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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통(注筒)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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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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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27: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주통|한글표제=주통|한자표제=注筒|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기사주통법(騎射注筒法)|관련어=|분야=정치/군사·국방/병기|유형=물품·도구|지역=|시대=|왕대=|집필자=심승구|용도=|재질=|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43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ea_10107017_002 『문종실록』 1년 7월 17일]}}&lt;br /&gt;
&lt;br /&gt;
물을 넣고 시간을 측정하던 통.&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주통(注筒)은 조선시대에 무과, 도시, 내금위 등의 시취(試取) 제도에서 말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주통은 통 안에 물을 넣고 물이 다 비워질 때까지 말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지의 여부를 측정하는 데 쓰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주통을 언제부터 시행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1402년(태종 2)에 무과를 시행하면서 기사(騎射) 시험을 볼 때 속도가 늦을 경우에 사용하였는데, 이를 기사주통법(騎射注筒法)이라고 하였다. 주통법은 말이 달리는 속도를 재기 위하여 통 속에 물을 넣어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 같은 시험 방법은 기사의 시험이 원래 말을 달리며 과녁을 맞히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인데, 응시자들이 말을 달리는 속도는 무시하고 목표물을 맞히는 데에만 급급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를 볼 때 속도가 늦을 경우에는 반드시 주통을 이용하여 다시 시험 보게 하였다. 무과에 쓰이던 주통은 이후 춘추도시(春秋都試)와 내금위 등에서 무예 시험을 볼 때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451년(문종 1)부터 기사를 보는 모든 무예 시험에 주통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한 이때부터는 주통의 등급을 나누어 제1주통, 제2주통으로 시험을 보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ea_10107017_002 『문종실록』 1년 7월 17일]).&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전시의 고증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lt;br /&gt;
*심승구, 「조선전기 무과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lt;br /&gt;
*심승구, 「조선초기 무과제도」, 『북악사론』1, 1989.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군사·국방]][[분류:병기]][[분류:물품·도구]]&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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