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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평부(永平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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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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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영평부|한글표제=영평부|한자표제=永平府|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사행(使行), 연행(燕行)|분야=정치/외교/외교사안|유형=집단·기구|지역=중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이규철|설치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59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ga_10802011_002 『세조실록』 8년 2월 11일]}}&lt;br /&gt;
&lt;br /&gt;
조선 사신단의 사행로 중 한 곳이었던 명의 북직예(北直隸) 지방의 행정구역.&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영평부(永平府)가 조선에서 유명하였던 이유는 사행로 중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사신단은 의주에서 요양, 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갔다. 이때 산해관에서 북경으로 갈 때 지나간 장소 중에 한 곳이 영평부였다.&lt;br /&gt;
&lt;br /&gt;
1421년(세종 3) 명이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조선의 사행은 주로 해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전의 수도였던 남경으로 오고 갈 때에는 조난 등의 사고만 제외한다면 육로보다 편리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명의 북경 천도가 시행되고 난 다음부터는 요동 지역을 통해서 이동하는 육로가 기본 사행로가 되었다.&lt;br /&gt;
&lt;br /&gt;
조선의 사행단은 요양(遼陽)으로부터 안산(鞍山)-해주(海州)-우가장(牛家莊)-사령(沙嶺)-고평(高平)-반산(盤山)-광녕(廣寧)-여양(閭陽)-십삼산(十三山)-소릉하(小凌河)-행산(杏山)-연산(連山)-조장(曹莊)-동관(東關)-사하(沙河)-고령(高嶺)을 거쳐 산해관에 이르렀다. 산해관부터는 심하역(深河驛)-무녕현(撫寧縣)-영평부(永平府)-칠가령역(七家領驛)-풍윤역(豊潤驛)-옥전현(玉田縣)-소주(蘇州)-삼하현(三河縣)-통주(通州)를 지나서 북경에 도착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의 사행단은 영평부를 지나면서 그곳에 있던 관리들을 통하여 주변 지역의 정세 등을 파악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의 주문사(奏聞使)매우(梅佑)가 영평부에서 알고자 했던 정보들은 모두 여진 세력과 몽골 세력의 동정에 관한 것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802011_002 『세조실록』 8년 2월 11일]). 조선과 명에서는 여진과 몽골 세력의 동향을 항상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행 과정에서 관련된 정보를 교환하고자 노력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전요지(全遼志)』      &lt;br /&gt;
*『요동지(遼東志)』      &lt;br /&gt;
*『명사고(明史稿)』      &lt;br /&gt;
*『명사(明史)』      &lt;br /&gt;
*『명통감(明通鑑)』      &lt;br /&gt;
*남의현, 『명대요동지배정책연구』, 강원대학교 출판부, 2008.      &lt;br /&gt;
*김일환, 「연행록에 나타난 ‘구혈대’의 의미 연구」, 『한국문학연구』 43,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2.      &lt;br /&gt;
*김태준, 「중국내 연행 노정고」, 『연행록연구총서』, 숭실대학교 한국전통문예연구소 학술총서, 2006.      &lt;br /&gt;
*박원고, 「2. 명과의 관계」,『한국사』 22, 국사편찬위원회, 1995.      &lt;br /&gt;
*서인범, 「최부 『표해록』 연구-최부가 묘사한 중국의 강북과 요동-」, 『국사관논총』 102, 국사편찬위원회, 2003.      &lt;br /&gt;
*이승수, 「연행로 중 ‘요양-안산-광녕 구간’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검토」, 『한국한문학연구』 47,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1.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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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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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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