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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출장(印出匠)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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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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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인출장|한글표제=인출장|한자표제=印出匠|대역어=|상위어=경공장(京工匠), 공장(工匠), 관장(官匠), 외공장(外工匠), 장인(匠人)|하위어=|동의어=인수(印手)|관련어=감인청(監印廳), 교서관(校書館), 금속활자(金屬活字), 인쇄(印刷)|분야=정치/행정/관속|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최영숙|제정시기=|폐지시기=1907년|소속관서=공조(工曹), 교서관(校書館), 주자소(鑄字所)|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96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3504025_001 『중종실록』 35년 4월 25일], [http://sillok.history.go.kr/id/kna_10603017_002 『선조실록』 6년 3월 17일]}}&lt;br /&gt;
&lt;br /&gt;
서책을 인쇄하던 장인.&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인출장(印出匠)은 조선시대에 인쇄를 담당했던 [[주자소(鑄字所)]]나 서적 간행을 담당하던 [[교서관(校書館)]]에서 인쇄를 담당했던 장인을 말하며 인수(印手)라고도 하였다. 또는 [[사섬시(司贍寺)]]에서 닥나무 종이로 만든 저화를 인쇄하던 장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경전과 학술 서적·개인 문집 등의 간행이 활발하여 인쇄를 담당하던 인출장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서적의 간행은 인출장뿐만 아니라 [[각자장(刻字匠)]]과 [[주장(鑄匠)]], [[목장(木匠)]], [[균자장(均字匠)]] 등 다양한 장인의 분업으로 이루어졌으며, 직무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정에 의해 상벌이 적용되었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태종은 우문정책(右文政策)을 펴기 위해 책을 널리 보급하려 하였다. 이에 조정에는 주자소나 교서관과 같이 서적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서들이 적극적으로 설치되었고, 전 시대에 걸쳐 수많은 서적들이 간행되었다.&lt;br /&gt;
&lt;br /&gt;
인출장은 서적을 간행하는 과정에서 미리 준비된 목각판이나 목활자판·금속활자판에 먹물을 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바렌으로 문질러서 한 장씩 인출해내는 인출 과정을 담당한다. 그러나 서적의 인쇄에는 인출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인이 필요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주자소에는 인쇄와 관련된 전문 장인으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야장(冶匠)]] 6명, 글자를 나란히 배열하는 균자장 40명, 인쇄를 담당하는 인출장 20명, 글자를 주조하는 각자장 14명, 구리를 주조하는 주장 8명, 주조된 활자를 다듬는 [[조각장(雕刻匠)]] 8명, 인쇄 판형에 필요한 목재를 다루는 목장 2명, 종이를 재단하는 [[지장(紙匠)]] 4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 장인의 구성을 보면 활자의 주조에서 책자 인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전문 분야별로 나누어져 분업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서적의 간행에 관련된 장인들에게 내린 상벌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473년(성종 4)에는 세종·문종·세조·예종의 실록의 인출을 끝낸 공을 인정하여 관계자들에게 호피(虎皮)·녹피(鹿皮) 등을 하사한 기록과 중종대에도 실록청의 인출장에게 포상한 기록이 나와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3504025_001 『중종실록』 35년 4월 25일]). 특히 1543년에 간행된 법전인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 기술된 서적 간행에 관계된 규정과 1563년(명종 18) 3월 13일의 승전(承傳) 내용을 거론한 기사가 있어 당시 서적의 인쇄에 대한 상황을 말해준다. 그 내용을 보면 서책을 인쇄할 때 참여했던 장인들은 한 권에 한 자의 착오가 있으면 30대의 곤장을 맞고, 한 자씩 더 틀릴 때마다 한 등급씩 더 엄한 벌을 받는다. 그리고 인출장은 한 권에 먹이 진하거나 희미한 글자 한 자가 있을 때 30대의 매를 맞고 한 자가 더할 때마다 벌이 한 등을 더했다. 또 관리·감독을 하는 교서관은 다섯 자 이상 틀렸을 때는 파직되었고, 교정을 담당하던 [[창준(唱準)]] 이하의 장인들은 매를 맞은 뒤 50일의 근무 일자를 깎았다. 그러나 1563년 3월 13일의 승전에는 글자가 틀린 것에 대해 곤장 100대 정도로 조율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조선시대 서책을 간행함에 매우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0603017_002 『선조실록』 6년 3월 17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각수가 판각한 목판으로 인출하는 목판 인쇄술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을 신라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751년경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본이다. 목판본은 한번 새겨놓으면 계속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후 활자 인쇄가 보급된 이후에도 조선후기까지 계속되었다. 활자 인쇄는 활자를 한 자씩 또는 드물게는 몇 자씩 붙여서 제작하여 인판에 배열한 뒤 먹물을 칠하여 찍어내는 인쇄법이다. 활자는 한번 만들어놓으면 조판에 따라 계속 다른 책들을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목활자 및 금속활자 인쇄가 개발된 이후에는 서적의 간행이 더욱 활발해졌다.&lt;br /&gt;
&lt;br /&gt;
고려시대에는 인쇄술의 발달에 따라 관아와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 경전 간행을 비롯한 서적 인출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인쇄술을 바탕으로 유교 경전 및 각종 서적들의 간행을 위한 인출이 어느 시기보다도 활발하였다. 특히 국초부터 서적원, 교서관, 주자소, [[집현전(集賢殿)]], [[간경도감(刊經都監)]] 등 서적 간행과 관련된 여러 기관들을 적극적으로 설치하고 다양한 서적들을 출간하였기 때문에 인출장을 비롯한 인쇄에 관계된 장인들의 수요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삼국사기(三國史記)』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lt;br /&gt;
*『대전회통(大典會通)』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
*『국조보감감인청의궤(國朝寶鑑監印廳儀軌)』      &lt;br /&gt;
*천혜봉, 『한국 서지학』, 민음사, 1997.      &lt;br /&gt;
*청주고인쇄박물관, 『인쇄술과 역사발전』, 청주고인쇄박물관, 2012.      &lt;br /&gt;
*옥영정, 「조선시대 인쇄관청의 활자인쇄장인 연구」, 『韓國文化』 제47호, 2009.      &lt;br /&gt;
*임호원, 「조선시대 금속활자인쇄 조판술의 변천 분석」, 경북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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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관속]][[분류:직역]][[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조선]]&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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