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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획(臧獲)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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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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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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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37: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장획|한글표제=장획|한자표제=臧獲|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노비(奴婢)|관련어=토전장획(土田臧獲)|분야=사회/사회구성원/천민|유형=개념용어|지역=|시대=고려~조선|왕대=|집필자=문숙자|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570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1102009_002 『태종실록』 11년 2월 9일]}}&lt;br /&gt;
&lt;br /&gt;
노비의 이칭.&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노비(奴婢)를 다른 말로 흔히 장획(臧獲)이라 칭한다. 장획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의미의 변화 없이 노비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흔히 재산으로써의 노비와 토지를 지칭할 때, ‘노비’와 ‘토지’ 대신 ‘토전(土田)’, ‘장획’이 짝을 이뤄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사전적으로는 장획을 고대에 쓰였던 노비의 천칭(賤稱)으로 풀이한 경우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 사서에서 이를 천칭으로 쓰고 있지는 않다. 『고려사』에 쓰인 장획이라는 용어는 주로 토전과 함께 등장하여 노비를 지칭하고 있다. 즉, 토전장획(土田臧獲)은 토지와 노비를 지칭하는 말로, [[전민(田民)]]이라는 표현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lt;br /&gt;
&lt;br /&gt;
조선초기 『경국대전』의 「[[예전(禮典)]]」에는 ‘노비토전사패식(奴婢土田賜牌式)’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에는 &amp;quot;장획 몇 구(口)와 토전 몇 결(結)을 특별히 그대에게 상으로 준다.&amp;quot;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즉, 제목은 ‘노비토전사패식’으로 하였으나 본문에는 ‘장획과 토전을 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노비와 장획은 동일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노비를 지급해 달라는 신하들의 청에 대하여 장획을 하사했다는 기사가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102009_002 『태종실록』 11년 2월 9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장획은 조선초기 『조선왕조실록』이나 법전에서는 자주 등장하나, 후기의 관찬 사서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장획이 노비의 이칭으로 고려시대에 주로 쓰인 용어이고, 그 유제(遺制)가 조선초기까지 이어졌으나 차츰 사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 기록물의 경우 조선후기에도 장획이라는 용어가 쓰여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약용(丁若鏞)이 『목민심서』에서 &amp;quot;장획이 비록 많더라도 양순한 자를 고를 것[臧獲雖多 良順是選]&amp;quot;이라고 한 구절이 그 예라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목민심서(牧民心書)』      &lt;br /&gt;
&lt;br /&gt;
[[분류:사회]][[분류:사회구성원]][[분류:천민]][[분류:개념용어]][[분류:고려~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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