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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7 기준 최신판



1795년(정조 19) 생생자(生生字)를 바탕글자로 제작한 금속활자.

개설

정리자는 1795년에 『정리의궤(整理儀軌)』를 인출하기 위하여 주조되었다. 1792년(정조 16)에 사고전서 중에 취진판 『자전(字典)』의 글자를 바탕글자로 삼아 황양목을 사용하여 만든 생생자를 정리자의 바탕글자로 삼은 것은 자체(字體)가 보기 좋고 정교하였기 때문이다. 이 활자로 처음 간행된 책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의 서명에 의거하여 그 활자 명칭을 정리자(整理字)로 정하였다.

내용 및 특징

정리자는 1795년(정조 19) 11월 2일부터 1796년 3월 16일까지 135일간에 걸쳐서 약 300,000자(대자 160,000자 소자 140,000자)로 제작되었다. 주조에 착수한 해의 간지(干支)에 의거하여 을묘자(乙卯字)라고도 불리는 이 활자는 중자(中字)의 자획이 굵고 힘 있는 인서체이며 소자(小字)는 가늘고 정교한 인서체이다.

정리자 주조의 주된 배경은 기존의 활자가 크기가 고르지 않아 인쇄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리자는 대개 그 만든 방식이 가지런하여 조금도 틈이 없고 또 류마다 묶어 입출하는 방법이 있어서 전에 주조한 활자에 비해 매우 간소하고 빨라서 비용과 노력을 감소시킨 것이 배나 되었다.

금속활자인 정리자 주조를 위해서 사용된 재료는 동철 1,400근, 주철 600근, 유랍 250근이며, 비용은 호조의 공장들의 급료와 백성들의 구휼을 위해 조성한 정리곡(整理穀)으로 충당하였다. 주조 감독관으로는 규장각 직제학이만수(李晩秀)와 규장각 원임직각윤행임(尹行恁) 등이었다.

이 활자는 1857년(철종 8) 10월 창경궁 내 화재로 주자소(鑄字所)가 연소되었을 때 모두 소실되었다. 이듬해인 1858년(철종 9)에 한구자(韓構字)와 함께 다시 주조하게 하여 9월 18일에 완성되었는데 이를 재주정리자(再鑄整理字)로 부른다. 규장각 검교제학김병기(金炳冀)와 규장각 제학윤정현(尹定鉉) 및 규장각 제학김병국(金炳國) 등이 활자의 주조를 주관하였는데, 정리자 대자 89,203자와 소자 39,416자를 주조하고 한구자 31,829자가 주조되었다. 재주정리자는 당시 소실되고 남은 완전한 활자 175,698자와 함께 주자소에 저장시켰다.

정리자의 인본은 생생자와 매우 흡사하여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생생자의 자보(字譜)인 『생생자보(生生字譜)』, 『어정인서록(御定人瑞錄)』등이 명확한 생생자본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정리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초주정리자본으로 알려진 책으로는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원행을묘정리의궤』,『태학은배시집(太學恩杯詩集)』『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 『진찬의궤(進饌儀軌)』, 『풍고집(楓皐集)』, 『홍재전서(弘齋全書)』 등이 전한다.

변천

정리자는 1796년(정조 20) 3월 16일 완성된 초주정리자와 1858년(철종 9) 9월 18일 완성된 재주정리자로 구분된다. 1857년(철종 8) 10월 창경궁 내 화재로 인해 주자소가 연소되었을 때 초주정리자는 모두 소실되었고, 이듬해인 1858년에 다시 주조케 하여 재주정리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재주정리자는 초주정리자에 비하여 인쇄된 서적의 상태를 비교해 볼 때 정교도가 약간 떨어지지만 구한말까지 각종 교과서, 관보, 법령, 조약문 등을 간행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정리자의 실물은 1911년 6월 1일에 궁내부규장각에서 총독부취조국으로 인계되었고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이 활자와 조선시대의 조판틀을 이용하여 조립판을 견본용으로 만든 것이 국립민속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중자, 소자가 남아 있다.

의의

정리자는 정조가 문예부흥정책에 치중하면서 역대 선왕의 인쇄정책을 계승하고 종래의 활자를 개주하는데 힘쓰는 가운데 청나라의 인쇄문화를 수용해 새로운 글자 모양을 만들어낸 것 중의 하나이다. 정리자는 활자의 배열도 간편하고 빨라서 비용과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중국의 취진판식보다 더 나아서 책을 간행한 이래로 드러나지 않았던 비법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고 하였다. 이는 활자조판 방식의 획기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규격화된 활자의 생산으로 정형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김두종. 『한국고인쇄기술사』, 탐구당, 1974.
  • 백린, 『한국도서관사연구』, 한국도서관협회, 1969.
  • 윤병태, 『조선후기의 활자와 책』, 범우사, 1992.
  • 천혜봉, 『한국금속활자본』, 범우사, 1993.
  • 김문식, 「『정리의궤』의 간행을 위한 활자 整理字」, 『문헌과 해석』10호, 2000.
  • 남권희, 「韓國 古活字 特別展의 展示資料에 대한 槪觀」, 『한국 古活字 특별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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