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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향당(鄕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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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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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41: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향당|한글표제=향당|한자표제=鄕黨|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조정(朝廷)|분야=사회/향촌|유형=개념용어|지역=|시대=|왕대=|집필자=김현영|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762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1023_002 『태조실록』 4년 1월 23일],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9016_001 『태조실록』 4년 9월 16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310001_004 『세종실록』 13년 10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4901027_002 『영조실록』 49년 1월 27일]}}&lt;br /&gt;
&lt;br /&gt;
지역 사회를 지칭하는 전통적 한문 용어.&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향당(鄕黨)은 보통 지역 사회를 지칭할 때 쓰는 일반적인 용어로, 『전한서(前漢書)』「식화지(食貨志)」에 &amp;quot;5가(家)가 린(鄰)이 되고, 5린이 리(里)가 되며, 4리가 족(族)이 되고, 5족이 당(黨)이 되며, 5당이 주(州)가 되고, 5주가 향(鄕)이 되는데, 1향은 1만 2천 500호이다.[五家爲鄰 五鄰爲里 四里爲族 五族爲黨 五黨爲州 五州爲鄕 是萬二千五百戸也]&amp;quot;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의 지방 제도는 각 도(道) 밑에 주(州)·부(府)·군(郡)·현(縣)이 있어 이곳에는 중앙관이 파견되었고, 수령이 파견되는 주부군현 밑에는 [[면리(面里)]]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통 향당이라는 표현은 군현 단위의 지역 사회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향당에 대한 『조선왕조실록』 기사를 보면, 조선초기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변옥란(卞玉蘭)의 졸기(卒記)에 그가 효도를 하고 우애를 하였다고 향당에서 칭송했다는 표현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1023_002 『태조실록』 4년 1월 23일]). 또한 각 도에서 보고한 효자·절부(節婦) 등을 정려(旌閭)하고 복호(復戶)하는 보고서에서 전라도 광주 사람 탁신(卓愼)이 효도하여 향당에서 그를 칭송한다고 한 기록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9016_001 『태조실록』 4년 9월 16일]).&lt;br /&gt;
&lt;br /&gt;
한편, 향당은 중앙 정부를 일컫는 조정(朝廷)과 대응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총제(摠制)유사눌(柳思訥)은 「용흥가(龍興歌)」를 지어 바치면서 &amp;quot;이를 관현에 올려서 악부에 간수하여 조정에서 연주하고 향당에서 사용하여, 온 나라 신민들로 하여금 영구한 세대에 잊지 않도록 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amp;quot;라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310001_004 『세종실록』 13년 10월 1일]).&lt;br /&gt;
&lt;br /&gt;
향당은 중앙과 지방의 대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 영조는 중앙과 지방의 운영 원리가 다르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영조는 영남 유림들의 상소에 대한 [[비답(批答)]]에서 ‘조정은 조정이고 향당은 향당[朝廷自朝廷 鄕黨自鄕黨]’이라는 하교로 각 지역의 자율적 결정권을 강조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4901027_002 『영조실록』 49년 1월 27일]). 여기에서 조정은 중앙 정부를 지칭하는 것이고 향당은 중앙관이 파견된 군현 단위의 지방을 말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김현영,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 사회』, 집문당, 1999.      &lt;br /&gt;
*이수건, 『한국 중세 사회사 연구』, 일조각, 1984.      &lt;br /&gt;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lt;br /&gt;
&lt;br /&gt;
[[분류:사회]][[분류:향촌]][[분류:개념용어]]&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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