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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와라(瓦刺)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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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7T22:22:5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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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6:59: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와라|한글표제=와라|한자표제=瓦刺|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서몽골(西蒙古), 오이라트(Oyirad), 와랄(瓦剌)|관련어=갈단(Galdan), 마하무(Mahamu), 토곤(Toγon), 후투가 베키(Qutuγ-a beki), 홀도합별흘(忽都合別乞), 준가르(Jegünγar)|분야=정치/외교/외교사안|유형=집단·기구|지역=몽골|시대=|왕대=|집필자=체렝도르지|설치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15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9019_001 『태종실록』 14년 9월 19일]}}&lt;br /&gt;
&lt;br /&gt;
15세기 이후 몽골을 구성하였던 대표 세력 중 하나로, 현재 몽골국·중국·러시아 연방에 사는 몽골계 소수민족.&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와라(瓦刺)는 몽골의 세력 가운데 하나인 오이라트(Oyirad)를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다. 오이라트는 12세기경에 예니세이 강 상류 유역에서 반수렵·반목축 생활을 하던 부족이었다. 칭기즈칸의 몽골 통일 과정에서 후투가 베키([忽都合別乞], Qutuγ-a beki)를 우두머리로 한 오이라트 부가 칭기즈칸의 반대편에서 항쟁을 하였으나, 1207년에 이 지역에 출정한 칭기즈칸의 장자인 주치(Juči)에게 항복하였다. 그 이후 오이라트는 4,000호로 편성되었는데 후투가 베키의 자손들은 대대로 몽골 황금씨족의 부마가 되어 대원 제국 치하에서 특수한 신분을 이루었다.&lt;br /&gt;
&lt;br /&gt;
원나라 통치자들이 중원에서 밀려 몽골 본토로 돌아간 후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분립항쟁이 격화되었다. 이때 오이라트는 부족연합체 형태를 가졌으며 4개의 투멘([萬戶], tüme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이라트는 대칸의 권력이 쇠퇴해짐을 틈타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에센([也先], Esen) 때는 동서 몽골을 일시적으로 통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에센이 살해된 뒤 오이라트는 더 이상 몽골 대칸의 자리를 다투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 이후로 다얀(Dayan) 칸이 몽골을 통일할 때 오이라트는 그 통치를 받았다.&lt;br /&gt;
&lt;br /&gt;
대략 16세기 초부터 오이라트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에르치스(Erčis, [Irtysh]) 강 상류에 살게 되었다. 이후 17세기에 들어와 초로스(Čoros) 부에 의하여 내부의 통일이 이루어져 준가르(Jegünγar: ‘좌익(左翼)’이란 뜻) 제국이 건국되었다. 준가르 제국은 몽골의 패권을 놓고 청나라와 치열한 투쟁을 하였으나 결국 1758년 청나라 군대에게 멸망당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오이라트라는 명칭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삼림(森林, oi)에 사는 사람([民], arad)’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lt;br /&gt;
&lt;br /&gt;
오이라트는 원래 칭기즈칸 시대에 오이라트 부족을 비롯한 오인 이르겐([森林民], oin irgen: ‘숲에 사는 백성’이라는 의미)에 기원을 두는데 몽골 권력자들이 중원에 수도를 두고 있을 때 몽골 본토에서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14세기 말부터 몽골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더욱 강력해졌다. 더욱이 오이라트는 몽골 정통 대칸과 권력을 다툴 정도로 세력이 부상하면서 사실상 몽골은 크게 동몽골과 오이라트 두 세력으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오이라트는 몽골 서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서몽골이라고도 칭하였다. 중국 명나라 때 사료에서는 동몽골은 ‘달단(韃靼)’으로, 오이라트는 ‘와랄(瓦剌)’로 각각 표기되었다.&lt;br /&gt;
&lt;br /&gt;
15세기 초 오이라트의 수장들인 마하무([馬哈木], Mahamu), 타이핑([太平], Taiping, Тайпин], 바투볼드([把禿孛羅], Batubolud)등은 명나라 조정에서 왕호를 수여받았으며 그들 중 마하무가 명나라 지원을 얻어 동몽골과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의 아들 토곤([脫歡], Toγon)은 오이라트 연합체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토곤의 아들 에센(Esen) 때에 이르러서 전 몽골을 일시적으로 통치하기도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에센은 만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권을 형성하고 점차 명나라 북쪽 변방을 침입하여, 1449년 명나라 영종 황제를 포로로 잡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뿐만 아니라 몇 년 뒤에 몽골의 대칸을 몰아내고 스스로 대칸이라 칭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도 이 사건을 전하는데, “와라의 간사한 오랑캐가 궁벽하고 거친 땅에 치우쳐 있으면서 그 더러운 무리와 더불어 해마다 서로 공격하고 살육한 결과 패망(敗亡)하고 실몰(失沒)하여 남은 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9019_001 『태종실록』 14년 9월 19일]).”는 기록이 있다.&lt;br /&gt;
&lt;br /&gt;
에센이 1454년 살해된 뒤 오이라트는 더 이상 몽골 대칸의 자리를 다투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그 이후로 다얀 칸이 몽골을 통일할 때 오이라트는 그 통치를 받았다. 그 이후에도 오이라트는 중앙권력과 대칸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였으며 그때마다 동몽골 귀족들의 탄압을 받았다. 예를 들어, 다얀 칸의 손자 투메드 만호의 통치자인 알탄([俺答], Altan) 칸 및 할하(Qalq-a)의 아바타이(Abatai) 칸 등 동몽골 귀족들에게 각각 복속당하였다.&lt;br /&gt;
&lt;br /&gt;
16세기 말부터 오이라트 동쪽에 위치한 할하가 강력해지면서 오이라트의 서쪽 진출을 더 가속화시켰다. 16세기 초에 알타이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오이라트는 17세기에 들어와서 서·북·남으로 진출하였다. 1608년부터 오이라트 연합체의 한 구성원인 토르구드 부(部)는 서진하여 1620년대 말 볼가 강변에 정착하였다. 또한 호쇼트 부는 남진하여 쿠케 노르[靑海]를 점령하고 더 나아가 티베트까지 지배하였다. 한편 옛 터에 남아 있던 오이라트 부족 중 초로스(Čoros) 부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1671년에 초로스 부 우두머리 갈단(Galdan)에 의하여 오늘날 중국 신강 전역을 차지한 준가르 제국이 건국되었다. 갈단은 오이라트 내부의 통일을 이룩하는 동시에 이웃나라에 대한 정복 원정도 강행하였다. 그는 1680년대에 오늘날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 지역을 정복하여 그 지역 여러 왕국들을 속국으로 만들었고 더 나아가 동쪽 이웃인 할하의 내정에도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갈단은 할하몽골의 패권을 놓고 청나라와 치열한 투쟁을 하였으나 실패로 끝나 1696년 할하가 청나라 지배를 받게 되었다. 갈단의 조카이자 계승자인 체웽랍단(Čevengrabdan, 재위 1697~1727년), 그리고 그 아들인 갈단체렝(Galdančering, 재위 1727~1745년) 때 준가르 제국은 세력을 더 확대시켰으며 청나라에 복속당하였던 다른 몽골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계속해서 청나라와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갈단체렝이 사망한 뒤 벌어진 내란으로 인하여 크게 쇠약해져 결국 1755년 청나라 군대에게 점령당하였다. 아무르사나(Amursanaγ-a)를 비롯한 오이라트 귀족 대부분은 청나라에 반기를 들었지만 차례로 진압되어 준가르 제국이 멸망하였다.&lt;br /&gt;
&lt;br /&gt;
오이라트 인민들은 대량 살육을 당하였고, 살아남은 유민들 중 극소수는 그들의 본거지인 일리(伊犁, Ili)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대다수는 몽골의 홉드 등지에 살게 되었다. 또한 일부는 내몽골 땅에 강제 이주당하였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역할'''==&lt;br /&gt;
&lt;br /&gt;
오이라트는 부족연합체 형태를 가졌으며 15세기 때는 네 개의 투멘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두르벤 오이라트(Dörben oyirad: 네 개의 오이라트)’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시기 투멘이란 개념은 단순히 만호가 아니라 ‘왕국’을 뜻하였기 때문에 오이라트는 네 개의 왕국 연합체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이라트를 구성하였던 부족들은 시기에 따라서 달랐다. 일부 학자들은 오이라트 연합체는 총 3차례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전기(前期) 오이라트 연합체(1437년 형성): ①초로스(Čoros), 토르구드(Torγud), 호쇼드(Qošud)가 합쳐져 하나의 오이라트[부족] ②바르가(Barγu)와 부리야드(Buriyad) ③호이드(Qoyid), 바가투드(Baγatud), 투메드(Tümed) ④우르 몽골(ür mongγol).&lt;br /&gt;
&lt;br /&gt;
중기(中期) 오이라트 연합체(1502년 형성): ①초로스 ②두르베드 ③토르구드 ④호쇼드&lt;br /&gt;
&lt;br /&gt;
후기(後期) 오이라트 연합체(1636년 형성): ①초로스 ②두르베드 ③호쇼드 ④호이드&lt;br /&gt;
&lt;br /&gt;
17~18세기 전반에 초로스는 현재 중국 신강성 이리(Ili), 보르탈라(Borutal-a), 에리엔 하비르가(Eriyen qabirγ-a) 지역에서, 호이드는 타르바가타이(Tarbaγatai)에서, 두르베드는 에르치스 강 유역에서, 호쇼드는 우루무치 (Örümči) 부근에서 각각 거주하였다.&lt;br /&gt;
&lt;br /&gt;
17세기에 들어와서 오이라트인들은 민족 대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1608년부터 오이라트 연합체의 한 구성원인 토르구드 부는 서진하여 1620년대 말 볼가 강변에 정착하였다. 그 후손들은 오늘날 러시아에서 칼미크라는 자치공화국을 세워 살고 있다. 또한 호쇼트 부는 남진하여 후흐노르[청해(靑海)]를 점령하고 티베트까지 지배하였다.&lt;br /&gt;
&lt;br /&gt;
한편 옛 터에 남아 있던 오이라트인들은 준가르 제국을 건국하였는데 이 제국이 청나라에게 멸망당한 후 1771년 볼가 강 유역에 살았던 오이라트(대부분은 토르구드)인들은 오이라트의 본토인 오늘날 신강 지역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 신강 북부에 살고 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만주청나라는 오이라트 준가르 제국을 멸망시킨 후에 1750년대 말 오이라트 유민 대부분을 할하의 서부에 이주시켜 두르베드(Dörbed)의 2개의 출간(ciγulγan) 및 홉드(Qobdu) 지방을 새로 설치하였다. 출간은 맹(盟)으로 해석되는 몽골의 행정단위로, 여러 개의 부족연합을 지칭하였다. 또한 오이라트인으로 구성된 3개의 호쇼를 만들어 할하의 출간들에 귀속시켰다.&lt;br /&gt;
&lt;br /&gt;
1911년 12월 29일 몽골은 독립을 선포하여 독립국가를 세웠다. 이때부터 두르베드의 2개의 출간 및 홉드 지방의 오이라트인들은 몽골국 국민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러시아 연방칼미크 자치공화국과 산지알타이 자방, 그리고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 및 청해성 등지에 오이라트인들이 살고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원조비사(元朝秘史)』      &lt;br /&gt;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흠정외번몽골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lt;br /&gt;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lt;br /&gt;
*Ч. Далай, Ойрад монголын түүх, 1-р боть, Адмон, 2002. (Ch. 달라이, 『오이라트 몽골의 역사』 1권, 애드몬, 2002.)      &lt;br /&gt;
*А. Очир, Монголын ойрадуудын түүхийн товч, 1992. (А. 오치르, 『몽골의 오이라트인 약사』, 1992.)      &lt;br /&gt;
*ШУА-ийн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Адмон, 2003.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편, 『몽골국 역사』, 애드몬, 2003.)      &lt;br /&gt;
*Монгол улсын ШУА, Монголын үндэсний нэвтэрхий толь, 2009. (몽골과학아카데미 편, 『몽골민족백과사전』, 2009.)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외교]][[분류:외교사안]][[분류:집단·기구]][[분류:몽골]]&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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