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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곽(早藿)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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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3T18:32:5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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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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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6:1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식재료|대표표제=조곽|한글표제=조곽|한자표제=早藿|대역어=미역|상위어=|하위어=|동의어=감곽(甘藿), 곽(籗), 곽이(藿耳), 분곽(粉藿), 사곽(絲藿), 해곽(海藿), 해채(海菜)|관련어=장곽(長藿)|분야=생활·풍속/식생활/음식|유형=식재료|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차경희|생산지=|수확시기=2월~6월|관련의례=천신제(薦新祭)|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425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3307016_002 『영조실록』 33년 7월 16일]}}&lt;br /&gt;
&lt;br /&gt;
천신제(薦新祭)를 지낼 때 올리던 제물의 하나로, 음식 재료로 사용한 갈조식물 미역과의 해조(海藻).&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미역은 다시마목 미역과의 갈조식물이다. 난류성 해조류로 바닷속 암초에 붙어살며, 색은 암갈색을 띤다. 조선에서 1월에 천신하는 제물이었다. 조곽(早藿)은 일찍 생산되는 미역을 말한다. [[해채(海菜)]], 해곽(海藿), 분곽(粉藿), 곽이(藿耳), 사곽(絲藿), 감곽(甘藿)이라고도 한다.&lt;br /&gt;
&lt;br /&gt;
=='''원산지 및 유통'''==&lt;br /&gt;
&lt;br /&gt;
『세종실록』      「지리지」에 경상도경주부(慶州府) 동래현(東萊縣)과 안동도호부(安東大都護府) 영덕현(盈德縣) 그리고 전라도의 토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허균(許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8가지의 해조를 구분하고, 그중 조곽은 이른 미역으로 삼척에서 정월에 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해조류를 먹은 역사는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 이전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해조와 곤포(昆布) 등을 즐겨 먹는데,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여러 번 먹으면 먹을 만하다고 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선왕 때 원나라로 미역을 보낸 기록과 문종이 바닷가의 미역을 따는 곽전(藿田)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용도'''==&lt;br /&gt;
&lt;br /&gt;
1월에 진상된 조곽은 종묘에 천신하였다.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장례 때 [[혼궁(魂宮)]] 진배 물품에 품질이 좋은 미역인 분곽과 일찍 따서 말린 미역인 조곽 등이 올랐다. 영조대에 [[혼전(魂殿)]]에 공진하는 채소와 과일의 공물 폐단을 논하던 중 해곽은 종류는 1가지이나 명칭이 분곽, 조곽, 곽이, 사곽, 감곽으로 5가지나 되어 그것을 품종대로 각각 올리니 민폐가 매우 크다고 하면서 사곽과 곽이 2종류는 특별히 감하게 한 일이 있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3307016_002 『영조실록』 33년 7월 16일]).&lt;br /&gt;
&lt;br /&gt;
각 도에서 진상을 하는 물종의 비리도 많았다. 인조대에 강원감사는 천신 물품으로 조곽을 올리지 않은 삼척부사를 파면했고, 전라도의 진상 가운데 대왕대비전과 중궁전에 올릴 각각의 조곽 10근과 8근 등을 훔친 배지인을 엄중히 치죄하였다.&lt;br /&gt;
&lt;br /&gt;
『규합총서(閨閤叢書)』,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 『음식방문(飮食方文)』에는 푸르고 좋은 미역을 불려 다듬어 마디마디 싸 동심결을 맺어 지지는 미역자반이 기록되어 있다. 보양의 목적으로도 이용되는데, 『보감록(寶鑑錄)』에는 미역으로 늙은 어버이를 보양할 수 있다고 하였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기(氣)를 내리므로 지속적으로 먹으면 몸이 여위니 장복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또 고려의 미역[昆布]은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빼고 국을 끓여 조밥이나 멥쌀밥과 함께 먹으면 아주 좋다. 몸의 기를 내리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식품과 같이 먹어도 좋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 관련사항'''==&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는 삼신할미가 점지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출산을 앞두고는 삼신상을 차려 건강한 아이의 순산을 빌었다. 임산부는 해산하기 전부터 꺾이지 않은 장곽(長藿)이라는 긴 미역을 준비해 둔다. 분만이 가까워 오면 장곽과 흰쌀로 삼신상을 차리고, 순산 후에는 흰쌀로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여 3그릇씩을 떠 놓아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미역국은 산모들이 해산날부터 삼칠일까지 끓여 먹는데, 미역이 산모들의 산후회복과 수유를 돕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lt;br /&gt;
*『일성록(日省錄)』      &lt;br /&gt;
*『고려도경(高麗圖經)』      &lt;br /&gt;
*『규합총서(閨閤叢書)』      &lt;br /&gt;
*『도문대작(屠門大嚼)』      &lt;br /&gt;
*『보감록(寶鑑錄)』      &lt;br /&gt;
*『본초강목(本草綱目)』      &lt;br /&gt;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      &lt;br /&gt;
*『음식방문(飮食方文)』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식생활]][[분류:음식]][[분류:식재료]][[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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