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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교(舟橋)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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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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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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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44: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주교|한글표제=주교|한자표제=舟橋|대역어=|상위어=교량(橋梁)|하위어=|동의어=배다리|관련어=거둥[擧動], 경강(京江), 원행(園幸), 의례(儀禮), 한강(漢江), 행차(行次), 행행(行幸), 화성(華城),|분야=문화/예술/건축|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정조|집필자=이연노|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952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va_11312004_003 『정조실록』 13년 12월 4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1412024_003 『정조실록』 14년 12월 24일]}}&lt;br /&gt;
&lt;br /&gt;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연결해 만든 다리.&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일명 ‘배다리’라고 칭하기도 한다. 주교(舟橋)는 정조가 화성(華城)에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널 때 배를 타고 건너는 대신, 배를 이용해 다리를 만들어 건너면서부터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정조는 즉위한 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생부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을 수원 화산(花山)으로 이장하여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하였다. 이후 신도시인 화성을 건설하고 수시로 이곳에 행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이 한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행행에 참가하는 많은 인원이 모두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널 경우에는 많은 폐단이 발생했다. 행렬이 흩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모든 인원을 실어 나를 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몇 척의 배를 연결해서 도강하는 기존의 사례들도 있었지만, 정조가 혜경궁 홍씨를 대동하고 ‘을묘년 [[원행(園幸)]]’을 하는 정도로 행차 규모가 확대될 때에는 다리를 놓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을묘년 원행을 정리해놓은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주교절목(舟橋節目)」에 잘 나타나 있다.&lt;br /&gt;
&lt;br /&gt;
「주교절목」에 따르면, 현륭원으로 행행하기 위해 한강을 건널 때 필요한 선박의 숫자가 4, 5백 척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배를 구하는 과정에서 농간을 부려 뱃사람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에 정조는 배다리 제도를 만들어 경강(京江)의 큰 배들을 연결하여 교량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면 배를 찾아다니는 수고가 줄어들고 공력과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lt;br /&gt;
&lt;br /&gt;
정조는 배다리를 만들고 감독할 기구로 [[주교사(舟橋司)]]를 설치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312004_003 『정조실록』 13년 12월 4일]). 주교사에서 배다리를 만드는 세부 사항을 다룬 「주교절목」을 만들어 제시했지만 정조의 의도와는 다른 면이 많았다. 이에 정조가 주교를 만드는 세부 사항인 『주교지남(舟橋指南)』을 직접 만들어 이것으로 배다리를 만들도록 하였다.&lt;br /&gt;
&lt;br /&gt;
『주교지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배다리는 1790년 12월에 만들어졌다. 여러 지형상의 이점을 고려해 배다리가 설치된 곳은 노량진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412024_003 『정조실록』 14년 12월 24일]). 배다리에 사용한 배는 경강의 배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배다리의 중앙부는 큰 배를 이용해 높게 만들고, 가장자리는 작은 배를 이용해 전체적으로 무지개 모양을 만들었다. 이들 배를 종량으로 연결한 다음, 이 위에 횡판을 깔아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다리에는 난간을 설치하고 횡판 위에 잔디를 깔아 마감했다. 배다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배는 경강의 큰 배로 80척이 들었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배다리가 노량진에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선릉(宣陵)]], [[정릉(靖陵)]], [[장릉(章陵)]], [[건릉(健陵)]], 현륭원에 행행할 때는 노량진에 만들었고 [[헌릉(獻陵)]], [[영릉(英陵)]], 영릉(寧陵)에 행행할 때는 광진(廣津)에 설치하도록 했다.&lt;br /&gt;
&lt;br /&gt;
배다리는 정조 이후에도 계속 만들어져 고종대까지 설치되었다. 철종의 경우 [[인릉(仁陵)]]에 행차할 때 동작진(銅雀津)에 배다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역사상 기록에 나타나는 최후의 배다리는 1898년에 농상공부에서 노량진에 만든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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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문화]][[분류:예술]][[분류:건축]][[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정조]]&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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