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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일초제(太一醮禮)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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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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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태일초제|한글표제=태일초제|한자표제=太一醮禮|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태일초(太一醮)|관련어=태일(太一), 태일전(太一殿)|분야=문화/종교/도교|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고려~조선초기|왕대=|집필자=김철웅|시작시기=|시행시기=상원일(上元日), 중원일(中元日), 하원일(下元日), 입춘, 입하, 입추, 입동|시행기관=태일전(太一殿)|시행장소=한양, 통주(通州), 의성(義城), 태안(泰安)의 태일전(太一殿)|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0249|실록연계=}}&lt;br /&gt;
&lt;br /&gt;
고려와 조선시대에 태일(太一)에 지내는 도교의 초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태일은 태일구궁(太一九宮)으로 태을(太乙)이라고도 하며, 북신(北辰)의 신명(神名)으로 전쟁, 전염병 따위를 다스린다고 믿어 이에 대해 초례를 지냈다. 이를 태일초, 태일초례라 한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태일은 중국 한(漢) 나라 때부터 숭배되기 시작하였다. 태일은 태일구궁(太一九宮)으로 태을(太乙)이라고도 하며, 북신(北辰)의 신(神)이었다. 태일은 45년을 주기로 건방(乾方)에서 간방(艮方)으로 그리고 손방(巽方), 곤방(坤方)으로 옮기는데, 그때마다 해당 지역에는 태일전이 건립하고 태일초례를 거행하였다.&lt;br /&gt;
&lt;br /&gt;
고려시대에는 간방인 화령(和寧), 손방인 충주(忠州), 곤방인 부평(富平), 건방인 귀주(龜州)에 태일전을 두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통주(通州)]], 의성(義城), 태안(泰安) 등에 태일전을 두고 태일초례를 거행하였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1) 초례의 의미와 절차&lt;br /&gt;
&lt;br /&gt;
도교 제례는 흔히 ‘재(齋)’, ‘초(醮)’, 혹은 ‘재초(齋醮)’라고도 한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도교 제사를 ‘재’라 칭하였고 ‘초’라고는 하지 않았다. 초가 도교 의식이 된 것은 수대(隋代)에 이르러서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는 거의 보이지 않고, 보통 ‘초’, ‘초례(醮禮)’라는 이름으로 거행되었다.&lt;br /&gt;
&lt;br /&gt;
『수서(隋書)』「경적지」에 의하면, &amp;quot;한밤중에 여러 성신(星辰) 아래에서 술·포·면·음식·폐백을 진설해 놓고 천황(天皇)과 태일(太一)에게 제사하고 [[오성(五星)]]과 여러 별에게 제사하며 상장(上章)하는 의식과 같이 글을 만들어 아뢰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초(醮)라 한다.&amp;quot;고 하였다. 이처럼 초례는 밤중에 여러 제물을 차려 놓고 기원문인 청사(靑詞)를 올렸다.&lt;br /&gt;
&lt;br /&gt;
(2) 태일초례의 거행 목적&lt;br /&gt;
&lt;br /&gt;
『동국이상국전집』의 「태일초례문(太一醮禮文)」에, &amp;quot;때 아닌 재앙을 내림은 하늘이 앞일을 경계하심이고, 정성껏 제사를 받들면 신은 반드시 복을 주기 마련이라 부디 돌아보아 흠향하시고 빨리 이상한 재변을 없애 주소서.&amp;quot;라고 태일초례를 지냈다. 그리고 권근의 「비를 비는 태일 초례 청사문[祈雨太一醮禮靑詞文]」, 변계량의 「소격전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겸하여 유성의 재앙을 물리치는 태일 초례의 삼헌 청사[昭格殿行祈雨兼流星祈禳太一醮禮三獻靑詞]」, 황계옥(黃啓沃)의 「태일초기우청사(太一醮祈雨靑詞)」를 보면 태일초례는 천재지변의 기양을 위해 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중앙의 태일초례는 주로 소격전에서 거행되었다. 1393년(태조 2년) 11월 20일에 얼음이 얼지 아니하고 또 안개가 끼었다는 이유로 소격전에서 태일초례를 열어 기후가 순조롭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소격전에서 태일초례를 행하여 비 오기를 빌었다.&lt;br /&gt;
&lt;br /&gt;
(3) 제사일과 절차&lt;br /&gt;
&lt;br /&gt;
1409년(태종 9) 12월에는 태일초의 제일(祭日)을 정비하여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의 [[삼원일(三元日)]]과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사립일(四立日)에 태일초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통주(通州)]]의 태일초례는 매월 삭망에 행하던 것을 삼원일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거행하도록 하였다.&lt;br /&gt;
&lt;br /&gt;
소격서에는 태일전에 있었고, 태일초에는 『태일경(太一經)』을 읽었다. 제사 절차는 『용재총화』에 따르면 [[헌관(獻官)]]과 서원(署員)은 모두 흰 옷에 검은 두건으로 재를 올렸고, 또 [[관(冠)]]을 쓰고 [[홀(笏)]]을 들고 예복을 입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전(祭奠)은 과실·인절미·차(茶)·과자·술이며 분향(焚香)하고 백배(百拜)을 올렸다. 초례에 참여한 도사(道士)는 머리에 소요관(逍遙冠)을 쓰고 몸에는 얼룩얼룩한 검은 옷을 입었으며, 경쇠[磬]를 24번 울리고 난 뒤에, 두 사람이 도경(道經)을 읽고 또 축사(祝辭)를 푸른 종이에 써서 불사른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의의'''==&lt;br /&gt;
&lt;br /&gt;
태일이 천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태일초례는 제천 의례의 하나로 거행되었다. 따라서 제천 의례의 주관자인 국왕은 초례를 통해 천신에게 기원함으로써 천명을 받은 통치자로서 권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차주환, 『한국의 도교사상』, 동화출판공사, 1984.      &lt;br /&gt;
*김철웅, 『한국중세의 길례(吉禮)와 잡사(雜祀)』, 경인문화사, 2007.      &lt;br /&gt;
*양은용, 「고려도교사상의 연구」, 『원광대학교논문집』19, 1985.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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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문화]][[분류:종교]][[분류:도교]][[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고려~조선초기]]&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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