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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잡희(雜戱)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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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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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잡희|한글표제=잡희|한자표제=雜戱|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백희(百戱), 잡기(雜技)|관련어=공놀이[弄丸], 나례(儺禮), 목발[躡趫], 무동(舞童), 불뿜기[吐火], 어룡만연지희(魚龍曼衍之戱), 유가(遊街), 재인(才人), 죽간희(竹竿戱)|분야=문화/예술/음악|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이정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244|실록연계=}}&lt;br /&gt;
&lt;br /&gt;
민간 예능인이 펼치는 곡예, 탈춤, 노래, 춤 등 갖가지 놀이.&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잡희(雜戲)는 줄타기, 땅재주, 재주넘기, 불 토하기, 탈춤 등 민간에서 공연된 여러 놀이를 총체적으로 가리킨다. [[백희(百戱)]], 잡기(雜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로 민간에서 공연되었으며, 궁중에서는 왕의 환궁 의례나 중국 사신 환영 의례 등에 포함되었던 [[나례(儺禮)]]에 잡희가 포함되어 연행되었다. 과거 급제자가 유가(遊街)할 때에도 잡희가 수반되곤 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잡희는 천민 출신의 민간 예능인이 펼친 갖가지 기예이다. 민간뿐 아니라 궁중 행사에서 공연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 대규모 나례에 잡희가 필요할 경우 나례도감의 관원이 서울과 지방에서 잡희를 공연할 [[재인(才人)]]들을 물색하여 동원하였다. 이때 불려 올라온 지방 재인들은 놀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으므로, 궁궐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사람이 많은 서울에 계속 머물며 귀향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잡희 종목은 이를 관람했던 사람들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1488년(성종 19)에 조선을 방문했던 중국 사신 [[동월(董越)]]이 보았던 잡희로는 불 뿜기[吐火], 어룡만연지희(魚龍曼衍之戱), 무동(舞童)의 춤, 원숭이 놀이, 땅재주, 곰놀이, 줄타기, 목발[躡趫], 사자놀이, 코끼리놀이가 있었다. 성현(成俔)은 춤, 공놀이[弄丸], 줄타기, 꼭두놀음, 죽간희(竹竿戱)를 언급하였다. 이처럼 잡희는 곡예의 성격을 지니는 놀이 종류가 많았고 볼거리 위주의 종목으로 구성되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잡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나타나며 고려시대까지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 궁중 행사에서 잡희가 등장하는 것은 나례 의식 때이다. 특히 왕이 환궁할 때와 중국 사신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행하는 나례 의식 때 산대를 설치해놓고 전국의 민간 예능인을 소집한 후 여러 가지 잡희를 화려하게 펼치도록 했다. 그러나 인조대 이후부터는 나례의 규모를 축소시키고 영조대와 정조대에는 드물게 나례를 설행하다가 폐지하여, 잡희 공연도 조선후기 궁중에서 약화되다가 결국 민간에서만 연행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조선부(朝鮮賦)』      &lt;br /&gt;
*『허백당집(虛白堂集)』      &lt;br /&gt;
*『나례청등록(儺禮廳謄錄)』      &lt;br /&gt;
*사진실, 『공연문화의 전통 -樂·戱·劇-』, 태학사, 2002.      &lt;br /&gt;
*사진실, 『한국연극사연구』, 태학사, 1997.      &lt;br /&gt;
*윤광봉, 『韓國의 演戱』, 반도출판사, 1992.      &lt;br /&gt;
*사진실, 「공연예술의 기록, 나례청등록 1」, 『문헌과 해석』 창간호, 문헌과해석사, 1997.      &lt;br /&gt;
*조원경, 「儺禮와 假面舞劇」, 『學林』 4, 연세대 사학과, 1955.      &lt;br /&gt;
*조원경, 「仁祖時代의 儺禮謄錄」, 『鄕土서울』 4, 서울특별시, 1958.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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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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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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