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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진사복시(進士覆試)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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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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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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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법제정책|대표표제=진사복시|한글표제=진사복시|한자표제=進士覆試|대역어=|상위어=진사시(進士試)|하위어=|동의어=|관련어=진사초시(進士初試), 생원복시(生員覆試)|분야=정치/인사/선발|유형=법제·정책|지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최진옥|시행시기=|시행기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53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1020_001 『태종실록』 14년 1월 20일]}}&lt;br /&gt;
&lt;br /&gt;
시와 부의 제술 능력을 시험 보는 진사시의 최종 단계 시험.&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진사시는 초시와 복시의 두 단계로 이루어지며 문장의 제술(製述) 능력을 시험하였다. 초시에 합격해야 복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시험 시기에 따라 식년시와 증광시로 구분되나 시험의 절차나 방법은 동일하였다. 진사초시 합격자 700명 중에서 최종적으로 복시 합격자 100명을 선발하였다. 합격자에게는 합격증서인 백패(白牌)를 수여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에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lt;br /&gt;
&lt;br /&gt;
=='''제정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국초에는 60년 동안 생원시만 설행하였다. 그런데 애초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자를 선발하던 생원시가, 선초의 교육 기회 양적 확대 정책의 효과로 지방 각 군현에 향교가 신설되고 문풍이 진작됨에 따라 지원자가 급증하게 되자, 1414년(태종 14)에 두 단계 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가리게 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1020_001 『태종실록』 14년 1월 20일]). 즉, 한성시와 향시를 초시로 삼고, 초시에 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복시를 보게 하여 급락을 정하였다. 폐지되었던 진사시가 1453년(단종 1)에 완전히 부활하여 제도화되면서, 진사시도 생원시처럼 초시와 복시 두 차례의 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가리게 되었다.&lt;br /&gt;
&lt;br /&gt;
=='''내용'''==&lt;br /&gt;
&lt;br /&gt;
진사시는 시험 시기에 따라 식년시와 증광시로 구분되었다. 식년시는 3년에 한 번씩(1번씩) 자(子)·오(午)·묘(卯)·유년(酉年)에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시험이었다. 식년 전해 가을에 초시를 치르고 식년 봄에 복시를 치렀다. 증광시는 왕의 즉위를 기념하거나 나라에 경사가 겹쳤을 때 실시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식년시와 증광시는 시험 시기만 다를 뿐 시험 과목, 선발 인원, 시행 방법은 같았다.&lt;br /&gt;
&lt;br /&gt;
진사복시(進士覆試)는 한성시 합격자 200명, 향시 합격자 500명과 초시에 해당하는 승보시(陞補試)·합제(合製)·공도회(公都會) 합격자들이 응시하여 최종 합격자 100명을 선발하였다.&lt;br /&gt;
&lt;br /&gt;
복시에 응시하려면 녹명(錄名)을 해야 했다. 녹명을 하기 전에 『소학(小學)』과 『가례(家禮)』를 앞에 펴 놓고 읽게[臨文考講] 하는 학례강(學禮講)을 통과해야 했다. 시험은 처음에는 예조가 주관하였으나 단종 이후에는 예조와 성균관이 공동으로 주관하였다.&lt;br /&gt;
&lt;br /&gt;
진사복시의 시험 과목은 초시와 동일하였다. 『경국대전』에서는 부 1편, 고시(古詩)·명(銘)·잠(箴) 중 1편이었다가 『속대전』에서는 명과 잠을 폐지하고 부 1편, 시 1편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복시에서 선발된 100명은 1등 5명, 2등 25명, 3등 70명 등 세 등급으로 나누어 합격시켰다. 19세기 후반 정원을 늘려 뽑은 경우에 1등·2등은 변화가 없었고 늘린 인원은 모두 3등에 등제하였다. 합격자에게는 합격증서인 백패를 수여하고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진사복시는 시험 과목 말고는 이렇다 할 변화 없이 운영되었다. 시험 과목은 1453년(단종 1)에 제도화될 때 고부(古賦) 1편, 고시·율시(律詩) 중에서 1편씩 내도록 하였다. 이후 『경국대전』에서는 부 1편, 고시·명·잠 중 1편으로 법제화하였다가 『속대전』에서 명과 잠을 폐지하고 부 1편, 시 1편으로 바꾸었다.&lt;br /&gt;
&lt;br /&gt;
사회적으로 조선초기에는 성균관에서 생원이 먼저 앉고 다음에 진사가 앉았다. 진사시를 나중에 설치하였고, 국가정책이 사장(詞章) 시험인 진사시보다 경학(經學) 시험인 생원시를 중시하였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사회적으로는 사장학적 능력을 숭상하는 풍토가 강해 시간이 흐를수록 생원보다 진사를 더 선호하였다. 철종 이후에는 생원보다 진사를 훨씬 많이 뽑았고,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들도 자신들을 진사라고 부를 정도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속대전(續大典)』      &lt;br /&gt;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      &lt;br /&gt;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진사연구』, 집문당, 1998.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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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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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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