를 삼았으니, 성인(聖人)의 제도도 같지 않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정삭의 기준은 정해진 규율이 없는 것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 12년 2월 19일). 조선시대 내내 명나라와 청나라의 정삭을 받아 썼는데, 중국의 정삭인 음력 대신에 서양 역인 태양력(太陽曆)으로 개력을 단행한 것은 1895년(고종 32)이다. 고종은 대한제국 건국과 함께 “삼통(三統)의 삭일(朔日)을 교대로 쓰는 것은 때에 따라 알맞게 정한 것이니 정삭을 고쳐 태양력을 쓰되 개국(開國) 504년 11월 17일을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중국의 시간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참고문헌

  • 김일권,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박성래, 「수시력의 수용과 칠정산의 완성」, 『한국과학사학회지』, 2002.
  • 전상운, 『세종문화사대계』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 정성희, 『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책세상, 2000.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1­6, 明文書局, 1984­1990.
  • Needham, Joseph.,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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