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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작서지변(灼鼠之變)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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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사건|대표표제=작서지변|한글표제=작서지변|한자표제=灼鼠之變|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정치/정치운영/정쟁·정론|유형=사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김돈|발생시기=1527년(중종 22)|발생장소=|관련인물집단=|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66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2805017_003 『중종실록』 28년 5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203022_001 『중종실록』 22년 3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703020_001 『중종실록』 27년 3월 20일]}}&lt;br /&gt;
&lt;br /&gt;
1527년(중종 22) 2월과 3월에 쥐를 불태워 동궁을 저주한 사건.&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1527년 당시 [[동궁(東宮)]]이 위태로울 경우 상대적으로 이롭게 될 인물은 후궁인 경빈박씨의 소생 복성군(福城君)이었다. 1533년에 또다시 동궁을 저주한 ‘목패(木牌)의 변’이 발생하면서, 결국 경빈박씨와 복성군은 사사(賜死)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2805017_003 『중종실록』 28년 5월 17일]). 작서지변은 동궁의 안위와 관련된 궁궐 내의 저주 사건에 불과하였지만, 당시 권신·척신의 동향과 갈등, 그리고 왕위 계승 문제까지 내포한 고도의 정치적 음모가 개재된 사건이었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lt;br /&gt;
중종대에 들어와 [[괘서(掛書)]]나 목패에 익명서의 형태로 당사자를 비방·모략·저주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 사건도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인데, 당시 이러한 저주 행위를 통해 위해를 가하려 했던 동궁은 13세였다. 동궁이 저주를 당해 안위가 위태로우면 이롭게 될 인물은 후궁인 경빈박씨의 소생인 복성군이었다. 이 사건 직후에 유배에 처해졌던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동궁을 보호한다는 ‘보익동궁(輔翼東宮)’을 명분으로 정계에 재등장하였다.&lt;br /&gt;
&lt;br /&gt;
=='''발단'''==&lt;br /&gt;
&lt;br /&gt;
작서지변은 1527년 3월, 좌의정이유청(李惟淸)과 우의정심정(沈貞)이 동궁과 대전 근처에서 쥐를 불태운 사실을 알리면서 발생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2203022_001 『중종실록』 22년 3월 22일]). 경빈박씨의 시녀들을 중심으로 추문하였으나 뚜렷한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처음부터 동궁을 저주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대왕대비 정현왕후(貞顯王后)에 의해 경빈박씨가 주모자로 지목되었고, 곧바로 경빈박씨는 폐서인(廢庶人)되고 복성군은 작호가 박탈되었다.&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lt;br /&gt;
1527년에 발생한 작서지변은 동궁에 대한 위해를 목적으로 한 1533년 목패의 변에 이르러 경빈박씨와 복성군이 사사되며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유배되었던 김안로가 풀려나 정계에 재등장하였고, 오히려 이 사건을 조정에 처음 알린 좌의정심정이 사사되면서 정치 주도 세력이 교체되었다. 1532년에 유생 이종익(李宗翼)이 김안로의 아들 김희(金禧)가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였으나 명백한 증거는 없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2703020_001 『중종실록』 27년 3월 20일]). 결국 이 사건으로 권신 김안로는 재등장하여 1537년에 사사될 때까지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28: 조선 중기 사림 세력의 등장과 활동』, 국사편찬위원회, 1996.      &lt;br /&gt;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30: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국사편찬위원회, 1998.      &lt;br /&gt;
*김돈, 『조선 전기 군신 권력 관계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lt;br /&gt;
*김돈, 『조선 중기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9.      &lt;br /&gt;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성종·연산군·중종과 그 신하들』, 역사비평사, 2007.      &lt;br /&gt;
*이병휴, 『조선 전기 사림파의 현실 인식과 대응』, 일조각, 1999.      &lt;br /&gt;
*최이돈, 『조선 중기 사림 정치 구조 연구』, 일조각, 1994.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정치운영]][[분류:정쟁·정론]][[분류:사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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