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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잡채(雜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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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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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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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6:23: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음식|대표표제=잡채|한글표제=잡채|한자표제=雜菜|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생활·풍속/식생활/음식|유형=음식|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주영하|재료=채소, 겨자즙|관련의례행사=|계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74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911002_001 『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808025_003 『세종실록』 18년 8월 25일]}}&lt;br /&gt;
&lt;br /&gt;
여러 가지 채소를 길게 채 썰어 겨자즙으로 무친 음식.&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여러 가지 채소를 길게 채 썰어 겨자즙으로 무친 음식이다. 조선시대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양조간장으로 양념을 하지 않았다. 후추·참기름·진간장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 즙으로 버무리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만드는 법'''==&lt;br /&gt;
&lt;br /&gt;
장계향(張桂香)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잡채 만드는 법이 나온다. 오이·무·댓무우(무의 한 종류)·참버섯·석이버섯·표고버섯·송이버섯·숙주나물은 생으로, 도라지·거여목·박고지·냉이·미나리·파·두릅·고사리·승검초·동아가지·날꿩고기는 삶아 실처럼 가늘게 썬 것에 말린 생강과 식초에 절인 생강, 그리고 후추·참기름·진간장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 즙으로 무쳐 만든다고 했다.&lt;br /&gt;
&lt;br /&gt;
1800년대 중엽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글 필사본 요리책 『규곤요람(閨壼要覽)』에는 한자로 ‘잡채법(雜菜法)’이라 적고 만드는 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잡채라 숙주나물은 거두절미하고 미나리는 숙주 길이만큼 썰고, 곤자손이와 소의 위인 양을 삶아 같이 채 썰고, 파 데쳐서 채 썰고 갖은 고명을 얹는데 육회 채 썰고 볶아서 각 재료를 모두 한데 섞어 무치고, 계란 부쳐 가늘게 채 썰어 위에다 뿌리고 잣가루 뿌리고 겨자에 무치느니라.”라고 했다. 곤자손이는 소 대장의 골반 안에 있는 창자의 끝부분을 말한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용도'''==&lt;br /&gt;
&lt;br /&gt;
잡채는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를 삶아 길게 채를 썬 것에 양념을 한 음식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었다고 해서 잡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실의 산릉(山陵) 제향(祭享)에 올렸다. 건원릉(健元陵) 이하 여러 산릉의 사시 대향(四時大享)과 정조(正朝)·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동지(冬至)·납향(臘享) 등의 여섯 별제(別祭)에 잡채 다섯 그릇이 올라서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http://sillok.history.go.kr/id/kda_12911002_001 『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잡채는 일상적인 음식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왕실의 수라상이나 잔칫상에 잡채가 자주 올랐는데, 1796년(정조 20) 1월에도 화성에 행차를 한 정조는 화성참(華城站)에서 점심 수라상에 잡채 한 그릇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온갖 잡스러운 채소로 만든 음식을 잡채라고도 불렀으며, 잡다한 채소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세종 때 『경험진제방(經驗賑濟方)』에 의거하여 도라지가루 한 숟갈, 잡채 한 줌, 장과 소금 각각 한 숟갈을 타서 이를 달여 먹으면 한 사람의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으니, 실농(失農)한 각 도에 공포하여 시골 백성에게 두루 알리게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808025_003 『세종실록』 18년 8월 25일]).&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규곤요람(閨壼要覽)』      &lt;br /&gt;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lt;br /&gt;
*『정리의궤(整理儀軌)』      &lt;br /&gt;
*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휴머니스트, 2013.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식생활]][[분류:음식]][[분류:음식]][[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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