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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영(日影)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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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3T08:35:4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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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09: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자연현상|대표표제=일영|한글표제=일영|한자표제=日影|대역어=해의 그림자, 해시계|상위어=|하위어=|동의어=앙부일구(仰釜日晷),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관련어=간의(簡儀), 규표(圭表), 소간의(小簡儀), 소규표(小圭表), 소일성정시의(小日星定時儀), 소일영(小日影), 소정시의(小定時儀), 일영대(日影臺)|분야=문화/과학/천문|유형=자연(현상)|지역=|시대=|왕대=|집필자=안상현|발생지역=|관할기관=|관련의식=|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7256|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10002_004 『세종실록』 16년 10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ea_10105015_005 『문종실록』 1년 5월 15일], [http://sillok.history.go.kr/id/kma_10211002_003 『명종실록』 2년 11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ma_10305007_004 『명종실록』 3년 5월 7일], [http://sillok.history.go.kr/id/kma_10411024_003 『명종실록』 4년 11월 24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810022_007 『중종실록』 8년 10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2810018_001 『중종실록』 28년 10월 18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3405004_002 『영조실록』 34년 5월 4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4009001_006 『영조실록』 40년 9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3405004_002 『영조실록』 34년 5월 4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305011_004 『성종실록』 3년 5월 11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904015_003 『세종실록』 19년 4월 15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002029_004 『세종실록』 20년 2월 29일]}}&lt;br /&gt;
&lt;br /&gt;
태양이 드리우는 그림자란 뜻으로, 일영(日影)을 이용하여 시각을 측정하는 앙부일구(仰釜日晷)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됨.&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일영은 기본적으로 태양의 그림자를 뜻하는 일반 명사이다. 세종 때 만든 대규표(大圭表), 소규표(小圭表), 간의(簡儀), 소간의(小簡儀), 앙부일구, 일성정시의와 같은 천체 관측 기기들은 일영을 관측했다. 그래서 그중에서 특히 해시계로 사용된 앙부일구와 일성정시의를 지칭할 때도 일영이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일영은 간의, 소간의, 일성정시의, 앙부일구와 같이 해의 그림자를 관측하여 시각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사용되는 관측 기기와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여 일 년의 길이 즉 회귀년과 위도와 지구 자전축의 황도 경사각 등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등의 기능을 설명할 때 사용된 용어이다.&lt;br /&gt;
&lt;br /&gt;
① 일영이 해의 그림자란 뜻으로 사용된 예는 다음과 같다. 세종 때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제작하여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여 일영을 관측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10002_004 『세종실록』 16년 10월 2일]). 혜정교는 현재 서울 종로(鐘路)의 광화문우체국 근처에 있던 다리이고, 그곳에서부터 종묘 앞까지 나 있는 거리가 지금의 종로이다. 이 두 앙부일구는 백성들이 시간을 잴 수 있게 도성 번화가에 설치한 것이다.&lt;br /&gt;
&lt;br /&gt;
문종 때에는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있던 간의대(簡儀臺) 및 정선방(貞善坊)·혜정교에 있던 앙부의 즉 앙부일구로 하짓날 일영을 측량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ea_10105015_005 『문종실록』 1년 5월 15일]).&lt;br /&gt;
&lt;br /&gt;
1547년(명종 2)에는 종묘의 동쪽 입구와 혜정교에 있던 두 앙부일구와 간의대에 있던 대규표와 소규표로 일영의 길이를 측량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ma_10211002_003 『명종실록』 2년 11월 2일]). 이듬해인 1548년(명종 3) 하지에 혜정교의 앙부일구와 종묘의 앙부일구로 태양행도(太陽行度)를 측정하였더니 주영(晝影), 즉 낮의 일영이 모두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ma_10305007_004 『명종실록』 3년 5월 7일]). 또한 1549년(명종 4) 동짓날에 혜정교와 종묘의 두 앙부일구와 간의대에 있는 대규표와 소규표로 일영을 측후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ma_10411024_003 『명종실록』 4년 11월 24일]).&lt;br /&gt;
&lt;br /&gt;
세종 때에는 장영실(蔣英實)이 경복궁에 보루각루 즉, 자격루를 만들었고, 중종 때는 창경궁에도 자격루를 한 벌 더 만들었다. 명종 때는 이 새로운 자격루의 시각을 해시계의 시각과 동조시키기 위해, 창경궁 남쪽의 종묘에 있던 앙부일구와 창경궁의 새로운 보루각(報漏閣), 그리고 외관상감(外觀象監)의 일영을 측정하여 교정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외관상감은 현재 창덕궁 서쪽 광화방(廣化坊) 즉 현재의 계동에 있었으며, 여기서의 일영은 해시계로 사용되는 관측 기기인데 아마도 세종 때 제작하여 관상감(觀象監)에 지급한 일성정시의일 것으로 보고 있다.&lt;br /&gt;
&lt;br /&gt;
② 일영이 앙부일구를 뜻하는 경우가 있다. 앙부일구가 그림자를 측정하여 시간을 정하는 해시계이므로 일영이 해시계 기능을 가진 관측 기기를 뜻하게 되었던 것이다. 관상감과 궁궐 내부의 몇 군데에 앙부일구를 설치하였다. 특히 경복궁의 남서쪽 모퉁이 구역에 있던 관상감 근처 승정원 앞에 일영대(日影臺)가 있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를 줄여서 영대(影臺)라고도 불렀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0810022_007 『중종실록』 8년 10월 22일]).&lt;br /&gt;
&lt;br /&gt;
이때의 관상감은 궁궐 담의 안쪽에 있어서 내관상감(內觀象監)으로 불렀다. 중종 때는 “어떤 도둑이 1백 년이나 전해 내려온 일영대를 뜯어 훔쳐 갔다.”는 기록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2810018_001 『중종실록』 28년 10월 18일]). 일반 백성이 뜯어 훔쳐 갈 수 있는 것이라면 감시가 허술한 혜정교와 종묘에 있던 앙부일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명종 때의 앙부일구 관측 기록에 따르면 두 곳 모두 앙부일구가 존재해야 하므로, 중종 때 앙부일구를 잃어버린 후 복원했거나 다른 곳의 앙부일구를 가져다가 보충했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종묘 앞에 설치한 앙부일구를 특히 일영대라고 부른 증거가 있다. 1758년(영조 34)에 영조는 ‘종묘 앞에 놓아둔 돌은 바로 일영대’라면서 그곳의 기원담을 신하들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열성조(列聖朝)가 미행하시다가 노파를 하나 만났는데, 그가 남편에게 이르기를, ‘세성(歲星)이 적성(賊星)에게 쫓겨 유성(柳星) 아래로 들어갔다.’고 하는 것을 보고, 그 노파를 서운관(書雲觀)에서 일할 수 있게 하였는데, 그 일영대는 그 할멈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3405004_002 『영조실록』 34년 5월 4일]).&lt;br /&gt;
&lt;br /&gt;
그런데 몇 년 뒤인 1764년(영조 40) 어느 날, 영조에게 상소를 올린 백성 가운데 일영방(日影坊)에 사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본 영조가 승지에게 그 동네의 이름에 대한 고사를 말해준다. 옛날 성종대왕이 미행하다가 일영대의 버드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어떤 노인이 밤에 천문을 보다가 괴이하게 여기며 말하기를, “자미성(紫微星)이 유성 밑에 숨어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성종이 그 노파를 서운관에서 일하게 하였고, 그 노파를 위해 일영대를 설치했으며, 또한 그 일영대가 있던 동네 이름도 그때 일영방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4009001_006 『영조실록』 40년 9월 1일]). &lt;br /&gt;
&lt;br /&gt;
이러한 정보를 종합하면, 서울의 옛 지명 중 일영방에 일영대가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조선시대 지도와 각종 문헌 자료를 통해 그 일영방 또는 일영대계(日影臺契)가 오늘날의 서울시 중구 무교동 및 서린동 일대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현재 종로의 시작점인 종각 부근인데 이 근처에 혜정교가 있었다. 따라서 혜정교에 두었던 앙부일구를 일영이라 하고 그것을 놓아둔 대(臺)를 일영대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있던 동네를 일영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영조는 “종묘 앞에 놓아둔 돌은 바로 일영대이다.”라고 하고 있는데([http://sillok.history.go.kr/id/kua_13405004_002 『영조실록』 34년 5월 4일]), 이것은 당시에 혜정교 일영대는 앙부일구도 일영대 자체도 사라지고 다만 마을 이름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영조가 혼동을 일으킨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말기에는 종묘 앞에 앙부일구는 없이 그것을 놓아두었던 석대만 남아 있었는데 그 일영대 석대는 현재 탑골공원으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성종 당시에 일영대가 혜정교의 앙부일구와 그 대를 말함을 알려주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도성 안의 저자를 연지동(蓮池洞) 입구에서부터 돈의문(敦義門) 석교(石橋)까지 죽 분산해서 늘어놓자는 성종의 제안에 대해 호조에서 다시 건의하기를 “삼간병문(三間屛門)에서 돈의문 석교까지는 지세가 좁고, 또한 창덕궁·종묘·의금부의 앞길은 번잡하게 만들면 안 되므로, 저자를 일영대에서부터 연지동까지 좌우에 나누어 분산 배치하자.”고 하여 그렇게 따랐다고 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305011_004 『성종실록』 3년 5월 11일]).&lt;br /&gt;
&lt;br /&gt;
지명들을 고증해보면, 여기의 일영대는 혜정교 부근에 있었음이 자명하다. 혜정교에서 연지동에 이르는 길이 바로 오늘날의 종로인 것이다. 즉 영조가 말한 성종 때의 일영 노파의 전설에 나오는 일영대도 바로 혜정교에 있었던 일영대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③ 일영이 일성정시의를 뜻할 때도 있다. 1437년(세종 19)에 일성정시의가 완성되어 4벌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용으로 장식을 한 것으로 내정(內庭)에 설치했고, 3벌은 용 장식이 없이 만들었는데, 하나는 서운관에 주었고 나머지 둘은 각각 함길도와 평안도의 절제사 영(營)에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저자 미상인 ‘경복궁도’를 보면, 경복궁 강녕전 동쪽에 규모가 제법 큰 대가 있고 거기에 일성의(日星儀)라고 적혀 있다. 즉 이것이 내정에 설치한 일성정시의이다. 나머지 하나는 현재의 계동에 있었던 외관상감에 있던 일영으로 본다.&lt;br /&gt;
&lt;br /&gt;
한편 1437년에 일성정시의를 만들 때 그것이 너무 무거워서 군대에서 행군할 때 불편하므로 정극환을 없애고 소일성정시의(小日星定時儀)를 만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904015_003 『세종실록』 19년 4월 15일]). 이듬해인 1438년에 “소행루(小行漏), 누주통의(漏籌通義), 소일영(小日影)을 의주에 보내었다.”는 기록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002029_004 『세종실록』 20년 2월 29일]).&lt;br /&gt;
&lt;br /&gt;
여기서 소일영은 낮에 일영으로 시간을 잴 수 있는 관측 기기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소행루는 물시계이고 소일영은 해시계이며, 누주통의는 절기별로 달라지는 물시계의 잣대 눈금을 정의한 것인데 『중성기(中星記)』와 함께 사용되어 물시계와 해시계의 시간을 일치시키는 데 사용되므로 이것들은 밤과 낮의 시간을 정하고 동기화하는 데 필요한 한 벌의 관측 기기들이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세종 때 만든 천문 관측 기기 중에서 해시계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간의, 일성정시의, 앙부일구 등이 있다. 그중에서 앙부일구는 소(小)앙부일구를 만든 적이 없고, 소간의는 물론 해시계로도 사용할 수 있으나 주로 관상감에서 밤에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남는 것은 소(小)일성정시의뿐이다. 따라서 소일성정시의를 소일영이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④ 『증보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보루각 근처, 시강원(侍講院)의 동쪽에 일영대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곳은 정확하게 오늘날 창경궁에 있는 보물 제851호 관천대(觀天臺)와 일치한다. 특히 ‘동궐도(東闕圖)’에 따르면, 그 일영대의 위치는 옛날 금루(禁漏)의 터 바로 남쪽, 춘방(春坊) 즉 시강원의 옆에 있으며, 거기에 표시된 계단식 대(臺)에는 일성정시의가 또렷이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관천대는 잘못된 이름이며 일영대 또는 일성정시의대(日星定時儀臺)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한편 ‘서궐도(西闕圖)’에 따르면, 경희궁에 있던 관상감의 계단식 대에도 일영대라고 적혀 있다. 이곳도 일성정시의를 놓아두었던 곳으로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남문현, 『장영실과 자격루』,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lt;br /&gt;
*민병희·이기원·안영숙·이용삼, 「조선시대 관상감과 관천대의 위치 변천에 대한 연구」, 『천문학논총』 제25권 제4호, 2010.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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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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