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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정(閑丁)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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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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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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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46: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한정|한글표제=한정|한자표제=閑丁|대역어=|상위어=군역(軍役)|하위어=|동의어=|관련어=군정(軍丁),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호패법(號牌法)|분야=경제/재정/역|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정연식|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0976|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rb_10107003_004 『현종개수실록』 1년 7월 3일]}}&lt;br /&gt;
&lt;br /&gt;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민 장정 중에 군역이 부과되지 않은 자.&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의 군역은 본래 16세부터 60세의 양인 남자에게 부과되었다. 그러나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군역이 부과된 것은 아니었다. 대개 군현별로 일정한 숫자를 배정하여 그 숫자만큼의 양인에게만 군역을 부과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을 안에는 군역이 부과되지 않은 양민 장정이 적지 않았다. 이들을 한정(閑丁)이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군총은 군현 내 양정의 수보다 적게 배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한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누가 한정이 되고 누가 군정(軍丁)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군정이 되고 부유하고 힘 있는 백성들은 한정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난한 군정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누적되면 도망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lt;br /&gt;
&lt;br /&gt;
중앙정부는 군역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하여 충분한 한정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충분한 한정을 확보하는 방법은 2가지였다. 한정을 대대적으로 색출해 내거나, 아니면 군총 자체를 줄이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임진왜란 이후 숙종 초까지는 임진왜란 이전의 군제를 복구하고 새로 신설된 오군영(五軍營)의 군사를 채우기 위하여 한정 색출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광해군대부터 현종대까지 종종 논의되고 시행되었던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이나 호패법(號牌法)이 바로 이 맥락에서 진행된 일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rb_10107003_004 『현종개수실록』 1년 7월 3일]). 그러나 군역 부담자를 늘리기 위한 이러한 정책은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숙종 초부터는 군액 감축이 논의되고, 호포론을 시작으로 양역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양역변통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김성우, 「조선후기 ‘한유자’층의 형성과 그 의의」, 『사총』 40·41, 1992.      &lt;br /&gt;
*김용섭, 「조선후기 군역제 이정의 추이와 호포법」, 『성곡논총』 제13집, 1982.      &lt;br /&gt;
*정만조, 「조선후기의 양역변통논의에 대한 검토: 균역법성립의 배경」, 『동대논총』 7, 1977.      &lt;br /&gt;
*정연식, 「조선후기 ‘역총’의 운영과 양역 변통」,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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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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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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