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95%9C%EC%9C%A0%28%E9%96%91%E9%81%8A%29</id>
		<title>한유(閑遊)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95%9C%EC%9C%A0%28%E9%96%91%E9%81%8A%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D%95%9C%EC%9C%A0(%E9%96%91%E9%81%8A)&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18T00:14:4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D%95%9C%EC%9C%A0(%E9%96%91%E9%81%8A)&amp;diff=11012&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D%95%9C%EC%9C%A0(%E9%96%91%E9%81%8A)&amp;diff=11012&amp;oldid=prev"/>
				<updated>2017-12-09T17:46: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한유|한글표제=한유|한자표제=閑遊|대역어=|상위어=군역(軍役)|하위어=|동의어=한량(閑良)|관련어=한량무학(閑良武學), 무역한유(無役閒遊)|분야=경제/재정/역|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손병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70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0704001_005 『세종실록』 7년 4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02_006 『세종실록』 12년 8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202014_003 『세조실록』 2년 2월 14일],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004017_005 『선조실록』 30년 4월 17일]}}&lt;br /&gt;
&lt;br /&gt;
양인 남성 중 16세부터 60세까지의 장정임에도 불구하고 역을 지지 않는 자.&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한유(閑遊)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역을 지지 않고 ‘한가로이 놀고 있는 자’를 가리켰다. 조선초기의 한량은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켰다. 조선후기에는 무예를 수련하여서 군관에 임명할 수 있는 자들을 의미하였다. [[양역변통(良役變通)]] 당시에는 양역 예비자인 양정으로 아직 군역을 지지 않는 상황, 또는 그런 자들을 가리켰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한유층은 17~18세기 군역제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군역의 결원을 채우기 위하여 양정을 확보할 때에 ‘[[양정(良丁)]]의 한유자’로 자주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미 조선초기부터 의미가 약간 다르게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때는 향리의 사역을 ‘향역(鄕役)’으로 국역화(國役化)하는 과정에서 1~2년만 역을 지고 일체의 잡역을 면제받아 ‘한가로이 놀고 있는’ 것을 의미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704001_005 『세종실록』 7년 4월 1일]). 한편 군관 및 시위패(侍衛牌)와 같은 상층 군사가 훈련이나 번을 잠시 서고 평상시에 한유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02_006 『세종실록』 12년 8월 2일]).&lt;br /&gt;
&lt;br /&gt;
일반 군역자에 대해서도 한유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가 있었다. 본래 [[군정(軍丁)]]은 [[군적(軍籍)]] 상에 정해진 숫자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적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군적에 군역자의 수[元額]가 많게 기재되어서 한 사람이 여러 역(役)을 겸하게 되고, 사람이 많은 지역은 반대로 군적에서 빠진 누호(漏戶)나 [[여정(餘丁)]], 한유(閑遊)한 이가 많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202014_003 『세조실록』 2년 2월 14일]). 정유재란이 일어난 해에는 한유하는 [[출신(出身)]]·군관 등을 색출하여 오위(五衛)에 소속시켜 [[숙위(宿衛)]]케 하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3004017_005 『선조실록』 30년 4월 17일]).&lt;br /&gt;
&lt;br /&gt;
조선전기에 한유는 일반 군병보다 상층의 무리들이 역을 지지 않는 상황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량과 용법상 관련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한량은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켰다. 이들은 주로 사족의 자제였다. 이들이 군역에 편제되기도 하였다. 사족 자제로서 경제력이 있으면서 무예를 수련하는 자들에게 일정한 시험을 거쳐 [[갑사(甲士)]]직을 제수하였던 것이다. 중종대부터는 그들에게 무과 응시를 허용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무예를 잘하여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량무학(閑良武學)’이라는 군관 직역도 있었다.&lt;br /&gt;
&lt;br /&gt;
반면 한유는 양역변통 과정에서는 교생과 같은 양반자제를 ‘한유를 오래한 자’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단순히 ‘무역한유(無役閒遊)’, ‘양정의 한유’로 군역으로부터 빠져 있는 양인 남정을 지칭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각사수교(各司受敎)』      &lt;br /&gt;
*『수교집록(受敎輯錄)』      &lt;br /&gt;
*이준구, 「朝鮮後期의 閑良과 그 地位」, 『국사관논총』 5, 국사편찬위원회, 1989.      &lt;br /&gt;
&lt;br /&gt;
[[분류:경제]][[분류:재정]][[분류:역]][[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시대]][[분류:조선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