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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패도(佩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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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3T08:35:5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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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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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22: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패도|한글표제=패도|한자표제=佩刀|대역어=|상위어=장도(粧刀)|하위어=|동의어=|관련어=낭도(囊刀), 정절도(貞節刀), 충절도(忠節刀)|분야=정치/군사·국방/병기|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곽낙현|용도=호신용|재질=금은, 오동(烏銅), 백동(白銅), 흑시(黑柹), 흑단, 우골, 상아, 산호, 호박, 비취, 옥죽절(玉竹節) 등|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42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2207013_004 『성종실록』 22년 7월 13일],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406015_001 『연산군일기』 4년 6월 15일]}}&lt;br /&gt;
&lt;br /&gt;
호신용으로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인 장도 가운데 남자가 몸에 차는 칼.&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패도(佩刀)는 일상생활에 쓰기도 하고 호신(護身)·자해(自害) 및 치장할 때도 사용하며, 전투 시 살상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장도(粧刀) 중 차게 되어 있는 것은 패도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은 낭도(囊刀)라 한다.&lt;br /&gt;
&lt;br /&gt;
패도 즉 장도는 여자에게는 정절도(貞節刀)가 되고 남자에게는 충절도(忠節刀)의 역할을 한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패도는 몽골 여인들이 난폭한 남성으로부터의 호신용으로 차던 것이 고려 때 들어와 조선시대에 널리 일반화되었다. 한때 전투 상황에서 살상용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나([http://sillok.history.go.kr/id/kia_12207013_004 『성종실록』 22년 7월 13일]), 실용성이 적어지며 모양도 작아지고 장식용으로 변질되었다. 마침내 1498년(연산군 4)에는 사치금제(奢侈禁制)에서 서민의 은장도 사용을 금하였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고([http://sillok.history.go.kr/id/kja_10406015_001 『연산군일기』 4년 6월 15일]), 1670년(현종 11)에는 유생 잡직 및 서민 남녀 중 은장도를 차는 자를 논죄하라고까지 하였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패도는 칼집과 자루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칼집과 자루가 여러 모로 된 8모형은 ‘모잽이 칼’이라 부르며, 칼집과 자루가 네모꼴은 사모형, 둥근 것은 원통형, 을(乙)자형은 을자형이라 한다. 여기에 첨사가 따르면 첨사모잽이패도로 부른다.&lt;br /&gt;
&lt;br /&gt;
칼집과 칼자루는 금은·오동(烏銅)·백동(白銅)·흑시(黑柹)·흑단·우골·상아·산호·호박·비취·옥죽절(玉竹節) 등을 사용하였으며, 칼날은 강철을 사용하여 도신(刀身)에 일편심(一片心) 등을 흘림으로 새겼다. 신분과 지위의 표상이기도 했던 패도는 절개를 뜻하는 소나무와 대 등을 그려 넣은 여성용과 달리 용, 거북 등의 십장생을 그려 넣었다.&lt;br /&gt;
&lt;br /&gt;
패도의 크기는 큰 8모형의 경우 전장 5촌, 도신 3촌 정도이고, 사모·원·을자형의 경우는 전장 3촌, 도신 1.5촌으로 크기가 보통이었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패도는 먼 길을 떠나는 선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휴대용품이었다. 주막에 들러 음식을 먹을 때도 패도에 달린 젓가락 같은 ‘첨사도’를 꺼내 독이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내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대전회통(大典會通)』      &lt;br /&gt;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lt;br /&gt;
*예용해, 『粧刀匠』, 문화재관리국지정보고서, 1973.      &lt;br /&gt;
*진홍섭, 『한국금속공예사』, 일지사, 1980.      &lt;br /&gt;
*김성혜 외, 「刀劍의 기능성 연구 : 육군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학예지』6, 1999.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군사·국방]][[분류:병기]][[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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