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83%9C%EA%B2%BD%EC%A0%84%28%E6%B3%B0%E6%85%B6%E6%AE%BF%29</id>
		<title>태경전(泰慶殿)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D%83%9C%EA%B2%BD%EC%A0%84%28%E6%B3%B0%E6%85%B6%E6%AE%BF%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D%83%9C%EA%B2%BD%EC%A0%84(%E6%B3%B0%E6%85%B6%E6%AE%BF)&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17T21:09:5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D%83%9C%EA%B2%BD%EC%A0%84(%E6%B3%B0%E6%85%B6%E6%AE%BF)&amp;diff=10875&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D%83%9C%EA%B2%BD%EC%A0%84(%E6%B3%B0%E6%85%B6%E6%AE%BF)&amp;diff=10875&amp;oldid=prev"/>
				<updated>2017-12-09T17:44: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태경전|한글표제=태경전|한자표제=泰慶殿|대역어=|상위어=혼전(魂殿)|하위어=|동의어=|관련어=정희왕후(貞熹王后)|분야=왕실/왕실의례/흉례|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이현진|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53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5001_001 『성종실록』 14년 5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6012_004 『성종실록』 14년 6월 12일]}}&lt;br /&gt;
&lt;br /&gt;
경복궁에 있던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정희왕후처럼 왕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lt;br /&gt;
&lt;br /&gt;
태경전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혼전이다.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윤번(尹璠)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태경(泰慶)’으로 정하고([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5001_001 『성종실록』 14년 5월 1일]), 3개월 뒤 광릉(光陵)에 장례를 치렀다. 3년의 상제가 끝난 뒤 종묘의 세조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태경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1483년 3월 30일 정희왕후가 온양 행궁에서 승하하였고, 영순군(永順君)의 집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3개월 뒤인 6월에 광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이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해 둔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1406012_004 『성종실록』 14년 6월 12일]). 이때 경복궁에 조성한 혼전명이 태경전이다.&lt;br /&gt;
&lt;br /&gt;
처음에는 옛 동궁을 빈전으로 삼고 전전(前殿)을 혼전으로 삼기로 하였다가 혼전은 다시 옛 동궁에 설치하기로 정하였다. 태경전은 경복궁 안에 있었다. 태경전에서 초우제(初虞祭)부터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練祭), 대상제(大祥祭), 담제(禫祭)를 거행하였다.&lt;br /&gt;
&lt;br /&gt;
1485년(성종 16) 5월 12일 정희왕후의 신주를 태경전에서 받들어 내어서 태묘에 부묘하였다. 따라서 태경전은 정희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483년 6월 12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485년 5월 12일까지 경복궁 옛 동궁에 설치되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혼전은 신주를 부묘한 뒤에는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뒤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왜적이 궁궐을 모두 불태웠을 때 경복궁과 그 안에 있었던 태경전도 모두 소실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춘관통고(春官通考)』      &lt;br /&gt;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lt;br /&gt;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      &lt;br /&gt;
&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흉례]][[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