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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장(行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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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03T13:32:4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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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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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19: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행장|한글표제=행장|한자표제=行障|대역어=|상위어=상유(喪帷)|하위어=|동의어=행유(行帷)|관련어=내상(內喪), 발인의(發引儀), 좌장(坐障)|분야=왕실/왕실의례/흉례|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박현숙|용도=상유(喪帷)|재질=저포(苧布), 대나무|관련의례=발인의(發引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636|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807008_003 『세종실록』 28년 7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209016_002 『세종실록』 2년 9월 16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10006 『세종실록』 오례 흉례 서례 흉장]}}&lt;br /&gt;
&lt;br /&gt;
왕비와 왕세자빈의 장례 때 사용하던 [[길의장(吉儀仗)]].&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왕비의 관인 [[재궁(梓宮)]]이나 왕세자빈의 관인 재실(梓室)을 안장하기 위해 발인할 때, 대여(大輿)의 좌우에서 내시(內侍)가 [[삽(翣)]]과 함께 들고 가던 가리개를 말한다. 행장은 왕과 왕비 등의 장례인 [[국장(國葬)]]과, 빈(嬪)·[[귀인(貴人)]]·대군(大君)·공주·[[의빈(儀賓)]] 등의 장례인 [[예장(禮葬)]] 가운데 왕비나 왕세자빈의 상(喪)인 내상(內喪)에만 사용하였다. 발인 행렬이 움직일 때는 행장 8구(具)와 삽 6구로 대여를 가리고, 잠시 멈출 때는 좌장(坐障) 4구를 대여의 좌우에 진설하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중국에서 당나라 황후의 노부(鹵簿), 즉 [[의장(儀仗)]] 제도에서는 행장 6구, 좌장 3구를 갖추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황태자비의 경우 행장 4구, 좌장 2구를 갖추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元敬王后)의 [[국장(國葬)]]을 치를 때 행장을 사용하였다. 당나라 황태자비의 노부에 의거하여 행장 4구와 좌장 2구를 만들고, 길의장 안에 나누어 세웠다가 재궁을 대여에 싣거나 내릴 때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능지에서 돌아오는 [[반우(返虞)]] 때도 행장을 다시 의장 사이에 나누어 세웠다.&lt;br /&gt;
&lt;br /&gt;
한편 세종 연간에는 예조(禮曹)에서, 재궁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한 행장을 반우 때 다시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행장과 좌장을 2건(件) 만들어, 1건은 대여 앞에 세웠다가 재궁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1건은 혼백거(魂魄車) 앞에 세웠다가 혼백과 [[우주(虞主)]]를 가리는 용도로 나누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자 왕이 그대로 따랐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807008_003 『세종실록』 28년 7월 8일]).&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길의장의 하나인 행장은 유청색(柳靑色) 베로 만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209016_002 『세종실록』 2년 9월 16일]). 베 7폭을 연결한 뒤 대나무 자루 5개를 적당한 간격을 두어 천에 붙였다. 발인 때는 모두 8개의 행장을 사용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10006 『세종실록』 오례 흉례 서례 흉장]).&lt;br /&gt;
&lt;br /&gt;
한편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기록된 행장은 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청면포(靑綿布) 4개를 사용하여 행장을 만들고, 발인 때 신백연(神帛輦)의 좌우에 진설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lt;br /&gt;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lt;br /&gt;
&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흉례]][[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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