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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제웅(草人)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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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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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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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23: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제웅|한글표제=제웅|한자표제=[草人]|대역어=|상위어=|하위어=박초인(拍草人), 처용희(處容戱)|동의어=제웅[體俑], 추령(芻靈)|관련어=목호로(木葫蘆), 상원(上元), 처용(處容), 체용(體俑), 칠살(七殺)|분야=생활·풍속/풍속/행사|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최진아|용도=|재질=|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745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va_10501017_001 『정조실록』 5년 1월 17일]}}&lt;br /&gt;
&lt;br /&gt;
제웅직성에 든 사람이 재액을 막기 위해 짚으로 만든 인형.&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추령(芻靈) 혹은 체용(體俑, 제웅)이라 불리기도 한다. 추령은 처용(處容)에서 빌려 온 것이다. 처용놀이라 해서 처용희(處容戱)라 하거나 초인을 친다는 의미로 박초인(拍草人)이라 한다. 어린아이들은 크기가 작은 나무조롱[木葫蘆]으로 액을 막았다. 직성(直星) 중에 가장 꺼리는 제웅직성에 든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인 상원(上元) 전날 만들어 길에 버리면 액을 면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제웅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처용의 이름을 추령에서 빌렸던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직성은 먹은 나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본다는 9개의 별, 즉 나후(羅睺)·토(土)·수(水)·금(金)·일(日)·화(火)·계도(計都)·월(月)·목(木)을 말한다. 남자는 열 살에 제웅직성이 들기 시작하여 열아홉 살에 다시 돌아오고 여자는 열한 살에 들기 시작한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의하면 제웅은 포악한 영웅의 별인 칠살(七殺)이라 꺼린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은 제웅 대신 삼색의 나무조롱을 겨울 내내 차고 다니다가 상원 전날 밤에 몰래 버렸다고 한다. 또한 성인들이 정월 14일 밤에 버린 제웅을 아이들이 주워 동전만 빼 가면 그 직성을 버린 사람은 한해의 액운을 면할 수 있다고도 한다. 『완당전집(阮堂全集)』에는 아이들이 제웅직성에 든 사람의 대문 밖에서 ‘직성(直星)’ 하고 외친다고 하였다. 이때 제웅을 던져주면 아이들이 그 안의 동전을 빼 간다. 그러면 해당 직성의 사람이 액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lt;br /&gt;
&lt;br /&gt;
이렇게 제웅을 가지고 노는 것을 ‘처용희(處容戲)’라 불렀다. 이때 아이들이 서로 동전을 빼 가려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1781년(정조 5)에는 상원 전날 아이들이 제웅 놀이를 하지 말도록 금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0501017_001 『정조실록』 5년 1월 17일]).&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동국세시기』와 『경도잡기』에 의하면, 일직성(日直星)과 월직성(月直星)을 만난 사람은 종이로 해와 달 모양을 만들어 나무에 끼워 지붕의 용마루에 꽂았고, 수직성(水直星)을 만난 사람은 종이에 밥을 싸서 밤에 우물 속에 던졌다. 제웅직성에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드는데, 짚을 이용해 사람 형상에 가까운 인형을 만들어 그 머릿속이나 뱃속에 동전을 숨기면 완성된다. 아이들은 나무조롱 세 개에 각각 청색·홍색·황색 칠을 하여 거기에 유색의 실로 끈을 만들어 차고 다녔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제웅직성을 만난 어른들은 제웅을 몰래 버리거나 혹은 문 밖에 아이들의 소리에 이것을 내어주기도 하여 액운을 막았다. 이와 달리, 직성을 만난 어린아이들은 세 가지 색상의 나무조롱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차고 다니다가 정월 14일 밤에 몰래 길에다 버리면 액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경도잡지(京都雜誌)』            &lt;br /&gt;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lt;br /&gt;
*        『목민심서(牧民心書)』            &lt;br /&gt;
*        『완당전집(阮堂全集)』            &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lt;br /&gt;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lt;br /&gt;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lt;br /&gt;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풍속]][[분류:행사]][[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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