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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판윤(判尹)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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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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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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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54: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판윤|한글표제=판윤|한자표제=判尹|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경성부윤(京城府尹),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한성부윤(漢城府尹), 한성윤(漢城尹)|관련어=구경(九卿), 성석린(成石璘)|분야=정치/행정/관직·관품|유형=직역|지역=서울|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이상배|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732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0412011_003 『중종실록』 4년 12월 11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109024_002 『중종실록』 21년 9월 24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4702005_003 『영조실록』 47년 2월 5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312022_001 『중종실록』 23년 12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06029_003 『예종실록』 1년 6월 29일]}}&lt;br /&gt;
&lt;br /&gt;
1469년(예종 1)에 설치된 한성부의 최고위 정2품 관직.&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한성부의 모든 업무와 조직을 통솔하는 최고위 관직이다. 1395년 한양부를 한성부로 바꾸면서 판한성부사로 불리다가 1469년 개혁할 때 한성판윤이 되어 1905년의 관제 개편 때까지 유지되었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공(三公)과 의정부 좌참찬·우참찬, 그리고 육조 판서와 한성판윤을 합하여 구경(九卿)이라 하였으며, 이들을 아울러 공경(公卿)이라 하였다. 즉 한성판윤은 육조 판서와 대등한 위치에서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추진하는 수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0412011_003 『중종실록』 4년 12월 11일]). 중종은 한성판윤에 대해 “판윤(判尹)은 중요한 직임이므로 이조와 병조에서 가려 의망(擬望)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2109024_002 『중종실록』 21년 9월 24일]). 조선시대 판윤의 평균 재임 기간은 5개월 정도이다. 대체로 통치권이 안정된 시기에는 비교적 오래 재임하였고, 통치권이 불안하고 약하였던 19세기에는 자주 갈리는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역대 판윤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사람은 광해군 때 13년 4개월간 판윤을 지낸 오억령(吳億齡)이며, 가장 여러 번 판윤을 지낸 인물은 효종대부터 현종 때까지 모두 7번 판윤을 역임한 이완(李浣)이다. 반대로 아주 짧은 기간 재임한 경우로는 1일 판윤이 5명, 2일 판윤이 10명, 3일 판윤이 11명이나 된다.&lt;br /&gt;
&lt;br /&gt;
한성판윤의 주요 담당 직무는 기본적으로 호적대장(戶籍大帳), 시장과 상점, 가사(家舍), 전토(田土), [[사산(四山)]], 도로, 교량, 개천, 포흠(逋欠), 부채, 주간 순찰, 검시, 차량(車輛), 고실우마(故失牛馬), 낙계(烙契) 등 한성부의 잡다한 업무를 총괄하는 일과 한성부 관원의 관리였다. 또한 왕이 한성부에 있었기 때문에 도성을 수호하는 일과([http://sillok.history.go.kr/id/kua_14702005_003 『영조실록』 47년 2월 5일]), 왕 거둥 시 왕을 앞에서 선도하고 경비와 안전 관리 등도 총괄하는 등의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고, 어전 회의에 참석하여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기도 하였으며([http://sillok.history.go.kr/id/kka_12312022_001 『중종실록』 23년 12월 22일]), 정부를 대신하여 외국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단순하게 한성부의 행정만을 담당했다기보다는 그 이상의 업무를 다루는 직책이었기 때문에 한성판윤을 거쳐 정승으로 승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올수록 한성판윤의 정치적 비중이 낮아지고 행정적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교체되는 사례가 잦았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판윤은 한성부를 총괄하는 최고위 관직으로 조선초기부터 외관직 즉 지방 관직이 아닌 경관직 즉 중앙 관직으로서 정2품 아문의 수장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개성부의 형태를 따라 한양부를 두었다. 이어 1395년(태조 4)에 한양부를 한성부로 바꾸고 그 책임자를 판한성부사로 하고, 초대 판한성부사로 [[성석린(成石璘)]]을 임명하였다. 이후 1466년(세조 12)에 판한성부사를 한성부윤으로 바꾸었으며, 1469년에는 한성부윤에서 한성판윤으로 개칭되면서 비로소 판윤이 설치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06029_003 『예종실록』 1년 6월 29일]). 이때 처음 판윤에 임명된 사람은 [[서거정(徐居正)]]이다. 판윤 아래로는 종2품 관직인 좌윤과 우윤, 종4품 서윤, 판관 등 7~8명의 정규직 관원이 있고, 그 아래로 이속(吏屬) 서리(胥吏) 41명, 서사(書寫) 1명, [[서원(書員)]] 11명, [[사령(使令)]] 30명을 두었다.&lt;br /&gt;
&lt;br /&gt;
이후 한성부 판윤에 대한 명칭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관제를 개편하면서 한성부윤이라 하였다가, 이듬해인 1895년에는 관찰사라 불렀다. 이어 1896년(건양 1)에 다시 한성부 판윤으로 환원하였다가 1905년(광무 9년)에 한성윤이 되었다. 그리고 한성부가 경성부로 명칭이 바뀌면서 1907년(융희 1)에 그 수장도 경성부윤으로 바뀌었으며, 경기도 소속으로 격하되었다. 이것이 해방 이후 1946년 서울시장으로, 1949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변화되어 오늘에 이른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행정사』, 서울특별시, 1997.      &lt;br /&gt;
*원영환, 『조선시대 한성부연구』, 강원대출판부, 1990.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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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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