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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안기역(경상도)]] |
− | | + | *[[안기역(경기도)]] |
− | {{집단기구|대표표제=안기역|한글표제=안기역|한자표제=安奇驛|대역어=|상위어=평구도(平丘道)|하위어=|동의어=|관련어=경기강원도정역찰방(京畿江原道程驛察訪), 안수역(安遂驛), 역도(驛道), 역로(驛路), 춘주도(春州道), 포천(抱川)|분야=경제/교통/육운|유형=집단·기구|지역=포천|시대=조선|왕대=|집필자=정요근|설치시기=고려|폐지시기=1896년(고종 33) 1월|소속관서=병조|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06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0204011_006 『성종실록』 2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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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경기도 포천에 위치했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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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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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안기역(安奇驛)은 포천(抱川) 북쪽 4리(약 1.6㎞) 지점에 위치하였다. 안기역은 고려시대 춘주도(春州道)에 편제되었던 안수역(安遂驛)의 후신으로 여겨지며, 조선시대에는 평구도(平丘道) 소속 역(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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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 및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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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기역은 고려시대 춘주도에 소속되었던 안수역의 후신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안수역은 포주(抱州: 현 포천)에 위치하였다. 조선시대 들어서 안기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경기강원도정역찰방(京畿江原道程驛察訪) 소속의 역으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이후 1465년(세조 11)에 경기강원도정역찰방 관할하의 역들 중에 녹양역(綠楊驛)과 안기역, 양문역(梁文驛) 등 경기도에 위치한 3역은 평구도로 이속되었고, 강원도에 위치했던 나머지 역들은 은계도(銀溪道)로 별도 설정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204011_006 『성종실록』 2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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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안기역은 평구도 소속 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후기까지도 변화가 없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안기역에는 역마(驛馬) 9마리, 역노(驛奴) 15명, 역비(驛婢) 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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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기역은 한양에서 강원도 회양과 철령을 거쳐 함경도 방면으로 향하는 간선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남쪽으로는 양주의 녹양역, 북쪽으로는 영평의 양문역과 연결되었으며, 동남쪽으로는 가평의 연동역(連洞驛)과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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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안기역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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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기역의 위치는 현재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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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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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국대전(經國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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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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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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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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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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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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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ml><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606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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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경제]][[분류:교통]][[분류:육운]][[분류:집단·기구]][[분류:포천]][[분류: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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