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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자(莊子)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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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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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21T16:18: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서명사전|대표표제=장자|한글표제=장자|한자표제=莊子|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철학|유형=문헌|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세종|집필자=성낙수|저편자=장자(莊子)|간행처=주자소|간행년일=1425년(세종 7)|권책수=1책|사용활자=경자자(庚子字)|표제=|소장처=국립중앙도서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08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0701017_002 『세종실록』 7년 1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306022_002 『세조실록』 13년 6월 22일]}}&lt;br /&gt;
&lt;br /&gt;
기원전 290년 경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지은 책.&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장자(莊子)』는 기원전 290년 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장자의 저서이다. 전문은 65,000여 자이며, 「내편(內篇)」 7편과 「외편(外篇)」 15편, 「잡편(雜篇)」 11편 등 모두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주로 북송(北宋)의 임희일(林希逸)이 지은 주해서 『장자권재구의(莊子鬳齋口義)』로 『장자』를 접했다. 그러다가 박세당(朴世堂)의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를 편찬한 뒤로는 『장자권재구의』와 『남화경주해산보』가 『장자』 읽기의 표준 교재가 되었다.&lt;br /&gt;
&lt;br /&gt;
=='''편찬/발간 경위'''==&lt;br /&gt;
&lt;br /&gt;
조선 초기에는 조정에서 『장자』를 간행하여 배포하였다. 『세종실록』에 보면 1425년(세종 7) 주자소(鑄字所)에서 찍어낸 『장자(莊子)』를 문신(文臣)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라는 기록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701017_002 『세종실록』 7년 1월 17일]) 이어 『세조실록』에도 1467년(세조 13) 세조가 선발한 문신들에게 『주역(周易)』 및 『장자』 등을 나누어주고, 기한을 정하여 다 읽게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1306022_002 『세조실록』 13년 6월 22일]) 이때에 나누어 준 『장자』는 임희일의 『장자권재구의』이다.&lt;br /&gt;
&lt;br /&gt;
임희일의 『장자권재구의』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기록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김정국(金正國)은 『사재집(思齋集)』「척언(摭言)」에서 “일찍이 『장자권재구의』를 보았더니[嘗見莊子鬳齋口義]”라고 서술하였으며, 홍여하(洪汝河)는 『목재집(木齋集)』「독서차기(讀書箚記)」에서도 “임희일이 주해한 장자[林希逸註莊子]”라고 서술한 부분을 볼 수 있다. 서거정(徐居正) 역시 『사가문집(四佳文集)』 보유(補遺) 「진동문선전(進東文選箋)」에서 “남화경 10편의 글은 변화가 기굴하다[南華十篇書變化奇崛]”이라고 하였는데, ‘10편’은 ‘10권 10책’으로 간행된 임희일의 『장자권재구의』를 가리킨다.&lt;br /&gt;
&lt;br /&gt;
=='''서지 사항'''==&lt;br /&gt;
&lt;br /&gt;
국립중앙도서관에는 1425년에 경자자(庚子字)로 간행된 소개된 『장자권재구의』 결본 1책이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또한 1474년(성종 5)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김영유(金永濡)의 주도로 간행한 『장자권재구의』에는 당시 함양군수(咸陽郡守)이던 김종직(金宗直)의 발문이 붙어 있다. 그 발문에는 “세종 임금 때에는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새로운 주해서를 구해 오면 모두 동활자(銅活字)로 찍어냈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에 유행한 것은 대개 이때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나온 뒤로는 다시 찍지 않은 채 세월이 오래되어, 학사(學士)나 대부(大夫)의 집안에도 전하는 것이 드물다. 갑오년(1474년 : 성종 5)에 관찰사김영유가 이 책 한 본을 구해서 각 고을에 분담시켜 간행하게 하여 경주부에서 취합하게 하였다. 이에 『장자구의』를 사람마다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후학에게 끼친 그 은혜가 지극하다.”라고 하였다. 발문 뒤에는 간행을 분담했던 경상도 17개 고을의 이름과 지방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장자권재구의』 역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개인 소장자도 다수 있다.&lt;br /&gt;
&lt;br /&gt;
=='''구성/내용'''==&lt;br /&gt;
&lt;br /&gt;
『장자』는 「내편」과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총 7편으로 「소요유(逍遙遊)」ㆍ「제물론(齊物論)」ㆍ「양생주(養生主)」ㆍ「인간세(人間世)」ㆍ「덕충부(德充符)」ㆍ「대종사(大宗師)」ㆍ「응제왕(應帝王)」으로 되어 있으며, 「외편」은 「병무(騈拇)」 이하 15편, 「잡편」은 「경상초(庚桑楚)」 이하 11편 등 모두 3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장자가 쓴 것은 「내편」 7편뿐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세의 장자학파 사람들이 장자에 가탁해 썼다는 것이 통설이다.&lt;br /&gt;
&lt;br /&gt;
장자가 살았던 연대나 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장자는 몽현(蒙縣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邱縣))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고, 옛날에 몽현의 옻나무 밭을 지키는 관리였다. 그리고 위(魏)나라 혜왕(惠王), 제(齊)나라 선왕(宣王)과 동시대 사람이었다.”고 한다. 위나라 혜왕의 재위 시기는 기원전 370년~기원전 319년이고, 제나라 선왕의 재위 시기는 기원전 319년~기원전 301년이었으므로, 장자는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살았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장자의 경력에 대해서는 『장자』의 「외편」과 「잡편」에 아내가 있었고[지락편(至樂篇)], 제자가 있었다는 것[산목편(山木篇), 열어구편(列禦寇篇)]을 알려 주는 이야기나, 그의 가난에 대해 말하면서 감하후(監河侯)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는 이야기[외물편(外物篇)], 넝마를 입고 위나라 혜왕을 만난 이야기[산목편(山木篇)] 등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사기』에는 장자를 재상으로 삼으려는 초(楚)나라 위왕(威王)의 요청에 대해 진흙탕에 뒹굴어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로 보기 좋게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장자는 만물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를 ‘도(道)’라 하고, 그 ‘도’에서 보자면 모든 사실에는 구별이 없다는 만물제동(萬物齊同), 즉 만물은 모두 동일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도’와 일체화하는 것, 곧 무심(無心)의 경지에 들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자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이를 위한 수양을 ‘심재(心齋)’, ‘좌망(坐忘)’이라고 했다. 또한 자연을 훼손하는 인위적 행위를 배척하고, 인위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 실제로는 유용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의 철학과 종교사상, 특히 불교의 선종(禪宗)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중요성은 도(道)를 그 이전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천명한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의한 조화보다 더 복잡하고 계몽된 형이상학적 ‘숙명주의’로 해석한 데 있다. 즉 “인간은 만물유전의 법칙에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스스로를 속박하는 개인의 목표나 전통 및 주위 환경 등으로부터 해방되어 모든 것을 감싸는 신비스러운 도와의 조화 속에서 거리낌 없이 살게 된다.”고 하여, 사생을 초월하여 절대 무한의 경지에 소요(逍遙)함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이 위대한 실존을 좋게 또는 나쁘게도 바꿀 수 없으므로, 도를 깨친 사람은 불확실성·불리함·악(惡)·죽음 등이나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해서도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엇을 구하거나 도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장자』는 끊임없는 변화를 주된 주제로 하면서, 비록 이 변화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생활을 존재의 흐름에 맞춤으로써 평안을 얻는다고 보았다.&lt;br /&gt;
&lt;br /&gt;
『장자』 속의 이야기는 대개 우언(寓言)의 형태를 띠고 있어,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대개 역사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멀며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한다. 뛰어난 우언으로 ‘장주호접(莊周胡蝶)’ㆍ‘혼돈개규(混沌開竅)’ㆍ‘포정해우(庖丁解牛)’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세종실록(世宗實錄)』      &lt;br /&gt;
*『세조실록(世祖實錄)』      &lt;br /&gt;
*곽소현, 「장자 수양론에서의 은유-유가 정명론과의 충돌에서 장자 수양 은유의 가치 창조로」, 『철학논총』79, 새한철학회, 2015.      &lt;br /&gt;
*박범수, 「장자에 있어서의 도의 예술정신」, 『미학』28, 한국미학회, 2000.      &lt;br /&gt;
*이홍자, 「『장자』 양생주에 나타난 수사기교의 고찰」, 『동아문화』1,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81.      &lt;br /&gt;
*허수선, 「장자 사상을 통한 한국교육의 대안 모색-外馳에 대한 대응방안을 중심으로」, 『철학논총』74, 새한철학회, 2013.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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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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