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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좌혈(坐穴)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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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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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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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38: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좌혈|한글표제=좌혈|한자표제=坐穴|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혈(穴), 혈처(穴處)|관련어=혈장(穴場)|분야=생활·풍속/풍수|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김혜정|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849|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704004_003 『세종실록』 27년 4월 4일]}}&lt;br /&gt;
&lt;br /&gt;
혈이 놓여 있는 자리.&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풍수지리의 요지는 산수의 형세를 판단하고 길한 좌향을 안배할 수 있는 마땅한 혈 또는 혈처를 찾는 것이다. 혈만으로도 충분히 풍수지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혈이 놓인 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좌혈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좌혈은 음택일 경우 봉분의 가장 밑쪽에 위치해서 관 또는 시신을 놓는 곳인데, 좌혈은 땅속 깊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일일이 파서 살펴볼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따라서 산수의 형세를 가지고 감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좌청룡과 우백호는 물론 현무봉과 안산, 그리고 조산의 모양 등을 감안하여 길지 여부를 판단한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좌혈은 풍만하고 두터운 혈장 속에서 사방의 산들로 둘러싸인 곳을 길격으로 친다. 또 좌청룡과 우백호 모두 유정하고 조산도 조응하는 형국으로 매우 수려하며 뻗어오는 용맥(龍脈)도 첩첩이 쌓여야 하고, [[과협(過峽)]]과 혈장의 좌우로 마치 보내주고 맞이하는 듯한 영송(迎送)의 산들이 연이어져 있어야 한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은 좌혈의 적합성 판단의 근거는 1445년(세종 27) 하연(河演)과 김종서(金宗瑞), 정인지(鄭麟趾) 등이 [[헌릉(獻陵)]] 서쪽에 자리한 세종의 수릉(壽陵)을 살피고 와서 보고한 내용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주산과 사방 봉우리의 조응, 그리고 여러 갈래 수류의 득수와 파구의 방위를 잰 뒤 수릉의 적합성을 아뢰는 상소를 올린다. 입지 적합성의 판단 근거는 지세가 평탄하며 기맥을 간직하고 있고 헌릉과 수릉 모두 기맥을 받아 가운데에 있는 중정의 땅으로서 집과 같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길지로 판단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수릉의 위치는 동쪽 헌릉에 비교했을 때 객산의 한 갈래가 아니라 청계산과 구룡산, 대모산을 주봉으로 주맥이 따로 내려 온 한 줄기이니 쓸 수 있다는 설명을 하였다. 또 사방 20보 안에 물이 없으니 수렴의 걱정도 없고, 멀리 수류 또한 환포의 형국이므로 가하다는 내용도 덧붙이고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704004_003 『세종실록』 27년 4월 4일]). 좌혈의 판단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조선후기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좌혈에서 좌는 용맥이 들어온 방위 혹은 음택과 양택의 뒤쪽 방위를 의미하는데, 길지의 핵심 처인 혈과 함께 쓰임으로써, 좌혈은 조선전기와 후기 모두 혈의 길흉 판단에서 산수의 형세와 함께 방위도 고려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lt;br /&gt;
*『장서(葬書)』      &lt;br /&gt;
*『청오경(靑烏經)』      &lt;br /&gt;
*김두규, 『풍수학사전』, 비봉출판사, 2005.      &lt;br /&gt;
*장성규, 『백두대간의 역사』, ㈜한국학술정보, 2008.      &lt;br /&gt;
*장성규·김혜정, 『완역 풍수경전』, 문예원, 2010.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풍수]][[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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