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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절(旌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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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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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22: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정절|한글표제=정절|한자표제=旌節|대역어=|상위어=의물(儀物), 의장(儀仗)|하위어=|동의어=|관련어=개(蓋), 당악정재(唐樂呈才), 정재(呈才), 황정절(黃旌節), 휘장(揮帳)|분야=문화/예술/정재|유형=물품·도구|지역=궁중|시대=고려, 조선|왕대=고려, 조선|집필자=조경아|용도=의례, 의장|재질=대나무, 비단|관련의례=진연, 진찬, 진작, 흉례, 상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95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005026_003 『세종실록』 10년 5월 26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612014_001 『영조실록』 26년 12월 14일]}}&lt;br /&gt;
&lt;br /&gt;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당악정재(唐樂呈才)]]를 공연할 때 사용한 일곱 층의 휘장이 달린 의물(儀物).&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정절(旌節)은 고려시대부터 당악정재에 쓰인 7층 휘장 모양의 의물을 말한다. 당악정재를 공연할 때, 무대 좌우에 각각 2명씩 차례대로 인인장(引人杖)·정절·용선(龍扇)·정절·[[봉선(鳳扇)]]·정절·[[작선(雀扇)]]·정절·[[미선(尾扇)]] 등을 들고 서서 춤을 추었다. 이때 정절은 든 기녀 8명은 좌우로 나뉘어 2명씩, 인인장과 용선 사이, 용선과 봉선 사이, 봉선과 작선 사이, 작선과 미선 사이에 위치하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따르면, 정절은 고려시대의 당악정재인 헌선도(獻仙桃)·오양선(五羊仙)·포구락(抛毬樂) 정재 등에서 의물로 사용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기에는 새롭게 창작된 [[금척(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하성명(賀聖明)·성택(聖澤)·육화대(六花隊)·곡파(曲破) 등의 당악정재에 의물로 쓰였으며, 이례적으로 향악정재인 봉래의(鳳來儀)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세종대의 성택 정재에서는 정절을 드는 기녀의 수가 일시적으로 6명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005026_003 『세종실록』 10년 5월 26일]). 이후 정절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정재의 의물로 사용되었는데, 1901년(광무 5)에 편찬된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악기풍물(樂器風物)」을 살펴보면, 1897년(광무 1)에 대한제국을 선포함에 따라 황제국의 격에 맞게 정절이 황정절(黃旌節)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한편 정절은 가례와 흉례 때도 의장으로 쓰였고, 세자와 세손의 의장에 포함되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2612014_001 『영조실록』 26년 12월 14일]).&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정절은 정재의장(呈才儀仗)뿐 아니라 일반적인 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그 형태에는 차이가 있었다. 정재의장으로 쓰인 정절의 형태는 『악학궤범』에 자세히 전한다. 먼저 대나무 자루의 꼭대기[頂子]는 나무로 만들어 주홍칠을 하고, 채색한 그림이 그려진 나무 덮개를 꿴다. 그 아래 홍색·녹색·흑색 비단으로 휘장을 세 개 만드는데, 개(蓋)와 모양은 같지만 크기가 조금 작다. 정절의 휘장은 모두 7층이며, 각 층 안에는 구리 방울[銅鈴]을 하나씩 달고, 밖에는 기(旗)에 다는 솔인 유소(流蘇)를 삼색 비단으로 드리우는데, 삼색 비단에는 모두 금색의 꽃무늬[金花紋]를 박는다. 대나무 자루 전체의 길이는 3자 3치이고, 나무 덮개의 지름은 6치이다.&lt;br /&gt;
&lt;br /&gt;
[[파일:P00011953_01.PNG|300px]]&lt;br /&gt;
&lt;br /&gt;
=='''생활·민속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1829년(순조 29)의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에 따르면, 정절 8자루를 만드는 비용은 246냥 8전 8푼이었다. [[화원(畵員)]] 2명, [[마조장(磨造匠)]] 2명, [[궁인(弓人)]] 5명은 4일간 일했고, [[칠장(漆匠)]] 5명, 부금장(付金匠) 2명, 두석장(豆錫匠) 2명은 5일간 일했으며, 침선비(針線婢) 6명은 6일간 일하였다. 이들은 정절을 만드는 동안 매일 쌀 3되와 무명 1자 1치 6푼을 받았는데, 침선비는 그보다 적은 1전을 매일 식대로 받았다. 그에 비해 1901년의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에 따르면, 황정절 8자루를 만드는 데는 990냥 5전의 비용이 들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악학궤범(樂學軌範)』      &lt;br /&gt;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lt;br /&gt;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lt;br /&gt;
*국립국악원,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lt;br /&gt;
*송방송·조경아 외, 『국역 순조기축진찬의궤: 권3·부편』, 민속원, 2007.      &lt;br /&gt;
*성현 저, 렴정권 역, 『악학궤범』, 평앙국립출판사, 1956.      &lt;br /&gt;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강독회 역주, 『고종신축진연의궤: 권3』,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02.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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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문화]][[분류:예술]][[분류:정재]][[분류:물품·도구]][[분류:궁중]][[분류:고려, 조선]][[분류:고려, 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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