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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8 기준 최신판



1880년(고종 17) 주일본 청국공사관에 근무하던 황준헌이 조선의 외교 방향과 국제 정세를 논한 책.

개설

1880년 김홍집(金弘集)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주요 임무는 일본공사의 도성 내 거주와 관세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일본 청국공사관을 방문하여 공사하여장(何如璋)에게 국제 정세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어서 공사관 직원이었던 황준헌(黃遵憲)으로부터 조선이 취할 외교 노선이라고 하며 건네 준 『조선책략(朝鮮策略)』을 받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의 외교 노선은 청국과 친밀해야 한다는 ‘친중(親中)’, 일본과 결탁해야 한다는 ‘결일(結日)’,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는 ‘연미(聯美)’가 주요 골자였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조건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는 방아책(防俄策)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김홍집이 귀국하여 이 책을 고종에게 보고한 뒤 조정과 민간에 그 내용이 알려지면서 소위 위정척사파들로부터 호된 비판이 일었다. 화이론적 세계관을 견지하던 위정척사파들은 미국과 일본 같은 이적과는 절대로 결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고종과 정부 관료들에게 러시아의 남하를 환기시켜 두만강 연변의 관리에 치중하게 하였으며, 주변 열강을 상대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종실록』 17년 9월 8일 1번째기사].

내용 및 특징

김홍집이 주일청국공사관원인 황준헌에게 받은 『조선책략』은 그가 수신사로 일본 동경에 체류하며 습득한 국제 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김홍집이 수신사로 체류한 것은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 정도이지만 그가 목도한 세계정세는 더 이상 조선의 화이관(華夷觀)으로는 서구 열강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국제 정세로 통상하지 않는 국가는 도태된다는 것도 인지하였다. 이런 국제 변화에 대해 청나라와 일본의 정치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조언하였다. 그런데 청나라와 일본의 정치가들이 김홍집에게 만국공법 체제를 받아들이라면서 강조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이었다. 청나라는 러시아에 북경조약으로 연해주를 내주고 이리에서도 국경 분쟁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일본은 사할린을 분할한 사례가 있어서 양국 모두 러시아를 잠정적인 적국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정부가 서구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고 만국공법 체제에 들어가야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물론 청나라와 일본과의 결속도 강조하였다. 황준헌의 책은 이런 시대적인 정치, 외교적 고려가 담긴 것이었다.

김홍집이 일본을 떠나기 며칠 전인 9월 6일에 황준헌이 자신의 저서 『조선책략』을 전달하였다. 이 책에 담긴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러시아의 위험을 예방해야 한다는 방아론(防俄論)이 기본 내용이다. 국제 정치 질서에서 볼 때 조선이 영국의 세력 범위에 속해야 되며, 동북아시아의 정세로 본다면 조선, 청국, 일본이 공동으로 러시아의 남하에 대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방법으로는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이었다.

2. 조선정부는 청나라의 지휘를 받으며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속방론(屬邦論)이었다.

3. 새로운 일본관의 제시와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것을 강조하였다. 조선이 전통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이적과는 상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선책략』은 조선정부가 서양의 국제법 질서에 편입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의 국제 질서가 전국시대보다 더 대결하고 있음에도 각 국가들이 유지되는 것은 세력 균형 원칙이라며 만국공법 체제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다만 조선정부가 새로운 외교 노선을 취하려 한다면 반드시 청나라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조선책략』은 조선이 청나라의 속방인 상황에서 공법 질서에 편입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서양 열강과 평등한 조약을 체결하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변천

고종과 중앙 관료들은 이 책의 영향으로 러시아는 추위를 피해 남하하면서 조선의 땅과 인민을 욕심내지만, 유럽과 미국은 이득만을 바란다고 생각하여 청나라인의 의도대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을 조선에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이라며 그들의 정책을 간파하는 모습도 있었다(『고종실록』 17년 9월 8일).

이 책의 영향으로 조정과 민간에서는 위정척사의 찬반론에 휩싸였고, 갑신정변으로 인한 원세개의 등장과 개화파의 일본 망명은 조선이 독자적으로 국제 질서에 참여하는 길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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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성록(日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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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