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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지(參知)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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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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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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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54: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참지|한글표제=참지|한자표제=參知|대역어=|상위어=병조(兵曹)|하위어=|동의어=|관련어=겸지병조사(兼知兵曹事)|분야=정치/행정/관직·관품|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오종록|제정시기=1466년(세조 12)|폐지시기=1894년(고종 31)|소속관서=병조(兵曹)|관품=정삼품 당상|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473|실록연계=}}&lt;br /&gt;
&lt;br /&gt;
조선시대 [[병조(兵曹)]]의 정3품 당상(堂上) 관직.&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국가 행정을 총괄한 육조(六曹) 가운데 국방과 직결된 병조의 업무가 가장 많은 까닭에, 육조의 다른 기관에는 없는 당상관 직책으로 참지(參知)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정원은 1명이었다.&lt;br /&gt;
&lt;br /&gt;
=='''설치와 직무'''==&lt;br /&gt;
&lt;br /&gt;
병조 참지는 1466년(세조 12)에 대규모로 관제를 개혁할 때 겸임직인 지병조사(知兵曹事)를 고쳐서 설치한 관직이다. 이때 병조의 겸임직 [[정랑(正郞)]]과 [[좌랑(佐郞)]]을 모두 녹관(祿官)으로 개편하는 조치도 아울러 취해졌다. 지병조사는 1418년 세종(世宗) 즉위 후에 처음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관직으로, 태종(太宗)이 [[상왕(上王)]]으로서 군사권을 장악하기 위해 병조를 상왕에게 소속시켰던 조치와 관련하여 설치된 것으로 짐작된다. 1422년에 태종이 사망한 뒤 지병조사가 폐지된 것이 그 반증이다.&lt;br /&gt;
&lt;br /&gt;
지병조사는 4군과 6진의 개척이 본격화되어 병조의 업무가 크게 늘어난 1439년(세종 21)에 다시 설치되어 이후 계속 유지되었는데, 역시 겸임직이었으며, 대개 중추부의 관직을 띤 관원이 겸임하였다. 병조의 겸임직 정랑과 좌랑도 이때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겸임직 정랑과 좌랑은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 과정에서 폐지되고, 대신 정랑과 좌랑이 한 자리씩 증설되었다.&lt;br /&gt;
&lt;br /&gt;
병조의 속사(屬司)는 [[무선사(武選司)]]와 [[승여사(乘輿司)]], [[무비사(武備司)]] 등인데, 이 가운데 [[군적(軍籍)]]과 무기, 전함, 중앙군의 근무, 국방 체제 등을 담당한 무비사가 서열은 가장 뒤지지만 업무는 가장 많았다. 그런 까닭에 무비사의 직무 가운데 국방과 관련된 일을 중심으로 업무를 분담하여 관할하도록 1439년에 겸지병조사를 다시 설치하였고, 그 업무가 병조 참지에게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한편 세자의 대리청정이나 전란 시 병조의 분사(分司)인 [[분병조(分兵曹)]]가 설치되는데, 여기에도 참지를 별도로 임명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병조가 관할한 군사 관련 업무는 조선시대 후기를 거치는 동안 여러 갈래로 분화하였다. 그에 따라 병조의 속사에는 무비사만이 남고 무선사는 정색(政色)으로 개편되었으며, 그 밖에 마색(馬色)·[[일군색(一軍色)]]·[[이군색(二軍色)]]·유청색(有廳色) 등 9개의 색(色)이 설치되었다. 병조 참지가 이 가운데 어떤 업무를 관할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가장 서열이 낮은 낭관이 맡았던 이군색과 마색, 도안색(都案色)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군색은 기병과 보병의 [[보포(保布)]]를, 도안색은 별기병(別騎兵)의 보포를 관할하는 것이 주 업무였고, 마색은 말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병조 참지는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에 의해 육조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육전조례(六典條例)』      &lt;br /&gt;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관직·관품]][[분류:직역]][[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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