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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청문(永淸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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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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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건축|대표표제=영청문|한글표제=영청문|한자표제=永淸門|대역어=|상위어=문(門), 창경궁(昌慶宮)|하위어=|동의어=|관련어=광정문(光政門), 명정전(明政殿)|분야=문화/예술/건축|유형=건축|지역=대한민국 서울|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조옥연|일시=1484년(성종 15)|장소=창경궁|규모=정면 1칸|양식=행각평문|관련인물=|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792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va_11906018_001 『정조실록』 19년 6월 18일]}}&lt;br /&gt;
&lt;br /&gt;
창경궁의 명정전 북쪽 월랑에 있는 작은 문.&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영청문(永淸門)은 명정문, 광정문과 함께 명정전 권역에 있는 작은 문으로 정전 마당을 둘러싸는 북쪽의 행각 즉, 월랑에 있는 문이다. 원래는 행각 안에 방·부엌·마루·창고 등의 부속실들이 가득 차 있었으나, 지금은 열주랑으로 이어진 빈 공간의 월랑으로만 이루어졌다.&lt;br /&gt;
&lt;br /&gt;
영청문의 ‘영청(永淸)’의 의미는 오랫동안 맑은 세상을 염원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 문의 액호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 왕이 정치하는 공간이 맑고 깨끗한 장소이기를 바라서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lt;br /&gt;
&lt;br /&gt;
=='''위치 및 용도'''==&lt;br /&gt;
&lt;br /&gt;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궁궐은 남쪽을 바라본다는 궁궐 제도와 다르게 영건되었다. 창경궁이 지어지던 때에 성종은 신하들에게, 이 궁궐은 왕을 위한 곳이 아니라 대비(大妃)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인 만큼 남쪽을 바라보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창경궁의 명정전도 다른 궁궐의 예와 마찬가지로 조정 마당을 두었고 행각이 마당을 빙 둘러싸 궁궐 법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동행각에는 명정전과 마주 선 정문인 명정문이 서 있고, 영청문은 북행각 사이에 있고, 광정문은 남행각에서 영청문과 마주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정조는 창경궁 동쪽에 아버지의 사당인 경모궁을 새로 마련하고 자주 참배하였으며, 그 때문에 창경궁의 동쪽 담장에 월근문을 설치했다. 정조는 참배를 위해 거둥할 때 대개 영청문을 경유하여 월근문으로 나가 경모궁에 참배하였고, 같은 동선으로 다시 돌아왔다.&lt;br /&gt;
&lt;br /&gt;
=='''변천 및 현황'''==&lt;br /&gt;
&lt;br /&gt;
창경궁은 성종 때 3명의 대비를 위해 조성된 궁이었기 때문에 정전인 명정전의 규모가 근정전이나 인정전과는 다르다. 명정전의 행각은 지금의  열주랑으로 죽 이어진 월랑의 형태와 달리, 행각을 구성하는 부속채들이 복합적인 공간 구성을 하고 있었다. 명정문이 있는 동행각은 측면 2칸이 모두 빈 공간으로 쭉 연결된 월랑이었고, 남행각은 부속실로 꽉 채워졌다. 북행각은 2칸 모두 부속실로 채워졌거나, 안쪽 1칸은 빈 공간인 월랑으로, 바깥쪽 1칸은 창고로 쓰는 방을 둔 복합적인 행각이었다. 영청문은 북행각의 반 월랑 반 행각으로 이루어진 명정전 쪽과 모두 행각으로 구성된 명정문 쪽의 행각이 나뉘는 곳에 놓였다. 1900년대 초까지는 행각도 영청문도 남아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철되었다가 1986년에 복원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행각 사이에 평문으로 조성되어 주칠을 한 2짝 판장문을 달았고, 문의 위쪽에는 안상의 문양대로 구멍을 낸 풍혈을 갖춘 궁판 3칸이 놓였으며, 그 위에 홍살을 두었다. 아름답게 장식한 영청문 편액이 걸려있다.&lt;br /&gt;
&lt;br /&gt;
=='''관련사건 및 일화'''==&lt;br /&gt;
&lt;br /&gt;
1795년(정조 19) 4월에 수원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에 맞춰 성대히 거행하고 궁으로 돌아왔지만, 정조는 막상 혜경궁 홍씨의 탄생일인 6월 18일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어 조촐한 연회를 베풀었다. 내명부들을 포함한 잔치는 연희당에서 있었지만 내연이 열리는 잔치 공간에 신하들은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명정전의 동쪽 곁채와 북쪽 곁채, 광정문 안과 영청문 안에서 외정의 신하들에게 차례대로 위계를 맞춰 상을 내리고 대접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906018_001 『정조실록』 19년 6월 18일]).&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lt;br /&gt;
*『일성록(日省錄)』      &lt;br /&gt;
*『홍재전서(弘齋全書)』      &lt;br /&gt;
*문화재청 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수류산방, 2007.      &lt;br /&gt;
*문화재청,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정밀 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10.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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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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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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