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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대표표제=백전기법|한글표제=백전기법|한자표제=百戰奇法|대역어=|상위어=병서(兵書)|하위어=|동의어=|관련어=무위소(武衛所), 무경칠서(武經七書)|분야=정치/군사·국방/병법·훈련법|유형=문헌|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후기|왕대=조선후기|집필자=노영구|저편자=|간행처=|간행년일=1882년|권책수=10권 2책|사용활자=|표제=정운자(正韻字)|소장처=|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488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na_13312007_011 『선조실록』 33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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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사전|대표표제=백전기법|한글표제=백전기법|한자표제=百戰奇法|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병법서|유형=한자|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고종|집필자=성낙수|저편자=황필수|간행처=미상|간행년일=1883|권책수=1책(56장)|사용활자=목판본|표제=백전기법(百戰奇法)|소장처=상원사, 규장각, 장서각,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301|실록연계=}}
  
『[[무경칠서(武經七書)]]』 및 [[정사(正史)]] 중에서 치병(治兵)과 용병(用兵)의 요점만을 뽑아 편집한 중국의 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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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명()나라 유학자 장한(章潢, 1526~1607)이 편찬한 『도서편(圖書編)』에 수록되어 있던 「백전기법(百戰奇法)」을 고종 연간에 황필수(黃泌秀)가 교정하여, 한 권의 독립적인 책으로 간행한 고대 병서이다.
  
 
=='''개설'''==
 
=='''개설'''==
  
『손자』, 『오자』 등의 『무경칠서』에서 군사와 전법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여 100개 항목으로 나누어 재편집하고 여기에 역사적 사례를 덧붙인 병서이다. 이 책은 명나라의 학자 장황(章潢)이 편집한 『도서편(圖書篇)』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부인 50개 항목은 1599년경 명나라 왕명학(王鳴鶴)이 편찬한 『등단필구(登壇必究)』에도 실려 있다. 이후 조선에서 『등단필구』의 내용을 요약하고 보완한 『단구첩록(壇究捷錄)』에도 그 내용이 전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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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명나라만력(萬曆, 1573∼1620)본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경칠서(武經七書)』와 각종 정사(正史)에서 군사와 전법(戰法)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100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논술한 중국 고대 병서로서, 10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에는 임진왜란 직후 전해졌고 19세기 후반인 1882년(고종 19) 12월 무용위 출신들이 간행한 이후 이듬해 중간본이 간행되었다. 책의 구성은 전법총서(戰法總叙), 전법(戰法), 전법총론(戰法總論)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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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고종 연간에 간행된 2종의 목판본이 전래되고 있으나, 선조 연간 간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어 현존 가장 앞서는 판본이다. 아울러 중국 병법의 수용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임진왜란 이전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병법을 익히기 위해 인출한 것으로 조선시대 전법의 발전상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편찬/발간 경위'''==
  
중국에서 편찬된 『백전기법』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전해져 훈련도감 등에서 갖추고 군사들의 훈련에 참고하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3312007_011 『선조실록』 33년 12월 7일]). 그러나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875년(고종 12) 궁성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무위소를 설치하고 장군 가문의 후손과 명망 있는 문벌 자손 중에서 무장의 자질이 있는 인재 32명을 선발하여 무용위(武勇衛)에 임명하고 무위소에 소속시켰다. 그러다 1881년(고종 18) 무위소가 폐지됨에 따라 무용위의 재질을 아깝게 여겨 관직 등에 임용하였다. 이들은 이후에도 무장으로서의 자질을 더욱 함양할 것을 결의하고 『백전기법』을 그들이 습득할 병서로 선정하였다. 이에 1882년(고종 19) 3월 왕세자가 사부를 맞아들이는 상견례를 마치고 하사한 고풍전(古風錢) 100냥으로 12월 『백전기법』 32질을 간행하여 각기 한 권씩 나누어 가졌다. 1883년(고종 20) 5월 황필수(黃泌秀)의 서문과 박영세(朴永世)의 후기를 붙여 다시 중간(重刊)하였다. 초간본에 비해 중간본은 책의 체재와 활자 등은 동일하지만 약간의 오탈자를 바로잡고 주석 일부도 첨가한 정도의 수정이 이루어졌다. 최근 경상북도 성주군 심원사에 소장된 『백전기법』이 선조대에 간행된 판본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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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권말의 발문은 1883년(고종 20)에 박영세(朴永世)가 작성한 것으로, 이 책을 중간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판식을 살펴보면, 판상구에 ‘백전기법(百戰奇法)’이 기재되어 있으며, 판심에는 편명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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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82년(고종 19)에 초간되었으며, 1883년 5월에 중간되었다. 황필수의 서문에 “임오년(1882) 겨울에 서적상이 내게 와서, 『백전기법』의 원문을 바로잡아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무경칠서』와 중국 역사를 참고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라고 하여, 이 책이 중간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백전기법』은 『무경칠서』 중에서 치병(治兵)과 용병(用兵)의 요점만을 뽑아 100가지 항목으로 재편집하고, 거기에 역사적 사례를 덧붙인 것으로서 동양의 병학사상 및 병법의 정수와 실례가 한 권에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지 사항'''==
 
=='''서지 사항'''==
  
10권 2책으로 이루어진 『백전기법』의 초간본에는 본문과 함께 어영대장, 금위대장과 무위소의 책임자인 도통사(都統使)를 거친 김기석(金箕錫)의 발문이 실려 있다. 무용위들이 이 책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언급하였다. 이듬해 간행된 중간본에는 황필수의 서문과 박영세의 후기가 추가되어 있다. 이 두 판본은 정운자(正韻字)로 인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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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5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은  21.8×15.4cm이다. 10행 21자의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상하향흑어미(上下向黑魚尾)를 갖추고 있고, 상원사, 규장각, 장서각,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구성/내용'''==
  
『백전기법』의 구성은 전법총서, 전법, 전법총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법총서는 서론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전법총론은 전법을 요약하여 그 의미를 한 번 더 강조한 것이다. 전법총론에는 주제문에 덧붙여 간주(間註)가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문장의 사이사이에 부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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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성은 ‘백전총서(戰法總叙)·전법(戰法)·전법총론(戰法總論)’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전총서’는 서언(序言)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전법총론’의 내용은 결론이라기보다는 전법을 요약하여, 재강조한 것이다. ‘전법’에는 국가 전략에서부터 대적전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상황을 100가지 항목으로 묶어 열거하고, 『무경칠서』 중에서 거기에 부합되는 구절을 뽑아 결구로 인용하여, 제승의 요체를 제시한 다음, 그것을 잘 응용할 수 있도록 각 항목마다 적절한 사례를 부기하였다. 전법의 각 항목의 결구는 『무경칠서』, 『논어(論語)』, 『서경(書經)』, 『후한서(後漢書)』 등에서 인용하였다. 사례는 대체로 고대 춘추시대로부터 중세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인용하였다.
  
전법에는 국가전략에서부터 세부적인 전술까지 여러 상황을 100가지 항목으로 묶어 열거하고 『무경칠서』 등에서 거기에 부합하는 구절을 뽑아 결구(結句)로 인용한 다음 이를 잘 응용할 수 있도록 각 항목마다 적절한 역사적인 사례를 부기하였다. 전법의 각 항목의 결구는 『손자』 60건을 비롯하여 『무경칠서』에서 88건을 인용하고 『논어』, 『서경』, 『후한서』 등에서 5건이 인용되었다. 출전이 불분명한 것이 7건이다. 그 사례는 고대 춘추시대부터 중세 송나라 시대까지의 중국 역사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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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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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경칠서』의 요점이 적출되어 있다는 점과 사례를 붙여, 주제의 이해를 돕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병서에서는 볼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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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낙현, 「武經七書를 통해서 본 조선전기 武科試取에 관한 연구」, 『동양고전연구』 제34집, 동양고전학회, 2009.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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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 『百戰奇法』,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5.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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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무학, 「兵書의 유입과 지식인들의 이해 양상-武經七書를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제31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11.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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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근, 「선초 무경칠서(武經七書)의 도입 배경」, 『동서사학』 2권, 한국동서사학회, 1996.    
*『일성록(日省錄)』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백전기법』, 국방부, 1985.       
 
*노영구, 『조선후기 병서와 전법의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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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병법서]][[분류:한자]][[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고종]]

2018년 1월 8일 (월) 15:48 기준 최신판



이 책은 중국 명(明)나라 유학자 장한(章潢, 1526~1607)이 편찬한 『도서편(圖書編)』에 수록되어 있던 「백전기법(百戰奇法)」을 고종 연간에 황필수(黃泌秀)가 교정하여, 한 권의 독립적인 책으로 간행한 고대 병서이다.

개설

이 책은 중국 명나라만력(萬曆, 1573∼1620)본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경칠서(武經七書)』와 각종 정사(正史)에서 군사와 전법(戰法)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100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논술한 중국 고대 병서로서, 10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는 고종 연간에 간행된 2종의 목판본이 전래되고 있으나, 선조 연간 간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개된 적이 없어 현존 가장 앞서는 판본이다. 아울러 중국 병법의 수용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임진왜란 이전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병법을 익히기 위해 인출한 것으로 조선시대 전법의 발전상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의 권말의 발문은 1883년(고종 20)에 박영세(朴永世)가 작성한 것으로, 이 책을 중간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판식을 살펴보면, 판상구에 ‘백전기법(百戰奇法)’이 기재되어 있으며, 판심에는 편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1882년(고종 19)에 초간되었으며, 1883년 5월에 중간되었다. 황필수의 서문에 “임오년(1882) 겨울에 서적상이 내게 와서, 『백전기법』의 원문을 바로잡아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무경칠서』와 중국 역사를 참고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았다.”라고 하여, 이 책이 중간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백전기법』은 『무경칠서』 중에서 치병(治兵)과 용병(用兵)의 요점만을 뽑아 100가지 항목으로 재편집하고, 거기에 역사적 사례를 덧붙인 것으로서 동양의 병학사상 및 병법의 정수와 실례가 한 권에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지 사항

1책(56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은 21.8×15.4cm이다. 10행 21자의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상하향흑어미(上下向黑魚尾)를 갖추고 있고, 상원사, 규장각, 장서각,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구성은 ‘백전총서(戰法總叙)·전법(戰法)·전법총론(戰法總論)’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전총서’는 서언(序言)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전법총론’의 내용은 결론이라기보다는 전법을 요약하여, 재강조한 것이다. ‘전법’에는 국가 전략에서부터 대적전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상황을 100가지 항목으로 묶어 열거하고, 『무경칠서』 중에서 거기에 부합되는 구절을 뽑아 결구로 인용하여, 제승의 요체를 제시한 다음, 그것을 잘 응용할 수 있도록 각 항목마다 적절한 사례를 부기하였다. 전법의 각 항목의 결구는 『무경칠서』, 『논어(論語)』, 『서경(書經)』, 『후한서(後漢書)』 등에서 인용하였다. 사례는 대체로 고대 춘추시대로부터 중세 송(宋)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인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무경칠서』의 요점이 적출되어 있다는 점과 사례를 붙여, 주제의 이해를 돕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병서에서는 볼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곽낙현, 「武經七書를 통해서 본 조선전기 武科試取에 관한 연구」, 『동양고전연구』 제34집, 동양고전학회, 2009.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편, 『百戰奇法』,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5.
  • 윤무학, 「兵書의 유입과 지식인들의 이해 양상-武經七書를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제31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11.
  • 장학근, 「선초 무경칠서(武經七書)의 도입 배경」, 『동서사학』 2권, 한국동서사학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