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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여도(自如道)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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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자여도|한글표제=자여도|한자표제=自如道|대역어=|상위어=|하위어=근주역(近珠驛), 신풍역(新豐驛), 안민역(安民驛), 창인역(昌仁驛), 영포역(靈浦驛), 김해신역(金海新驛), 남역(南驛), 금곡역(金谷驛), 덕산역(德山驛), 성법역(省法驛), 적항역(赤項驛), 자여역(自如驛), 양민역(良民驛), 보평역(報平驛), 춘곡역(春谷驛), 대산역(大山驛), 양동역(良洞驛)|동의어=|관련어=김주도(金州道), 소촌도(召村道), 사행로(使行路), 역도(驛道), 속역(屬驛), 찰방(察訪), 역승(驛丞)|분야=경제/교통/육운|유형=개념용어|지역=|시대=|왕대=|집필자=조성운|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44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va_11109030_001 『정조실록』 11년 9월 30일], [http://sillok.history.go.kr/id/kza_10909019_001 『고종실록』 9년 9월 19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경상도 창원의 자여역을 중심으로 편성한 역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자여도(自如道)는 고려시대의 김주도(金州道)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종 연간에 역제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설치되었으며, 1460년(세조 6)에는 소촌도에 통합되었다가 1462년(세조 8)에 역도-속역 체제가 완성되면서 복설되었다. 일본으로 가는 사행로에 위치하여, 사행과 관련한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자여도는 [[사근도(沙斤道)]]·[[안기도(安奇道)]]·[[유곡도(幽谷道)]]·[[김천도(金泉道)]]·성현도(省峴道)·[[황산도(黃山道)]]·[[소촌도(召村道)]]·[[장수도(長水道)]]·[[송라도(松羅道)]]·[[창락도(昌樂道)]]와 더불어 경상도 지역에 설치된 [[역도(驛道)]]이다. 함안-창원-김해-밀양-양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와, 창원-웅천-칠원 방면으로 연결되는 역로를 관할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태조실록』에 따르면, 1396년(태조 5) 7월에 고려시대의 5도양계(五道兩界)를 개편하면서 서북면의 군현을 개정하고, 1398년(태조 7)에는 동북 지방의 역을 정비, 신설하면서 함경도 지역의 역도를 개편하였다. 그 뒤 1423년(세종 5) 7월에는 경상도 지역에 [[황산도(黃山道)]]와 성현도(省峴道)를 설치하고 [[역승(驛丞)]]을 파견하여, 경상도의 역도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종대에는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역도 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자여도는 [[근주역(近珠驛)]]·신풍역(新豐驛)·[[안민역(安民驛)]]·[[창인역(昌仁驛)]]·[[영포역(靈浦驛)]]·김해신역(金海新驛)·대산신역(大山新驛)·남역(南驛)·금곡역(金谷驛)·덕산역(德山驛)·성법역(省法驛)·[[적항역(赤項驛)]] 등 12개 속역으로 편성되었다. 1457년(세조 3)에는 자여도를 소촌도에 통합하도록 했는데, 이 조치는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거나 잠시 시행된 뒤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1460년에 다시 소촌도에 속한 65개 역과 자여도에 소속된 13개 역을 통합해 소촌도라 하였기 때문이다. 자여도는 그 뒤 1462년에 자여역·근주역·양민역(良民驛)·신풍역·[[보평역(報平驛)]]·춘곡역(春谷驛)·파수역(巴水驛)·적항역·성법역·남역·덕산역·금곡역·대산역(大山驛) 등 13개 역을 속역으로 하는 역도로 복설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인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자여도에는 신풍역·근주역·안민역·성법역·적항역·남역·금곡역·대산역·창인역·영포역·파수역·춘곡역·보평역(保平驛)·[[양동역(良洞驛)]] 등 14개 역이 소속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한편, 자여도는 일본으로 가는 사행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행과 관련된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다. 1787년(정조 11)에는 [[왜관(倭館)]]을 자여도의 웅천에서 황산도의 동래로 이설했으므로 자여도의 복호(復戶)를 황산도로 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109030_001 『정조실록』 11년 9월 30일]). 왜관이 웅천에 있을 때 마련한 복호 2,000여 결을 황산도로 이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정의 논의는 왜관 관리에 많은 비용이 들었음을 시사한다.&lt;br /&gt;
&lt;br /&gt;
또한 1872년(고종 9)에는 자여도에 포수 40명을 배속하였는데([http://sillok.history.go.kr/id/kza_10909019_001 『고종실록』 9년 9월 19일]), 이는 강화도조약 이후 경상도 해안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판단된다.&lt;br /&gt;
&lt;br /&gt;
영조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자여도에는 [[역리(驛吏)]] 1,790명, 역노(驛奴) 121명, 역비(驛婢) 53명과 역마 170필이 배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1872년(고종 9)에 편찬된 『경상도역지(慶尙道驛誌)』에는 자여도의 역마가 대마 13필, 중마 30필, 소마 93필 등 총 136필로 기록되어 있어, 그 수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 자여도의 중심역인 자여역에는 창고(倉庫)·관수고(官須庫)·아사(衙舍)가 총 8칸, 문루(門樓) 3칸, 마랑(馬廊) 10칸, 인리청(人吏廳) 7칸, 통인청(通引廳) 3칸, 관노청(官奴廳) 3칸, 사령청(使令廳) 3칸이 있었다.&lt;br /&gt;
&lt;br /&gt;
자여도는 1896년(고종 33)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lt;br /&gt;
&lt;br /&gt;
[[파일:P00012448_01.PNG|300px]]&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여지도서(輿地圖書)』      &lt;br /&gt;
*『만기요람(萬機要覽)』      &lt;br /&gt;
*『경상도역지(慶尙道驛誌)』      &lt;br /&gt;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lt;br /&gt;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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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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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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