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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총섭(摠攝)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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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총섭|한글표제=총섭|한자표제=摠攝|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도총섭(都摠攝), 승군(僧軍), 산성총섭(山城摠攝), 양종판사(兩宗判事), 승역(僧役)|분야=문화/종교/불교|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오경후|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106|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na_12608007_008 『선조실록』 26년 8월 7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직된 승군의 지휘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총섭(摠攝)은 불교계 내부의 직책이 아니라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직된 승군(僧軍)의 지휘를 맡기기 위해 승단의 추천을 받아 국가에서 임명하는 직위였다. 전란 초기에는 [[도총섭(都摠攝)]]을 보좌하며 주로 산성의 축조와 방어를 관리 감독하였으나, 이후 도총섭이 사라지면서 그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전란 이후에는 외적 방어를 비롯해 국가 차원의 각종 부역에 동원된 승군을 통솔하는 임무를 맡았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 및 변천'''==&lt;br /&gt;
&lt;br /&gt;
승군이 막 조직된 선조대에는 1명의 도총섭이 승군을 지휘하였으나, 승군을 모집하고 동원하는 데 어려움이 컸으므로 그 아래에 총섭을 두게 되었다. 예컨대 당시 도총섭이던 휴정(休靜)은 1593년(선조 26), 휘하의 상주(尙珠)·쌍인(雙印) 등 두 승장(僧將)이 승군을 효율적으로 지휘할 수 있도록 이들을 각각 교종판사(敎宗判事)와 선종판사(禪宗判事)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판사는 승과(僧科)에 합격한 승려가 받는 법계(法階)가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해당 관청의 최고 관직이었다.&lt;br /&gt;
&lt;br /&gt;
조정에서는 휴정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 승려를 판사로 임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승군을 관리하기 위해 팔도에 선종판사와 교종판사 각 1명씩 총 16명을 도총섭 아래에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곧 방침을 바꾸어 각 도에 2명씩 총섭을 두도록 하였다. 비변사에서, ‘판사’라는 명칭을 붙이면 마치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을 설립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였기 때문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2608007_008 『선조실록』 26년 8월 7일]). 이와 같이 총섭 제도는 시대 상황에 따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련되고 운영되었다.&lt;br /&gt;
&lt;br /&gt;
양란 이후 총섭은 주로 승군을 통솔하고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두 곳의 치영(緇營)을 운영하였다. 그밖에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陵)과 왕세자·왕세자비 및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인 원(園), 그리고 [[사고(史庫)]] 등이 자리한 주요 지역의 사찰 주지가 총섭으로 임명되어 왕실의 무덤과 『조선왕조실록』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예컨대 강릉 월정사(月精寺), 무주 적상산성(赤裳山城) 호국사, 봉화 각화사(覺華寺), 강화 [[전등사(傳燈寺)]] 등을 수호사(守護寺)로 정하고 그 사찰의 주지를 총섭으로 임명하여 『조선왕조실록』을 수호하도록 하였다.&lt;br /&gt;
&lt;br /&gt;
또 [[석왕사(釋王寺)]]·법주사(法住寺)·[[유점사(楡岾寺)]]·[[해인사(海印寺)]]·[[동화사(桐華寺)]]·대흥사(大興寺) 등과 같이 규모가 크고 사회적인 위상과 역할을 지닌 사찰의 주지를 총섭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동화사에 둔 총섭은 특별히 수릉향탄봉산수호총섭(綬陵香炭封山守護摠攝)이라 불렀다. 조정에서는 동화사 인근의 산림을 수릉(綬陵)의 제향에 쓰이는 향탄(香炭)을 공급하기 위한 특수 용도의 산림으로 지정하였는데, 그와 더불어 동화사의 주지를 총섭으로 임명하여 이 산림을 관리하도록 하고 절에 부과된 각종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수릉은 순조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부터 4년간 대리청정을 하다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 즉 문조(文祖)의 능이다.&lt;br /&gt;
&lt;br /&gt;
한편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용주사 등에도 총섭 1명씩을 두었는데, 그 임명 절차를 남한산성의 예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 광주유수 겸 수어사가 뛰어난 승려를 택하여 예조에 보고한다. 예조에서는 단자를 병조로 보내 묻고 최종적으로 왕에게 아뢰어 하교를 받는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예조에서 곧바로 임명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승군의 지휘관인 총섭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승군 주둔지가 폐지될 때까지 약 300년간 존속하면서 불교 교단을 통솔하는 역할을 하였다. 총섭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군의 지휘관 역할을 하였으며, 전란 이후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비롯한 산성의 축조와 수비, [[사고(史庫)]]의 수호, [[능원(陵園)]]의 관리 감독 등을 담당하였다. 그밖에 왕과 왕족을 추모하는 원찰(願刹)의 주지가 총섭에 임명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lt;br /&gt;
*김갑주,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의 종합적 고찰」, 『불교학보』25,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88.      &lt;br /&gt;
*여은경, 「조선후기 대사찰의 총섭」, 『교남사학』3,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1987.      &lt;br /&gt;
*윤용출, 「조선후기의 부역승군」, 『부산대학교 인문논총』26, 1984.      &lt;br /&gt;
*이재창, 「조선조 사회에 있어서의 불교교단」, 『한국사학』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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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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