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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침호두(沈虎頭)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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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침호두|한글표제=침호두|한자표제=沈虎頭|대역어=|상위어=기우제(祈雨祭)|하위어=|동의어=호두침(虎頭沈)|관련어=기우의례(祈雨儀禮)|분야=문화/종교/민간신앙|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정승모|시작시기=       태종 |시행시기=기우 시|시행기관=       예조, 태상시|시행장소=       한강 양진(楊津) |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714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107002_008 『세종실록』 11년 7월 2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 도교적 술법의 하나로, 잠자는 용을 깨워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호랑이의 머리를 강물에 빠뜨리며 행하던 기우 의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이규경(李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만물편의 「호랑변증설(虎狼辨證說)」이나 「기우제룡변증설(祈雨祭龍辨證說)」에서 &amp;quot;호랑이 쓸개를 물에 던지면 물이 요동을 하고[虎膽投水善動], 용연(龍淵)에 호랑이 뼈를 던지면 용이 일어난다[龍淵投虎骨龍起]고 하는 말이 있는데, 기우에 침호두법(沈虎頭法)을 쓰는 것은 용이 꺼리기 때문&amp;quot;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lt;br /&gt;
&lt;br /&gt;
한강 양진나루 위에 위치한 양진당(楊津堂, [楊津祠])은 조선시대 침호두(沈虎頭)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물의 신인 용신(龍神)이 산다는 한강에 호랑이의 머리를 넣는 것은 양으로 음을 달래어 기를 누르려는 음양엽승(陰陽厭勝)의 한 술법이다. 기우제 때 도사(道士)들에게 「용왕경(龍王經)」을 읽게 한 것이나 양진당이 위치한 용당산(龍堂山)이란 산 이름도 이와 같은 양진당 기우제의 내력을 전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양진당은 광나루 위 용당산 기슭에 있었고, 그 북쪽에는 [[범굴사(梵窟寺)]]가 있었다. 범굴사는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영응대군(永膺大君)이염(李琰)의 [[원당(願堂)]]으로 지정된 절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에 호굴사(虎窟寺)라고도 나오는 것을 보면 범굴사의 ‘범’은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 ‘범’이고, 또한 침호두의 기우 의례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침호두가 음양을 이용한 엽승법이라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에도 나온다. 1416년(태종 16) 5월 14일 의정부와 육조, 대간에서 한재(旱災)를 구제하는 일곱 가지 방책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침호두로, &amp;quot;명산대천으로서 구름과 비를 일으킬 수 있는 곳에 소재관(所在官)으로 하여금 정성껏 기도하게 할 것&amp;quot;이라는 내용이었다.&lt;br /&gt;
&lt;br /&gt;
1429년(세종 11) 7월 2일 예조에서 가뭄 극복책으로 음양엽승책을 쓸 것을 건의하였는데, 제향 때를 제외하고는 북을 치지 못하게 하며, 한강 양진에 침호두 하는 것을 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107002_008 『세종실록』 11년 7월 2일]). 이에 1430년(세종 12) 5월 25일 왕이 예조에 &amp;quot;여러 도에 명하여 호랑이 머리를 용이 있는 곳에 잠그게 하라.&amp;quot;고 전지한 것으로 미루어 이후 도별로 침호두 기우제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세종은 1431년(세종 13) 5월 16일에 승정원에 전지하기를, &amp;quot;지금도 중국에서는 기우할 때에 호랑이 머리를 용이 사는 못에 담그곤 하는데,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옛 글에도 있으니 담그는 것이 어떻겠는가.&amp;quot; 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도 용연에 침호두하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예제(禮制)가 갖추어지는 세종 이후로도 이러한 기우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제사 장소인 양진당이 퇴락한 채 관리가 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침호두를 통한 기우제 역시 거의 행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침호두 기우제를 지낸 경우도 그 제물로 구하기 힘든 호랑이 머리 대신 멧돼지 한 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 &amp;quot;제단(祭壇)은 성 안의 [[사직(社稷)]]이 가장 중요하고 그 외에는 성 밖에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중에 용단(龍壇)이 한강 위에 있어 가뭄이 들면 침호두를 하여 기우제를 지낸다.&amp;quot;고 쓰여 있다. 용단의 위치는 양진나루 위로 보인다. 『대전통편』에서는 &amp;quot;기우를 위해 침호두를 한강 저자도(楮子島)에서 한다.&amp;quot;고 기록하고 있다. 호두(虎頭)가 진짜 호랑이의 머리인지, 아니면 모형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여러 정황이나 기록으로 보아 모형이 아니라 실제 호랑이 머리임이 확실하다.&lt;br /&gt;
&lt;br /&gt;
[[박상(朴祥)]]      의 『눌재선생속집』에 「양진명소침호두(楊津溟所沈虎頭)」라는 시가 있는데, 호랑이의 이마와 머리에 관한 묘사가 생생한 것이나 호랑이 머리를 함에 담아 9개 역을 거쳐 용당(龍堂)으로 전했다고 한 것을 보면 가짜 호랑이 머리를 대상으로 쓴 시가 아닌 것이 틀림없다. 또한 한강 양진나루 위의 양진당이 위치한 산이 용당산(龍堂山)인 점을 고려하면, 여기서의 용당은 곧 양진당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1474년(성종 5) 윤6월 10일에 예조에서 각처의 기우 행사 요건을 갖추어 실행할 것을 청하였는데, &amp;quot;한강의 양진에는 침호두하게 하고, 또 도류(道流)로 하여금 「용왕경」을 읽게 하며, 박연(朴淵)에도 침호두할 것&amp;quot;이라 하여 침호두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당시 침호두 행사에 도류들이 참석하여 「용왕경」을 읽었다는 것은 이 행사가 도교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1595년(선조 28) 4월 27일 기사에 저자도에서 화룡제를 지내려는데 「용왕경」이 모두 산실(散失)되어 구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이러한 전통이 지속되지 못했던 것 같다.&lt;br /&gt;
&lt;br /&gt;
1704년(숙종 30) 6월 26일에는 한재가 심해질수록 단계를 높여 행하는 기우제 절차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였다.&lt;br /&gt;
&lt;br /&gt;
① 삼각산·목멱산·한강에 3품관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② 용산강과 저자도에 재신(宰臣)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③ 풍운뇌우·산천·우사(雩祀)에 재신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④ 북교(北郊)에는 재신을 보내고 사직에는 중신(重臣)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⑤ 종묘에 중신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⑥ 삼각산, 목멱산, 그리고 한강 침호두에 근시(近侍)를 보낸다.&lt;br /&gt;
&lt;br /&gt;
⑦ 용산강과 저자도에 중신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⑧ 풍운뇌우·산천·우사에 중신을 보낸다.&lt;br /&gt;
&lt;br /&gt;
⑨ 북교에는 중신을 보내고 [[모화관(慕華館)]] 못가의 석척동자(蜥蜴童子)는 무신(武臣) 가선대부를 보내며, 여염에는 병류(屛柳)한다.&lt;br /&gt;
&lt;br /&gt;
⑩ 사직에는 대신(大臣)을 보내고, 경회루 못가의 석척동자는 무신 가선대부를 보낸다.&lt;br /&gt;
&lt;br /&gt;
⑪ 종묘에는 대신을 보내고 춘당대 못가의 석척동자는 무신 가선대부를 보내며, 남문을 닫고, 북문을 열며 저자[市]를 옮긴다.&lt;br /&gt;
&lt;br /&gt;
⑫ 5방토룡제(五方土龍祭)를 지내고, 양진·덕진·오관산(五冠山)·감악(紺岳)·송악(松岳)·관악(冠岳)·박연(朴淵)·화적연(禾積淵)·도미진(渡迷津)·진암(辰巖)에는 분시(焚柴)하되, 모두 본도(本道)로 하여금 설행(設行)하게 한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기우제의 아홉 번째 절차에서 &amp;quot;여염에는 병류한다&amp;quot;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버드나무가지를 물병에 담아 거꾸로 세워 놓는 민간에서의 기우 비법을 연상시킨다.&lt;br /&gt;
&lt;br /&gt;
침호두를 하는 기우제 장소로 저자도와 양진이 나오는데, 양진을 현재는 광진나루로 부르는 양진나루로 볼 경우 둘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같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충주 탄금대 아래의 양진명소(楊津溟所)로 본다면 둘은 서로 다른 곳이다. 나라에서 지내는 기우제 중 한강 침호두 장소를 충주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에 충주의 탄금대에 관한 기사에서 양진명소에서 침호두로 기우하였다는 기사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양진은 저자도 부근의 양진나루로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용재총화(慵齋叢話)』      &lt;br /&gt;
*『눌재선생속집(訥齋先生續集)』      &lt;br /&gt;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lt;br /&gt;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lt;br /&gt;
*『여지도서(輿地圖書)』      &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종교]][[분류:민간신앙]][[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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