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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 02:37 판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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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이포 |
한글표제 | 이포 |
한자표제 | 里布 |
상위어 | 군역(軍役), 군포(軍布) |
동의어 | 동포(洞布) |
관련어 | 호포제(戶布制), 공동납(共同納), 총액제(摠額制) |
분야 | 경제/재정/역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이포(里布) |
집 주변에 뽕나무와 삼을 심지 않은 자에게 징수하는 세금.
개설
이포(里布)는 중국 고대에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뽕나무와 삼[麻]을 심지 않는 자에게 벌로써 세를 징수하던 제도였다.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 하(下)는 “집 옆에 뽕나무와 삼을 심지 않는 자[宅不毛者]는 이포(里布)가 있다.” 하였다. 조선초기 관료들은 이러한 『주례』의 이포제(里布制)를 채용하여 농상을 장려하자고 주장하였다.
내용 및 변천
조선시대에 이포제가 실제 시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김용섭, 『(증보판)한국 근대 농업사 연구(상): 농업 개혁론·농업 정책』, 일조각,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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