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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군색(二軍色)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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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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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이군색|한글표제=이군색|한자표제=二軍色|대역어=|상위어=병조(兵曹)|하위어=|동의어=|관련어=기병(騎兵), 보병(步兵), 병포(兵布), 군포(軍布)|분야=경제/재정/역|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손병규|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731|실록연계=}}&lt;br /&gt;
&lt;br /&gt;
조선후기 기병과 보병의 보포 및 대궐 안팎에 고립 인원을 관리하는 병조 소속의 관서.&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원칙적으로 [[기병(騎兵)]]은 1호를 4명으로, 보병(步兵)은 1호를 3명으로 편성하였다. 서울에서 번을 서는 [[상번(上番)]]은 1년에 6번으로 나누어 수행되었는데, 궁궐과 종묘·사직·전·궁 등에서 파수를 섰다. 상번하지 않는 기병과 보병에게는 군포를 징수하여 각 소속 관청의 재정에 충당하였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모든 관청 원역의 급료는 호조에서 받고, 군포는 병조에서 받았다. 이것을 각각 호료(戶料)와 병포(兵布)라고도 하였다. 상번하지 않는 기병과 보병의 총수는 94,872명이었다. 이들에게 [[보포(保布)]]를 징수하였는데, 간혹 돈이나 삼베로 내는 것도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경기도와 강원도는 전부 돈으로, 삼남 지방과 황해도는 돈과 무명을 반반씩, 경상·전라도의 일부 읍에서는 삼베로, 그 밖의 지역은 무명으로 바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이군색에는 상번군을 배정하였다. 공문을 발송하여 각 도의 병영에 지시하면 복무하는 군병은 모두 호(戶) 안에서 포를 징수하여 여비와 행장을 마련하였다. 상경한 당번군을 전달 25일에 이군색당상관이 도총부당상관과 합석하여 도별로 나누어 일일이 점검한 뒤 [[위장소(衛將所)]]로 내려 보냈다. 위장소에서는 그들이 복무할 곳을 배정하여 파송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당번병이라 할지라도 복무당번의 기한까지 도착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무명 2필 이상을 변상시켰다. 그중 2/3는 병조에, 나머지는 이군색에 지급하여 경비에 충당하였다. 이군색 정랑이 이러한 출납업무를 전담하였다. 매년 초에 전년도의 수입과 지출을 결산한 뒤 예산안을 만들고, 그에 대한 간단한 의견을 덧붙여[附箋] 보고한 뒤 집행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1750년(영조 26) 균역법의 시행으로 양역에 부과하는 군포의 필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균역법 이전에는 8번 교대로 1명당 2필이던 것을 1필로 감한 것이었다. 1764년(영조 40) 파주에 [[방어영(防禦營)]]이 설치된 후 영의 기병과 보병이 납입하는 포가 부족하자, 균역법 시행 후 줄어든 군포수를 [[균역청(均役廳)]]에서 지급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대전회통(大典會通)』      &lt;br /&gt;
*『만기요람(萬機要覽)』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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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경제]][[분류:재정]][[분류:역]][[분류:직역]][[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시대]][[분류:조선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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