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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원위(柔遠衛)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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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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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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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유원위|한글표제=유원위|한자표제=柔遠衛|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 부령도호부(富寧都護府), 온성도호부(穩城都護府), 종성도호부(鍾城都護府)|분야=정치/군사·국방/편제|유형=집단·기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세종~?|집필자=윤훈표|설치시기=세종|폐지시기=?|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035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1008_002 『세종실록』 16년 1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311119_003 『세종실록』 23년 윤11월 19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영안도(永安道)의 종성도호부(鍾城都護府), 온성도호부(穩城都護府), 부령도호부(富寧都護府),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에 설치한 토관(土官) 서반(西班)의 위호(衛號).&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세종대 중엽 이후에 두만강 유역에 대한 본격적인 개척 사업을 실시하면서 이른바 육진(六鎭)을 차례로 설치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진에 아울러 토관을 두었다. 그러나 주변 정세의 변동과 환경 및 지형 조건 등의 고려로 인하여 위치라든가 명칭이 자주 바뀌었다. 그로 말미암아 토관제도 여러 차례 개편되었다.&lt;br /&gt;
&lt;br /&gt;
1434년(세종 16) 처음 두었을 때 경원(慶源)의 토관 서반의 위호가 유원위(柔遠衛)였으며, 영북진(寧北鎭)의 그것은 [[회원위(懷遠衛)]]였다. 그 뒤에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경원과 회령(會寧)의 토반 서반 위호는 회원위가 되었으며, 그 나머지 4진의 경우에는 1451년(문종 1)에 부령에 토관이 설치되는 것을 끝으로 모두 유원위가 서반의 위호가 되었다.&lt;br /&gt;
&lt;br /&gt;
=='''설립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1434년(세종 16) 1월에 6진 가운데 경원과 영북진에 처음으로 토관을 설치하였다. 이때 각 품의 칭호를 기존에 이미 있었던 함흥토관(咸興土官)의 예를 그대로 따른다면 같은 도 안에 있는 세 곳의 토관 칭호가 모두 동일하게 되므로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였다. 또한 변진(邊鎭)에 관직을 신설하여 사기를 북돋우는 뜻도 없어진다면서 두 곳의 각 품 직명을 개정하였는데, 경원의 서반 위호는 유원위, 영북진은 회원위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런데 1434년 10월에 영북부(寧北府)를 다시 영북진으로 낮추고 그 대신 회령진(會寧鎭)을 부로 승격시키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아마도 이것을 계기로 해서 회령부의 토관 서반 위호가 회원위로 되었고, 영북진의 그것은 유원위로 바뀐 것 같다. 원래 애초의 계획에는 영북진의 토관 위호가 유원이었고 경원부의 그것이 회원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1008_002 『세종실록』 16년 1월 8일]). 하지만 막상 설치되었을 때에는 서로 바뀌었다. 즉 영북진과 회령부로 되면서 원래의 계획대로 영북진은 유원위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435년에 영북에 종성군(鍾城郡)이 설치되고 다시 1441년(세종 23)에 종성부로 승격하였다. 그 과정에서 토반 서반도 고스란히 옮겨지고 위호도 유원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온성도호부에도 1441년 토관이 설치되었는데 종성도호부의 예에 의거해서 서반은 유원위로 칭한다고 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311119_003 『세종실록』 23년 윤11월 19일]). 부령은 1449년 도호부로 승격하였고, 마침내 1451년(문종 1)에 토관이 설치되었다. 이때 서반 위호는 회원위였는데, 그 뒤에 유원위로 바뀌었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1462년(세조 8)에 토관 서반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때 경원부 유원위의 경우에는 일령(一領)은 [[사직(司直)]] 1명, 섭사직(攝司直) 2명, [[사정(司正)]] 1명, 섭사정(攝司正) 2명, [[부사정(副司正)]] 1명, 섭부사정(攝副司正) 2명, [[사용(司勇)]] 2명, 섭사용(攝司勇) 2명, [[대장(隊長)]] 5명, [[대부(隊副)]] 10명이고, 이령(二領)은 섭부사직(攝副司直) 3명, 섭사정(攝司正) 3명, 섭부사정(攝副司正) 3명, 섭사용(攝司勇) 4명, [[대장(隊長)]] 6명, [[대부(隊副)]] 10명이었다.&lt;br /&gt;
&lt;br /&gt;
온성과 종성 유원위의 경우에는 일령은 부사직 1명, 섭부사직 1명, 사정 1명, 부사정 1명, 섭부사정 1명, 사용 1명, 섭사용 1명, 섭사용 1명, 대장 4명, [[대부(隊副)]] 6명이고, 이령은 섭부사직 1명, 섭사정 2명, 섭부사정 2명, 섭사용 2명, 대장 4명, 대부 6명이다. 이 당시까지 부령의 서반 위호는 회원위였다. 그 뒤에 유원위로 바뀌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경국대전』에 따르면 종성, 온성, 부령, 경흥의 토관 서반의 유원위에 정6품 여과(勵果)·종6품 부여과(副勵果)·정7품 여정(勵正)·종7품 부여정(副勵正) 각 1명, 정8품 여맹(勵猛)·종8품 부여맹(副勵猛) 각 2명, 정9품 여용(勵勇) 3명, 종9품 부여용(副勵勇) 5명으로 정해졌다.&lt;br /&gt;
&lt;br /&gt;
=='''의의'''==&lt;br /&gt;
&lt;br /&gt;
두만강 유역을 개척하기 위해 설치된 6진 가운데 종성, 온성, 부령, 경흥 등의 4진에 두었던 토관 서반의 위호로서 이주민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군사적인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
*李載龒, 『朝鮮初期社會構造硏究』, 一潮閣, 1984.      &lt;br /&gt;
*李章熙, 「朝鮮初期 土官武職의 性格」, 『韓國史論』7, 國史編纂委員會, 1981.      &lt;br /&gt;
*吉田光男, 「15世紀朝鮮の土官制 － 李朝初期地方支配體制の一斷面－」, 『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군사·국방]][[분류:편제]][[분류:집단·기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세종~?]]&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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