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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군영(五軍營)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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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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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오군영|한글표제=오군영|한자표제=五軍營|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오군문(五軍門), 오영문(五營門), 오영(五營)|관련어=훈련도감(訓鍊都監), 총융청(摠戎廳), 수어청(守禦廳), 어영청(御營廳), 금위영(禁衛營)|분야=정치/행정/관청|유형=집단·기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후기|왕대=|집필자=오종록|설치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464|실록연계=}}&lt;br /&gt;
&lt;br /&gt;
조선후기에 수도와 그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5개의 군영(軍營).&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를 거치는 동안 설치한 다섯 군영, 즉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총융청(摠戎廳), [[수어청(守禦廳)]], [[금위영(禁衛營)]]을 통틀어 오군영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전기의 핵심 군사 기구인 오위(五衛)는 16세기에 이르러 소속 병종(兵種)의 대부분이 [[군적(軍籍)]]에 이름을 올린 군인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군인이 준 포(布)를 받고 대신 근무하는 수포대립제(收布代立制)가 성행함에 따라 차츰 허구화되고 말았다. 그 결과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중앙군의 주요 병종을 동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여기에 더해 수도의 방위 체제가 무너진 데 대한 반성으로 도성과 수도 주변의 방어를 강화할 목적으로 오위에 속한 주요 병종을 대체하는 새로운 군사 조직을 갖추었는데, 그것이 오군영이었다.&lt;br /&gt;
&lt;br /&gt;
=='''설립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조선후기 중앙군의 선구를 이룬 훈련도감은 1593년(선조 26) 당시 조선의 군사 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유성룡(柳成龍)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명(明)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이 왜구를 물리칠 때 효과를 본 병법을 정리한 『[[기효신서(紀效新書)]]』의 내용을 조선 군사들에게 훈련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이때 훈련도감의 군인으로 조직된 사람들은 서울의 빈민이 주축을 이루었고, 노비 신분의 병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제는 신분 질서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총융청은 1624년(인조 2)에 일어난 이괄(李适)의 난을 계기로, 경기도 북부 지역의 방어를 강화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에 따라 주로 경기도의 군인들로 조직되었는데, 훈련도감과 마찬가지로 조총을 사용하는 군인이 핵심을 이루었다.&lt;br /&gt;
&lt;br /&gt;
수어청은 1626년(인조 4)에 남한산성을 고쳐 쌓고 이를 중심으로 경기도 남부 지역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하여, 역시 경기도의 군인들을 주축으로 설립되었다.&lt;br /&gt;
&lt;br /&gt;
어영청은 1623년(인조 1)에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어융사(御戎使)이귀(李貴)가 모집한 정예 병력 260여 명이 모태가 되었다. 이후 이괄의 난이 일어나 인조가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모은 600여 명의 포수에게 왕의 호위 임무를 부여하여 [[어영군(御營軍)]]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는데, 어영군이 중앙 군영의 체제를 갖춘 것은 인조 말엽부터 효종대에 이르는 동안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금위영은 1682년(숙종 8)에 왕의 호위를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병조에 소속되어 있던 정초청(精抄廳)의 병력과 훈련도감의 [[훈련별대(訓鍊別隊)]]를 합쳐 여기에 배속하였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기능'''==&lt;br /&gt;
&lt;br /&gt;
오군영은 각기 구체적인 조직과 직무의 내용이 달랐으나, 전반적으로 『기효신서』의 속오(束伍) 편제에 따라 편성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lt;br /&gt;
&lt;br /&gt;
훈련도감은 급료를 받는 병력을 중심으로 편제되었다. 그에 비해 다른 4개의 군영은 군역의 의무에 따라 복무하는 향군(鄕軍)이 주축을 이루었고, 급료를 받는 병력은 소수였다. 또 훈련도감은 [[사수(射手)]]와 [[포수(砲手)]], [[살수(殺手)]]의 삼수병으로 구성되었는데, 다른 군영이 생겨날 때까지 기능을 대부분 상실한 오위를 대신하여 왕의 호위와 도성의 방어를 전담하였다.&lt;br /&gt;
&lt;br /&gt;
오군영 체제가 완성되었을 때 훈련도감과 더불어 도성의 방어를 담당한 것은 어영청과 금위영이었다. 나머지 두 군영인 총융청과 수어청은 도성 외곽의 북부와 남부를 각각 방어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도성의 방어가 더욱 중요시되면서 오군영이 도성과 수도를 분담하여 방어하는 체제가 갖추어졌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오군영은 정조 연간에 장용영이 설치되어 국왕의 친위부대로 역할하면서 그 위상이 약화되었다가 정조 사후에 장용영이 혁파되면서 다시 그 역할이 강화되었다. 1881년(고종 18) [[무위소(武衛所)]]에서 이름이 바뀐 [[무위영(武衛營)]]과 새로 설치된 [[장어영(壯禦營)]]에 나뉘어 소속되면서 소멸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설치되었다가, 1884년(고종 21) 중앙군제가 친군(親軍) 5영으로 개편됨으로써 마침내 소멸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김종수, 『조선후기 중앙군제연구 - 훈련도감의 설립과 사회변동』, 혜안, 2003.      &lt;br /&gt;
*배항섭, 『19세기 조선의 군사제도 연구』, 국학자료원, 2002.      &lt;br /&gt;
*차문섭, 『조선시대 군사관계 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5.      &lt;br /&gt;
*최효식, 『조선후기 군제사연구』, 신서원, 1995.      &lt;br /&gt;
*오종록, 「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에 대한 일고찰 - 오군영의 삼수병제와 수성전」, 『사총』33, 1988.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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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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