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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지(苔紙)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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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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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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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20: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태지|한글표제=태지|한자표제=苔紙|대역어=|상위어=종이[紙]|하위어=|동의어=척리지(陟釐紙), 측리지(側理紙)|관련어=|분야=교육·출판/출판/종이|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중종 이후|집필자=손계영|용도=간찰지(簡札紙), 서화지(書畵紙), 시문지(詩文紙), 시전지(詩箋紙), 혼서지(婚書紙)|재질=닥나무[楮], 이끼[苔]|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809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3606025_001 『중종실록』 36년 6월 25일]}}&lt;br /&gt;
&lt;br /&gt;
가는 털과 같은 이끼를 섞어서 뜬 종이.&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태지(苔紙)는 닥나무 등의 장섬유와 파란색을 띤 수태(水苔)를 넣어 만든 종이이다. 태지는 김안국(金安國)에 의해 중종조 이후에 널리 사용되었고, 종이의 품격이 매우 고아(高雅)하여 시전지(詩箋紙)·간찰지(簡札紙)·시문지(詩文紙)·서화지(書畵紙)·혼서지(婚書紙) 등 특수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도 조선의 태지를 인정하였고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는 종이이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1541년(중종 36)에 병조판서김안국이 태지 5속(束)을 진상하며 태지 제조법을 설명하기를, “고향에 있을 때 고서(古書)를 보니 물이끼[水苔]로 종이를 만든다는 말이 있어 시험 삼아 만들어 보았는데 이끼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닥나무에 이끼를 섞어서 만드는 것으로, 이끼가 어린 것에는 닥나무를 조금 더 넣고 이끼가 센 것이면 닥나무를 적게 넣어서 만든다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3606025_001 『중종실록』 36년 6월 25일]). &lt;br /&gt;
&lt;br /&gt;
이에 중종은 태지를 만들어서 서울과 지방에 퍼뜨려 유행하게 하면 관부나 백성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므로 진상한 4속을 조지서에 보내어 태지의 견본을 만들도록 명하였다. 즉 김안국에 의해 태지가 알려지고 태지의 견본을 만들어 널리 유포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 3세기 중엽부터 4세기 초 사이에 이미 태지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개발되어 사용되었던 종이이지만 김안국이 진상한 1541년 이후부터 보편화되었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태지는 일반 닥나무 종이의 제조 과정과 유사하다. 지통에서 황촉규를 푼 물에 닥섬유를 골고루 푼 다음, 미리 채취해 깨끗이 씻은 수태를 넣어 종이를 뜨는 것이다. 이때에 닥나무 등의 장섬유가 주원료이고, 수태는 종이의 표면에 아름다운 문양 역할을 하는 부수적인 첨가 재료이다.&lt;br /&gt;
&lt;br /&gt;
1541년 김안국은 태지를 진상하며 태지로 만든 고서를 보았다고 하여 서책의 종이로 태지를 사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대부분의 태지 실물은 간찰의 종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푸른색의 가는 수태가 종이의 표면에 펼쳐져 문양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간찰의 문양지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태지의 품격을 드러낼 수 있는 용도로 시전지·시문지·서화지·혼서지 등에 사용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모재집(慕齋集)』      &lt;br /&gt;
*정선영, 「태지(苔紙)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서지학연구』7, 1991.      &lt;br /&gt;
&lt;br /&gt;
[[분류:교육·출판]][[분류:출판]][[분류:종이]][[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중종 이후]]&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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