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9A%B0%EB%AC%B4%28%E7%BE%BD%E8%88%9E%29</id>
		<title>우무(羽舞)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9A%B0%EB%AC%B4%28%E7%BE%BD%E8%88%9E%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9A%B0%EB%AC%B4(%E7%BE%BD%E8%88%9E)&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06T05:28: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9A%B0%EB%AC%B4(%E7%BE%BD%E8%88%9E)&amp;diff=4036&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9A%B0%EB%AC%B4(%E7%BE%BD%E8%88%9E)&amp;diff=4036&amp;oldid=prev"/>
				<updated>2017-12-09T15:30: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우무|한글표제=우무|한자표제=羽舞|대역어=|상위어=일무(佾舞)|하위어=|동의어=문무(文舞)|관련어=|분야=문화/예술/음악|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이정희|용도=|재질=|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61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403028_001 『세종실록』 14년 3월 28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4607008_001 『영조실록』 46년 7월 8일]}}&lt;br /&gt;
&lt;br /&gt;
궁중 의식에서 사용되었던 춤의 하나인 [[문무(文舞)]]의 다른 이름[異稱].&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우무(羽舞)라는 명칭은 문무를 춤출 때 꿩의 깃을 도구로 사용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문무를 연행할 때 적(翟)으로 불리는 꿩 깃을 매달은 무구(舞具)와 함께 [[약(籥)]]이라는 구멍이 세 개 뚫린 관악기도 쓴다. 우무라는 용어보다 문무라고 칭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1116년(고려 예종 11)에 중국 송나라에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이 전래될 때 문무가 함께 유입되었으므로, 우무의 연원은 고려시대로 소급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우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우무라는 명칭은 조선전기 세종대부터 등장하며 조선후기에도 간헐적으로 나타난다.&lt;br /&gt;
&lt;br /&gt;
조선전기 세종대의 경우 회례악무(會禮樂舞) 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간무와 우무는 양쪽 섬돌에서 춤춘다는 『서경(書經)』의 문구(文句)가 근거로 제시되었을 때([http://sillok.history.go.kr/id/kda_11403028_001 『세종실록』 14년 3월 28일]) 우무의 용례가 보인다.&lt;br /&gt;
&lt;br /&gt;
조선후기 영조대의 경우 [[일무(佾舞)]]를 추는 사람들을 보니 몸을 굽혔다가 펴고 옆으로 도는 자세가 절주에 전혀 맞지 않았다며 매월 2일·6일·12일·16일·22일·26일에 장악원에 출근하여 연습하는 이륙좌기(二六坐起) 때 연습에 힘쓰라고 독려하는 상황에서 우무의 용례가 나타난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4607008_001 『영조실록』 46년 7월 8일]).&lt;br /&gt;
&lt;br /&gt;
한편 『세종실록』「오례」에는 『악서(樂書)』, 『시경(詩經)』같은 중국 문헌 기록을 인용하여 우무의 역사적인 맥락을 제시하였다. 먼저 『악서(樂書)』에 “[[악사(樂師)]]는 국자(國子)에게 소무(小舞)를 가르치는데, 우무가 그중의 하나이다.”, “무사(舞師)는 우무를 가르쳐서 인솔하여 사방(四方) 제사에서 춤춘다.”, “약사(籥師)는 국자에게 우무를 추는 것과 약을 부는 것을 가르치는 일을 관장한다. 제사에서 우약무(羽籥舞)를 출 때 북을 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우무에 관한 전거로 소개하였다.&lt;br /&gt;
&lt;br /&gt;
또한 오른손에 적을 잡는다는 『시경』의 글귀를 제시한 후, 이른바 우무란 꿩의 깃을 사용하여 [[의장(儀仗)]]으로 삼아 이를 잡고 춤을 추니, 가리기 위함이라는 해석도 곁들여[『세종실록』 오례 길례 서례 악기도설 우무], 우무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악서(樂書)』      &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예술]][[분류:음악]][[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