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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대표표제=관령|한글표제=관령|한자표제=管領|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막부(幕府)|분야=정치/행정/관속|유형=직역|지역=일본|시대=조선시대|왕대=세종~연산군|집필자=김동철|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071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102006_004 『세종실록』 21년 2월 6일]}}
 
 
 
일본 중세에 족리씨(足利氏)가 세운 무로마치 막부(幕府)의 재상직(宰相職).
 
 
 
=='''내용'''==
 
 
 
관령(管領)은 막부장군(幕府將軍)을 보좌하고 정무를 총괄한 관리로서, 관직과 영지(領地)를 관리·지배한다는 의미이다. 막부장군의 일족인 세천씨(細川氏)·전산씨(畠山氏)·사파씨(斯波氏)에서 교대로 임명되었다. 막부장군이 어릴 때에는 장군의 권력과 국정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1467년(세조 13) 오닌[應仁]의 난을 겪으면서 막부의 권력이 쇠퇴하자 그와 함께 권한이 유명무실해졌다.
 
 
 
조선에서는 관령의 지위를 인정하여 통신사 파견 때 백세면주(白細綿紬) 10필, 백세저포(白細苧布) 1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10필, 잡채화석(雜彩花席) 15장, 표피 2령, 호피 4령 등 막부장군 다음가는 예물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본 국왕사의 예처럼 관령의 사절도 대마도주의 [[문인(文引)]] 없이 조선에 도항하여 접대를 받도록 하였다.
 
 
 
=='''용례'''==
 
 
 
日本國王使人 及管領武衛使人 則不問宗貞盛文引有無許納 其餘使人 考其宗貞盛文引有無接之([http://sillok.history.go.kr/id/kda_12102006_004 『세종실록』 21년 2월 6일])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관속]][[분류:직역]][[분류:일본]][[분류:조선시대]][[분류:세종~연산군]]
 

2018년 1월 24일 (수) 22:10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