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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금문(曜金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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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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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건축|대표표제=요금문|한글표제=요금문|한자표제=曜金門|대역어=|상위어=문(門), 창덕궁(昌德宮)|하위어=|동의어=|관련어=경추문(景秋門), 금호문(金虎門), 조종문(朝宗門)|분야=문화/예술/건축|유형=건축|지역=대한민국 서울|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조옥연|일시=건립시기는 1404년(태종 4), 성종 때 액호 지음|장소=창덕궁|규모=정면 1칸|양식=담장솟을문|관련인물=       서거정, 신자건, 인현왕후|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792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8023_007 『성종실록』 6년 8월 23일], [http://sillok.history.go.kr/id/kqa_10910020_001 『효종실록』 9년 10월 20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2004012_003 『숙종실록』 20년 4월 12일]}}&lt;br /&gt;
&lt;br /&gt;
창덕궁의 서북쪽 담장에 있는 문.&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요금문(曜金門)은 창덕궁을 두르는 궁장의 서북쪽에 배치된 문이다. 금호문·경추문과 함께 창덕궁의 서쪽 출입을 관장하였다. 요금문의 북쪽, 후원을 두르는 담장에 조종문이 차례로 놓였다. 성종대에 액호가 없는 대궐문이 많아 왕의 명으로 서거정이 각 문들의 이름을 지었는데, 창덕궁 서장문의 이름을 요금문이라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8023_007 『성종실록』 6년 8월 23일]). 이때 본래 현판의 글씨는 신자건이 썼으나 창덕궁이 중건되던 때에 바뀐 것으로 판단된다.&lt;br /&gt;
&lt;br /&gt;
=='''위치 및 용도'''==&lt;br /&gt;
&lt;br /&gt;
창덕궁의 서쪽 궁장에는 총 5개의 문이 설치되었는데, 남쪽부터 금호문·경추문·요금문·조종문·영승문의 순이다. 요금문은 궁궐 대내와 후원 사이에 있는 문이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고, 요금문 바로 앞 가까이에는 궁궐을 돌아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대보단이 들어서기 전까지 요금문 밖에 군영을 비롯한 중일각, 수문장직소, 수각 등 군사시설이 배치되었다. 요금문 안에는 얼음을 저장하는 빙고, 연산군 때에는 매를 기르는 응방이 들어서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요금문은 대내의 주방에서 물을 긷기 위해, 궁궐을 출입하는 여인들의 수레와 말이 궁궐로 들어올 때 개폐되었으며([http://sillok.history.go.kr/id/kqa_10910020_001 『효종실록』 9년 10월 20일]), 간택 처녀들이 궐내에 들어올 때, 궁인들이 출입할 때에도 요금문을 사용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 및 현황'''==&lt;br /&gt;
&lt;br /&gt;
요금문은 1404년(태종 4)에 창덕궁이 창건될 때 함께 조성되었으며, 성종 때 이름이 정해졌다. 창덕궁 서북쪽의 한적한 장소에 놓여있어 담장이 허물어지는 등의 수난으로 수보하는 일이 잦았다. 현재에도 문이 남아있어 요금문의 위치를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요금문의 요금(曜金)은 ‘빛나는 금빛’이라는 뜻인데 ‘금’이 상징하는 것이 서쪽 또는 가을과 통하기에 요금문이라 이름하였던 것 같다.&lt;br /&gt;
&lt;br /&gt;
「동궐도」에 의하면 요금문은 담장 사이에 있는 솟을문으로 맞배지붕을 이었으며, 용마루 끝에 취두를 장식한 사주문(四柱門)의 구조이다. 문짝이 없이 붉은 장대에 X 표시가 있는데 어떤 용도와 의미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문헌에서 요금문을 개폐하였다는 기사가 자주 나오고 있어 문짝의 존재 여부는 확실하며, 문이 열린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짝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고, 외부로의 출입이 잦은 중요한 문이기에 X 표시된 구조물을 문에 대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현존하는 요금문은 주칠을 한 2짝 판장문이 달려있고, 그 위에 홍살을 올려놓았다.&lt;br /&gt;
&lt;br /&gt;
=='''관련사건 및 일화'''==&lt;br /&gt;
&lt;br /&gt;
숙종대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여러 사건으로 인해 장희빈은 왕비 자리를 다시 인현왕후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숙종이 급한 마음에 왕비의 자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인현왕후를 궁궐로 들인 까닭에 왕후는 정문이 아닌 그녀가 폐비되어 궁궐을 나갈 때 사용했던 요금문으로 다시 들어오는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마침내 인현왕후를 요금문 안쪽 경복당에 머물게 하고 장희빈을 대조전에서 끌어내리는 사건이 일어났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2004012_003 『숙종실록』 20년 4월 12일]). 때문에 요금문과 경복당은 성모라 지칭된 인현왕후의 기념비적인 장소로 회자되곤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lt;br /&gt;
*『일성록(日省錄)』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궁궐지(宮闕志)』      &lt;br /&gt;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
*『한경지략(漢京識略)』      &lt;br /&gt;
*『홍재전서(弘齋全書)』      &lt;br /&gt;
*문화재청 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수류산방, 2007.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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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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