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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저(菹)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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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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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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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36: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저|한글표제=저|한자표제=菹|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침저(沈菹), 침채(沈菜)|분야=생활·풍속/식생활/음식|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주영하|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76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0112007_005 『세종실록』 1년 12월 7일]}}&lt;br /&gt;
&lt;br /&gt;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을 가리킨다. 왕실 제향에서는 부추를 소금에 절인 구저(韭菹), 무를 소금에 절인 청저(靑菹), 미나리를 소금에 절인 근저(芹菹) 등이 쓰였다. 북한의 학자들은 제향(祭享)에 오른 이 세 가지의 저(菹)를 나물로 번역하기도 했다. 죄인을 소금에 절인다는 의미로 ‘해저(醢菹)’의 용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채소절임을 뜻한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중국 한나라 때의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저는 초채(酢菜)이다. 과저(瓜菹)를 부르는 말이다.”라고 했다. ‘초채’는 신맛이 강한 채소를 가리킨다. 진나라의 여불위(呂不韋)가 편찬한 『여씨춘추(呂氏春秋)』에서는 주나라 문왕(文王)이 저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공자가 듣고서 콧등을 찡그리면서 이를 먹은 지 3년 후에야 그 맛을 즐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대 중국에서는 ‘저’를 신맛이 나는 음식을 가리킬 때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주례(周禮)』      「천관(天官)」 ‘해인(醢人)’에서는 제사에 쓰이는 제물(祭物)로 칠저(七菹)가 있다고 했다. 정현(鄭玄)의 주석에 의하면, 칠저는 부추절임[韭菹], 무절임[菁菹], 순채절임[笷菹], 아욱절임[葵菹], 미나리절임[芹菹], 이끼절임[菭菹], 죽순절임[笋菹] 등이다. 또 『주례』에서는 저를 ‘두(豆)’라는 제기(祭器)에 올려서 제상에 차린다고 했다. 이런 규칙이 조선 왕실의 제향에 적용되었고, 칠저 중에서 부추절임·무절임·미나리절임 세 가지가 반드시 제사에 올랐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112007_005 『세종실록』 1년 12월 7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시경(詩經)』「소아(小雅)」에는 “밭 속에 작은 원두막이 있고, 밭두둑에 과(瓜)가 열려 있다. 이 외를 깎아 저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하늘이 내린 복을 받는다.”는 시가 나온다. 지금까지 발견된 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lt;br /&gt;
&lt;br /&gt;
고려시대의 이규보(李奎報)는 『동국이상국집(東國李相國集)』의 ‘가포육영(家圃六詠)’에서 ‘지염(漬塩)’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청(菁: 순무)’으로 채소절임을 만드는 과정을 시로 적었다. “청을 장(醬)에 담그면[醬尤] 여름 3개월 동안 먹기에 매우 마땅하고, 소금에 절이면[漬塩] 겨울 9개월을 능히 견딜 수 있네. 뿌리는 땅 밑에 휘감겨서 약간 통통한데, 서리가 내릴 때 칼로 자르면 가장 먹기 좋은데 그 모양이 배(梨)와 비슷하다.”&lt;br /&gt;
&lt;br /&gt;
이색(李穡)은 『목은시고(牧隱詩藁)』에서 ‘침채(沈菜)’라는 용어를 채소절임의 뜻으로 사용했다. “개성 사람 유순이 우엉·파·무를 섞어서 만든 침채와 장을 보내 왔다.” 여기서 ‘침채’는 소금절임을 가리키는 말이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서거정(徐居正)은 『사가집(四佳集)』에 실린 「순채포유작(廵菜圃有作)」이란 한시에서 “내 정원 안에 두어 이랑 남짓한 땅이 있어, 해마다 아름다운 채소들을 가득 심으니, 순무[蕪菁]와 무[蘿蔔]와 상추[萵苣]와, 푸른 미나리와 하얀 토란과 붉은 차조기에, 생강·마늘·파·여뀌랑 오미(五味)가 갖추어져서, 잘 삶아서 국 끓이고 절여서[沈] 저를 만드니라.”고 했다. 아마도 순무·무·상추·미나리 등을 절여서 저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세조 때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는 『산가요록(山家要錄)』에서 침채를 만드는 법을 여러 가지 소개하였다. ‘침백채(沈白菜)’는 “깨끗이 씻은 배추 한 동이에 소금 삼 홉을 고루 뿌려 넣고 하룻밤 지낸다. 다시 씻어서 먼저처럼 소금을 뿌리면서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는다. 다른 침채법과 같다.”고 했다.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는 방법이다. ‘청침채(菁沈菜)’는 무를 재료로 하지만 들어가는 양념이 없이 오로지 소금물로 맛을 낼 뿐이다. 다만 항아리의 국물에 거품이 생기거나 넘치면 매일 걷어 내고 소금물을 타서 조금씩 부어 주면 좋다고 했다. 생파를 이용한 ‘생총침채(生蔥沈菜)’ 역시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5~6월에 생파를 뿌리와 겉껍질을 없애지 말고 깨끗이 씻어서 물기가 없도록 잠시 말린다. 파 한 벌에 소금 한 켜를 켜켜로 번갈아 깔아 다발을 만들어 항아리에 담고 맑은 물을 가득 붓는다. 아침저녁 물을 부어 매일 이렇게 물이 맑아질 때까지 바꾸어 주는데, 5~6월에 담가 두면 겨울이 지나도록 쓸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파를 깨끗이 씻어서 적당히 소금으로 버무려서 나무통에 담고 2일을 두어 소금기가 다 배어들면 항아리를 볕이 드는 곳에 놓는다. 파는 다발로 만들어 넣는데 지저분하지 않은 것으로 꼭꼭 눌러 놓는다.” 이렇듯이 당시의 침채는 양념을 거의 넣지 않고 만들었다.&lt;br /&gt;
&lt;br /&gt;
장계향(張桂香)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는 ‘생치딤채법(生雉沈菜法)’이 나온다. “오이지의 껍질을 벗겨 속은 도려내고 가늘게 한 치 길이만큼 도독도독 썰어 물에 우려 둔다. 꿩은 삶아 오이지와 같이 썰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침채같이 담가 삭혀서 먹는다.” 오이지라는 채소절임이 들어갔기 때문에 침채법이라 했다.&lt;br /&gt;
&lt;br /&gt;
유중림(柳重臨)의『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치포(治圃)」 ‘채명(菜名)’에서는 각 채소의 재배법과 이용법을 소개하면서, 당시 조선의 조리법을 속방(俗方)이라 적고 저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다. 황과담저법(黃瓜鹹菹法)은 “늙지 않은 오이를 가져다가 꼭지를 떼고 깨끗하게 씻는다. 칼로 세 쪽에 칼집을 내어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또 마늘 4~5조각을 넣는다. 오이를 먼저 항아리에 넣는다. 오래 끓인 물에 소금을 넣고 아주 뜨거울 때에 오이에 붓는다. 항아리 주둥이를 단단하게 싸맨다. 그다음 날에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황과함저법(黃瓜鹹菹法)은 “늙지 않은 오이를 가져다가 깨끗하게 씻는다. 생강·마늘·만초(蠻椒)·부추·파의 흰 대 따위의 양념을 아주 가늘게 채 썬다. 깨끗한 항아리에 먼저 오이를 한 겹 넣고 그 위에 양념을 한 겹 넣어 오이가 다 없어질 때까지 차곡차곡 쌓는다. 오래 끓인 물에 소금을 타서 조금 짜게 한 뒤에 물이 뜨거울 때에 항아리에 붓는다. 볏짚으로 덮고 뚜껑을 닫아 놓았다가 이튿날에 먹는다. 이것은 여름철의 요리 방법이다.”고 했다.&lt;br /&gt;
&lt;br /&gt;
홍석모(洪錫謨)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음력 10월에서 “서울 풍속에 만청(蔓菁)·송(菘)·산(蒜)·초(椒)·염(鹽)으로 옹기에 저를 담근다. 여름의 장과 겨울의 저는 곧 민간에서 일 년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했다. 김장을 하는 일을 저를 담근다고 했다. 이후 저는 침채와 김치라는 말로 대체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동국이상국집(東國李相國集)』      &lt;br /&gt;
*『목은시고(牧隱詩藁)』      &lt;br /&gt;
*『사가집(四佳集)』      &lt;br /&gt;
*『산가요록(山家要錄)』      &lt;br /&gt;
*『설문해자(說文解字)』      &lt;br /&gt;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lt;br /&gt;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lt;br /&gt;
*『시경(詩經)』      &lt;br /&gt;
*『여씨춘추(呂氏春秋)』      &lt;br /&gt;
*『주례(周禮)』      &lt;br /&gt;
*주영하, 「김치의 문화인류학적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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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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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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