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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대표표제=창진집|한글표제=창진집|한자표제=瘡疹集|대역어=|상위어=잡학(雜學), 의학(醫學)|하위어=|동의어=|관련어=의방유취(醫方類聚), 의서(醫書)|분야=정치/인사/선발|유형=문헌|지역=|시대=|왕대=|집필자=안상우|저편자=|간행처=|간행년일=|권책수=|사용활자=|표제=|소장처=|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630|실록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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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전|대표표제=창진집|한글표제=창진집|한자표제=瘡疹集|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의학서|유형=한문|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세조|집필자=성낙수|저편자=임원준(?)|간행처=미상|간행년일=1460|권책수=미상|사용활자=미상|표제=미상|소장처=없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382|실록연계=}}
  
조선전기에 소아 전염병인 두창과 마진을 치료하기 위하여 편찬한 방역 전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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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세조 때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창진(瘡疹)에 관한 의서(醫書)이다.
  
 
=='''개설'''==
 
=='''개설'''==
  
『창진집(瘡疹集)』은 세종대에 편찬한 『창진방(瘡疹方)』을 전범으로 하여 세조대에 임원준(任元濬)이 편찬한 것으로 조선전기 방역 전문서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책이었다. 현전본은 을해자로 간인한 3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국내에는 전해지는 것이 없고 중국 절강성도서관에서 발견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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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옛 의학서의 하나로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준(任元濬)이 1460년(세조 6년)에 편찬하였다고 하나, 저자는 확실하지 않다. 『창진집(瘡疹集)』은 유실되어 오늘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책의 규모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허준(許浚)이 쓴 『두창집요(痘瘡集要)』에 인용된 『창진집』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보면, 『창진집』은 천연두와 홍역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과 예방에 대하여 써 놓은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편찬되기 전까지는 홍역과 천연두에 관한 내용만을 쓴 책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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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책은 당시 천연두와 홍역을 치료하고, 미리 막기 위한 의사들의 활동에서 귀중한 참고서로 이용되었다. 『창진집』은 1462년(세조 8)에 의서 습독관들의 필독서로 규정되었고, 1464년(세조 10)과 1471년(성종 2)에는 의사 양성을 위한 강의록으로 이용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창진집』은 의사들의 필독서라는 것을 법적으로 밝혀 놓았다. 1518년(중종 13)에 김안국(金安國)이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창진방(諺解瘡疹方)』을 팔도에 배포했다는 자료가 있는데, 이것이 다름 아닌 『창진집』이다.
  
 
=='''편찬/발간 경위'''==
 
=='''편찬/발간 경위'''==
  
원래 세종대에 찬집한 『창진집』(혹은 창진방)이 있었으나 실물이 전해지지 않으며, 1457년(세조 3)에 왕명으로 임원준이 세종대의 것을 개편하고 이극감(李克堪)의 산정(刪定)과 이예손(李禮孫)의 수교(讐校)를 거쳐 펴냈다. 이 책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학권징(醫學勸懲) 조항에 오를 정도로 비중 있는 전염병학 교과서였으며, 여러 차례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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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망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창진방(瘡疹方)』이라고도 하는데, 임원준이 편찬했다고는 하나, 저자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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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때 의원취재(醫員取才) 강서(講書)로 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의과취재(醫科取才) 강서로 채택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인(醫人)들 간에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선조 말경 허준은 이 책을 개편하여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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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세조 6)에 당시 임금이었던 세조가 백성들 사이에 만연하는 여러 질병 중 천연두와 홍역이 민생에 가장 치명적이라 여기고, 왕명을 내려, 따로 편찬하게 한 의서로 이 책이 편찬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천연두, 홍역에 관한 내용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의학 서적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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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만들어진 후 의과취재(醫科取才)의 강서로 채택되었으며, 초시(初試) 또는 관학(官學)에서 교본으로 사용되며, 주요 의서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의서 습독관들의 필독서로 규정되었다.
  
=='''서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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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년(중종 13)에 김안국이 『창진집』을 한글로 번역하여, 『언해창진방』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을해활자로 인쇄한 책으로, 중국 절강성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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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에 만들어진 『창진집』 원본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다만 이 책을 번역하던 김안국이 그 내용을 참고하여, 1517년(중종 12)에 저술한 『창진방촬요(瘡疹方撮要)』가 현재 전하고 있으며, 또한 허준이 1608년(선조 41)에 저술한 『언해두창집요』는 이 책의 내용을 개편, 언해한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창진집』 원본은 사라졌지만, 그 책의 내용들은 저 두 의서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성/내용'''==
 
=='''구성/내용'''==
  
두창(痘瘡)과 마진(麻疹)은 소아의 전염성 질환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할 정도로 그 유래가 길다. 유아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질환이었으며, 의원들로서는 조선시대 내내 끈질긴 싸움을 벌여야 했던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역대 의서 소아 부문의 태반이 이 병의 처치에 관한 치론(治論)으로 할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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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일상화된 두창, 창진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두창, 창진에 대한 치료법을 익히고, 또한 전문 의사를 육성하는 길이었다. 두창, 창진에 대한 최초의 전문서적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창진집』이다. 15세기 전반 세종이 내의원(內醫院)에 모든 처방집을 수집케 하는 가운데 창진에 관한 것만을 따로 묶어,『창진집』으로 만들었으며, 세조는 책에 미비함을 임원준, 이극감(李克堪) 등에게 교정, 보완하도록 하여 간행하였다.
  
『창진집』은 조선전기 방역 전문서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책이다. 원래 세종대에 찬집한 『창진집』(혹은 창진방)이 있었으나 실물이 전해지지 않으며, 1457년(세조 3)에 왕명으로 임원준이 세종대의 것을 개편하고 이극감의 산정과 이예손의 수교를 거쳐 펴냈다. 이 책은 『경국대전』의 의학권징 조항에 오를 정도로 비중 있는 전염병학 교과서였으며, 여러 차례 간행되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전하는 것은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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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1462년에는 예조(禮曹)에서 의서습(醫書習) 독관(讀官)을 여장(勸獎), 서용(敍用)하기 위한 조치로써 읽어야 할 의서 중의 하나로이 책을 포함하였으며, 예조에서 의원을 취재 할 때에 시험을 보는 의서로써, 정·종 5품에게는이 책을 포함시켰다.
  
책에 실린 내용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과 더욱 밀접한 상관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의방유취』「소아 진두문(疹痘門)」의 내용을 분류, 재편하여 증보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1459년(세조 5)부터 시작된 『의방유취』의 교정 직전 산물이며, 세종대 초편본에 담긴 창진 관련 내용을 한층 심화시켜 전문 의서로 개편한 것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는 중요 구절마다 해설과 음훈을 주석으로 달아[遇有難解 略爲附註―自序] 교과서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상·중·하 3권으로 편제된 책은 상권에서 이론 부분을 제가론(諸家論)으로 요약정리하고, 중권과 하권의 치료 처방편은 창진의 예방(豫防)·발출(發出)·화해(和解)·구함(救陷)·소독(消毒)·호안(護眼)·최건(催乾)·멸반(滅瘢)·통치지제(通治之劑) 9가지로 분류해 시기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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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국내에 전해지는『창진집』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중국 절강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국내로 복사하여 가져와 영인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것은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책이 어떠한 연유로 중국에 전해져 절강성에 보관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는 까닭에 그 자세한 사정은 파악할 수가 없으나,『창진집』 서문에 의하면 처음 편찬·간행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 세종 때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임원준은 1445년(세종 27) 『의방유취』 초편에서부터 세조대의 교정, 1477년(성종 8)의 간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두루 간여하였으며, 뛰어난 의술을 인정받아 입신양명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과거 시험의 부정 사건과 정실 인사,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정치적 알력에 휘말리는 등 파란 많은 인생을 겪었지만 의학에 정통하여 의학 발전과 교육에서 적지 않은 공적을 이루었다. 그는 세조가 친찬(親撰)한 『의약론(醫藥論)』을 주해하고 인반(印頒)하였으며, 의학습독교수를 역임하면서 당대 의료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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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연대기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
  
이 책은 그간 일본에 조선 초본이 남아 있다고 전해질 뿐 간본(刊本)을 볼 수 없었는데 근년에 중국 절강성도서관에서 발견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의방유취』와 마찬가지로 을해활자로 인쇄되었고, 저술 시기로 보아 이 활자로 찍은 책으로서는 초기 인본(印本)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조가 즉위년에 만든 을해자는 강희안(姜希顔)의 서체를 받아 안평대군(安平大君)의 필체로 만든 경오자(庚午字)를 녹여 주조한 것이다. 특히 중권 첫 면의 하단에 큼지막한 직사각형의 관인이 찍혀 있고 그 옆에 ‘내의원(內醫院)’이라고 첨서(僉署)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내의원에 비치해 두고 사용하던 책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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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진집』은 원래 총 3권이며, 상권은 ‘제가론(諸家論), 중권은 ‘예방지제(預防之劑), 발출지제(發出之劑), 화해지제(和解之劑), 구함지제(救陷之劑), 소독지제(消毒之劑), 획안지제(護眼之劑), 하권은 최건지제(催乾之劑), 반지제(瘢之劑), 통치지제(通治之劑), 금기(禁忌)’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한 가지(1가지) 중요한 점은 책의 부록으로 붙어 있는 『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에 두창에 관한 임증례가 실려 있어 실전 의서인 『본조경험방』의 편린(片鱗)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대에 기록된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서문에는 김안국(金安國)이 『창진방』과 『벽온방(辟溫方)』을 언해하여 팔도에 보냈다고 되어 있었다. 이때 쓰인 창진방이 임원준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임진왜란 직전에 권문해(權文海)가 지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창진조」에도 “의서로 『창진방집(瘡疹方集)』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 임원준이 지은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 『동의보감』「소아문」의 두창에도 『창진집』의 내용이 적지 않게 채록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1608년(선조 41) 허준에 의해 『두창집요(痘瘡集要)』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염성 질환의 주요 의서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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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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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조선 초기에 두창을 치료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였으며, 어떤 치료법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한국한의학연구원 편, 『의성허준저작집』해제 , 한국한의학연구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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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욱, 『강좌 중국의학사』, 대성의학사, 2006.       
*안상우, 「『瘡疹集』-의방유취 편찬의 열쇠」, 『고의서산책』 39회, 민족의학신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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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종,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 탐구당,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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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諺解痘瘡集要의 의사학적 고찰」,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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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조선시대 전기」, 『한국전염병사』, 대한감염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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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조선 세조 년간의 의학정책과 의관들의 활동」,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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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역대 한국의학문헌의 복원 연구』, 한국한의학연구원, 2008.    
  
[[분류:정치]][[분류:인사]][[분류:선발]][[분류: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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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의학서]][[분류:한문]][[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세조]]

2018년 1월 8일 (월) 15:48 기준 최신판



이 책은 조선 세조 때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창진(瘡疹)에 관한 의서(醫書)이다.

개설

이 책은 옛 의학서의 하나로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준(任元濬)이 1460년(세조 6년)에 편찬하였다고 하나, 저자는 확실하지 않다. 『창진집(瘡疹集)』은 유실되어 오늘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책의 규모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허준(許浚)이 쓴 『두창집요(痘瘡集要)』에 인용된 『창진집』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보면, 『창진집』은 천연두와 홍역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과 예방에 대하여 써 놓은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편찬되기 전까지는 홍역과 천연두에 관한 내용만을 쓴 책은 따로 없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당시 천연두와 홍역을 치료하고, 미리 막기 위한 의사들의 활동에서 귀중한 참고서로 이용되었다. 『창진집』은 1462년(세조 8)에 의서 습독관들의 필독서로 규정되었고, 1464년(세조 10)과 1471년(성종 2)에는 의사 양성을 위한 강의록으로 이용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창진집』은 의사들의 필독서라는 것을 법적으로 밝혀 놓았다. 1518년(중종 13)에 김안국(金安國)이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창진방(諺解瘡疹方)』을 팔도에 배포했다는 자료가 있는데, 이것이 다름 아닌 『창진집』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망실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창진방(瘡疹方)』이라고도 하는데, 임원준이 편찬했다고는 하나, 저자는 확실하지 않다.

세조 때 의원취재(醫員取才) 강서(講書)로 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의과취재(醫科取才) 강서로 채택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인(醫人)들 간에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다. 선조 말경 허준은 이 책을 개편하여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를 간행하였다.

1460년(세조 6)에 당시 임금이었던 세조가 백성들 사이에 만연하는 여러 질병 중 천연두와 홍역이 민생에 가장 치명적이라 여기고, 왕명을 내려, 따로 편찬하게 한 의서로 이 책이 편찬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천연두, 홍역에 관한 내용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의학 서적이 따로 없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후 의과취재(醫科取才)의 강서로 채택되었으며, 초시(初試) 또는 관학(官學)에서 교본으로 사용되며, 주요 의서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의서 습독관들의 필독서로 규정되었다.

1518년(중종 13)에 김안국이 『창진집』을 한글로 번역하여, 『언해창진방』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세조대에 만들어진 『창진집』 원본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다만 이 책을 번역하던 김안국이 그 내용을 참고하여, 1517년(중종 12)에 저술한 『창진방촬요(瘡疹方撮要)』가 현재 전하고 있으며, 또한 허준이 1608년(선조 41)에 저술한 『언해두창집요』는 이 책의 내용을 개편, 언해한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창진집』 원본은 사라졌지만, 그 책의 내용들은 저 두 의서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성/내용

조선 초기에 일상화된 두창, 창진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두창, 창진에 대한 치료법을 익히고, 또한 전문 의사를 육성하는 길이었다. 두창, 창진에 대한 최초의 전문서적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창진집』이다. 15세기 전반 세종이 내의원(內醫院)에 모든 처방집을 수집케 하는 가운데 창진에 관한 것만을 따로 묶어,『창진집』으로 만들었으며, 세조는 책에 미비함을 임원준, 이극감(李克堪) 등에게 교정, 보완하도록 하여 간행하였다.

이어서 1462년에는 예조(禮曹)에서 의서습(醫書習) 독관(讀官)을 여장(勸獎), 서용(敍用)하기 위한 조치로써 읽어야 할 의서 중의 하나로이 책을 포함하였으며, 예조에서 의원을 취재 할 때에 시험을 보는 의서로써, 정·종 5품에게는이 책을 포함시켰다.

한동안 국내에 전해지는『창진집』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중국 절강성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국내로 복사하여 가져와 영인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것은 총 3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책이 어떠한 연유로 중국에 전해져 절강성에 보관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는 까닭에 그 자세한 사정은 파악할 수가 없으나,『창진집』 서문에 의하면 처음 편찬·간행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 세종 때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연대기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

『창진집』은 원래 총 3권이며, 상권은 ‘제가론(諸家論)’, 중권은 ‘예방지제(預防之劑), 발출지제(發出之劑), 화해지제(和解之劑), 구함지제(救陷之劑), 소독지제(消毒之劑), 획안지제(護眼之劑), 하권은 최건지제(催乾之劑), 반지제(瘢之劑), 통치지제(通治之劑), 금기(禁忌)’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조선 초기에 두창을 치료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였으며, 어떤 치료법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준다.

참고문헌

  • 김기욱, 『강좌 중국의학사』, 대성의학사, 2006.
  • 김두종,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 탐구당, 1966.
  • 김민수, 「諺解痘瘡集要의 의사학적 고찰」,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 김성수, 「조선시대 전기」, 『한국전염병사』, 대한감염학회, 2009.
  • 김종석, 「조선 세조 년간의 의학정책과 의관들의 활동」, 경희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 안상우, 『역대 한국의학문헌의 복원 연구』, 한국한의학연구원,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