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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점미(粘米)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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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7T14:38:2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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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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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6:18: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식재료|대표표제=점미|한글표제=점미|한자표제=粘米|대역어=찹쌀|상위어=|하위어=|동의어=나미(糯米)|관련어=|분야=생활·풍속/식생활/음식|유형=식재료|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차경희|생산지=|수확시기=|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90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2028_002 『세종실록』 6년 2월 28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607122_004 『세종실록』 26년 윤7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1008_003 『성종실록』 8년 1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pa_12508013_001 『인조실록』 25년 8월 13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0802017_004 『정조실록』 8년 2월 17일]}}&lt;br /&gt;
&lt;br /&gt;
벼과의 찰벼에서 나는 찹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찰밥이나 찰떡의 원료가 된다. 멥쌀이 반투명한 데 비해, 찹쌀은 유백색으로 불투명하고 찰기가 높으며 소화가 잘 된다. 밥이나 약식·찰편·인절미·단자 등의 떡류, 유과류, 식혜, 술, 식초, 고추장 등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찹쌀 또는 나미(糯米)라고도 한다.&lt;br /&gt;
&lt;br /&gt;
=='''원산지 및 유통'''==&lt;br /&gt;
&lt;br /&gt;
벼의 원산지는 중국의 운남(雲南) 지방에서부터 인도의 아삼 지방에 이르는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다. 벼의 종류는 인디카(Indica)종과 자포니카(Japonica)종, 자바니카(Javanica)종으로 나뉜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는 진상되는 공물 중의 하나였다. 세종대에 예조(禮曹)에서 문소전(文昭殿)·광효전(廣孝殿)·계성전(啓聖殿)·헌릉(獻陵)에 공상(供上)할 물품 중 예빈시(禮賓寺)의 관장 물품인 찹쌀[粘米]·밀가루[眞末]·팥[小豆]·송화(松花) 등을 봉상시(奉常寺)로 옮길 것을 청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2028_002 『세종실록』 6년 2월 28일]).&lt;br /&gt;
&lt;br /&gt;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봉상시에서 관장하는 공물 중 교점미(交粘米), 점미(粘米), 찹쌀가루[粘米末]가 있는데, 이 공물들은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에 기록된 기곡제(祈穀祭)에 올리는 제물(祭物)로 봉상시 제물단자(祭物單子)에도 있었다. 정조대에 호조가 사직(社稷) 기곡대제(祈穀大祭)에 쓸 제수(祭需)를 늘려 정한 별단(別單)에서 점미는 전라도와 충청도에 분담하였다.&lt;br /&gt;
&lt;br /&gt;
점미는 조선시대에 일본과 중국과의 교역품 중 하나였다. 세종대에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종정성(宗貞盛)과의 교역 품목 중 백점미(白粘米)가 있었고([http://sillok.history.go.kr/id/kda_12607122_004 『세종실록』 26년 윤7월 22일]), 성종대에도 일본국통신사사목(日本國通信使事目) 중 점미 3석이 있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1008_003 『성종실록』 8년 1월 8일]).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에도 대마도로 갈 때의 교역품에서 찾을 수 있다.&lt;br /&gt;
&lt;br /&gt;
사은사(謝恩使) 인평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가 북경에서 청의 공물 요구품 중 “이곳에는 선미(鮮米)가 극히 귀하니, 100석을 그대로 두되 70석은 점미로 대신 보내라.”고 전하였고([http://sillok.history.go.kr/id/kpa_12508013_001 『인조실록』 25년 8월 13일]), 동지겸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황인점(黃仁點), 부사(副使) 유의양(柳義養) 일행의 중국 사행 시 교역 물품이기도 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0802017_004 『정조실록』 8년 2월 17일]). 『만기요람』「재용편」에 기록된 세폐(歲幣)에도 점미가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용도'''==&lt;br /&gt;
&lt;br /&gt;
중국의 가장 오래된 자전 중 하나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벼를 찰기에 따라 구분하였다. 가장 찰기가 있는 것은 나(糯), 그다음 것은 갱(粳), 가장 찰기가 없는 것은 선(籼)으로 분류하고 있어 당시 찰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한국에는 청동기시대가 도래하면서 솥이 만들어져 시루에 음식을 쪄서 먹을 수 있었다. 또 철기시대에는 쇠솥이 보급되어 오늘날과 같은 밥을 지을 수 있었다. 즉 삼국시대부터 솥을 이용하여 쌀을 찌고 밥을 짓는 것이 가능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3대 유리왕이 왕위에 오를 때 떡을 깨물어 나타난 잇자국으로 치아의 수가 많은 사람을 왕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잇자국이 날 정도의 떡이라면 당시에 찹쌀로 만든 매끄러운 절편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신라 소지왕과 까마귀의 일화에서 약밥이 나온다.&lt;br /&gt;
&lt;br /&gt;
목은(牧隱) 이색(李穡)은 찰밥을 아주 좋아했다. 『목은집(牧隱集)』에는 2월 초하룻날에 둘째아들 집에서 찰밥을 보내오자 읊은 시가 있다.&lt;br /&gt;
&lt;br /&gt;
기름이 자르르한 찹쌀밥에 석밀을 섞고 / 粘米如脂石蜜和&lt;br /&gt;
&lt;br /&gt;
다시 여기에 잣과 밤과 대추를 곁들여서 / 更敎松栗棗交加&lt;br /&gt;
&lt;br /&gt;
천만 가호들이 이를 서로 받들어 보낼 제 / 千門萬戶擎相送&lt;br /&gt;
&lt;br /&gt;
새벽빛 싸늘하고 까마귀는 날갯짓 하네 / 曙色蒼涼欲起鴉&lt;br /&gt;
&lt;br /&gt;
『용재총화(慵齋叢話)』에 기록된 약밥을 짓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찹쌀[粘米]을 씻어 쪄서 밥을 지은 다음, 가늘게 자른 곶감[乾柹]과 익힌 밤·대추, 말린 고사리[乾蕨], 새발버섯[鳥足茸] 등의 재료에다가 꿀과 간장을 섞어서 다시 찐다. 잣[松子]과 호두[胡桃]를 드문드문 박으면 그 맛이 매우 달고 좋은데, 이것을 ‘약밥’이라 이른다. 오늘날의 약밥을 만드는 재료와는 다르다.&lt;br /&gt;
&lt;br /&gt;
찹쌀로 밥을 할 때는 솥을 이용하는 것보다 찜기를 이용하여 찌는 것이 좋다. 솥에 서 가열할 경우 찹쌀의 전분질이 서로 결합하여 밑바닥 부분에 풀처럼 달라붙어 열의 흐름을 방해하여 솥의 아랫부분의 쌀은 타고 윗부분은 설익게 된다. 찔 때는 뜨거운 증기가 찹쌀 사이사이로 고루 스며들어 전체적으로 소화가 잘되도록 한다. 밥을 하는 중간에 찬물을 위에서 한두 번 뿌려 주면 더 잘된다. 다된 찰밥은 메밥에 비해 희고 불투명하며, 찰기가 많고, 쉽게 굳지 않는다.&lt;br /&gt;
&lt;br /&gt;
찹쌀은 술 빚는 재료로도 사용하였다. 『종묘의궤(宗廟儀軌)』에는 종묘에 쓸 제주(祭酒)를 점미로 빚었다는 내용이 있고, 『산림경제(山林經濟)』「구황벽한(救荒辟寒)」조에도 삼해주(三亥酒)·송순주(松笋酒)·적선소주(謫仙燒酒) 주조법에 찹쌀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다.&lt;br /&gt;
&lt;br /&gt;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찰벼의 맛은 쓰고 달며, 성질은 순하고 독이 없다. 먹으면 속을 따뜻하게 한다. 술을 빚으면 덥고, 엿을 고면 더운 기가 많아지므로, 비장과 폐의 기운이 허하고 찬 사람에게 좋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 관련사항'''==&lt;br /&gt;
&lt;br /&gt;
『지산집(芝山集)』에 기록된 단오 풍속을 보면, 오리[鶩]를 삶아 먹고, 줄[菰] 잎사귀로 찹쌀[粘米]을 싼 다음 이를 쪄서 찹쌀떡[粽]을 만들어 먹었다. 이 떡은 음양(陰陽)이 서로 감싸 안아 흩어지지 않는 것을 형상한 것인데, 이를 각서(角黍)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삼국사기(三國史記)』      &lt;br /&gt;
*『삼국유사(三國遺事)』      &lt;br /&gt;
*『일성록(日省錄)』      &lt;br /&gt;
*『만기요람(萬機要覽)』      &lt;br /&gt;
*『목은집(牧隱集)』      &lt;br /&gt;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lt;br /&gt;
*『용재총화(慵齋叢話)』      &lt;br /&gt;
*『임원경제지(林園經濟志)』      &lt;br /&gt;
*『종묘의궤(宗廟儀軌)』      &lt;br /&gt;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lt;br /&gt;
*『지산집(芝山集)』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식생활]][[분류:음식]][[분류:식재료]][[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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