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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압(睿押)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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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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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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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36: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예압|한글표제=예압|한자표제=睿押|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달자압(達字押), 사도세자(思悼世子), 왕세자(王世子)|분야=정치/행정/문서·행정용어|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조미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989|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1902030_001 『영조실록』 19년 2월 30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사용한 서명.&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예압(睿押)은 왕세자가 사용한 서명으로 왕이 사용하는 어압(御押)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왕세자의 예압 사례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지어준 ‘달자압(達字押)’이 유일하다. 달자압은 영조가 초서체(草書體)로 직접 쓴 것이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예압은 왕세자가 문서에 사용한 서명이다. 왕에 대해서는 ‘어(御)’ 자를 왕세자에 대해서는 ‘예(睿)’ 자를 사용하여 어제(御製)는 예제(睿製), 어압(御押)은 예압(睿押), 어휘(御諱)는 예휘(睿諱) 등과 같이 왕과 왕세자의 지위와 위상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lt;br /&gt;
&lt;br /&gt;
현재까지 왕세자 예압을 사용한 경우는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유일하다. 사도세자의 예압은 『영조대왕훈유(英祖大王訓諭)』라는 탁본첩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1743년(영조 19) 영조는 사도세자의 관례 때에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지어주는 동시에 그 내용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석판 22매에 그대로 새겼다. 그중에는 사도세자의 자(字)를 윤관(允寬)이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세자에게 달자압을 내려주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라고 당부하고 있다. 즉, “나의 압(押)은 통(通) 자인데 예전에 하사받은 것이다. 삼가 힘쓰라는 의미에서 내가 직접 너에게 써주니 장래에 사용하도록 하라. 조만간에 신하들이 지어서 바친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느냐?”라는 내용이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예압인 ‘달’ 자를 초서로 직접 써주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1902030_001 『영조실록』 19년 2월 30일]).&lt;br /&gt;
&lt;br /&gt;
사도세자의 예압이 실제 사용된 사례는 1761년(영조 37) 4월 8일에 사도세자가 평양에 갔을 당시에 작성해준 문서에서 볼 수 있다. 이 문서는 “오늘의 만남은 그 일이 우연히 아니네. 16자의 필적으로 그대의 금권에 짓노라.”라는 4언시와 “신사년 4월 8일에 기성(箕城)에 사는 유학 이대심(李大心)에게 내리니 곧 선조의 후예이며 화의군(花義君)의 후손이다.”라고 하여 문서의 작성 일자와 수취자에 대하여 자세히 기재해두었고, 말미에 영조가 지어준 초서체의 달자압을 기재하였다.&lt;br /&gt;
&lt;br /&gt;
인장과 함께 서명은 공적·사적으로 법적인 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로 문서의 위조를 방지하거나 문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lt;br /&gt;
&lt;br /&gt;
##00015989_그림1_『영조대왕훈유(英祖大王訓諭)』와 석판 일부분&lt;br /&gt;
&lt;br /&gt;
##00015989_그림2_사도세자의 예압 사용 실례&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수원화성박물관 외, 『사도세자』, 2012.      &lt;br /&gt;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돌베개, 2013.      &lt;br /&gt;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 대리청정기 문서 연구」, 『고문서연구』 36 , 2010.      &lt;br /&gt;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문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문서·행정용어]][[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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