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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성단(靈星壇)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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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자연현상|대표표제=영성단|한글표제=영성단|한자표제=靈星壇|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영성(靈星)|분야=문화/과학/천문|유형=자연(현상)|지역=|시대=|왕대=|집필자=김일권|발생지역=|관할기관=|관련의식=|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06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1304013_001 『태종실록』 13년 4월 13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306008_002 『태종실록』 13년 6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9008_004 『태종실록』 14년 9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2018_005 『세종실록』 12년 2월 18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2019_005 『세종실록』12년 2월 19일]}}&lt;br /&gt;
&lt;br /&gt;
농업의 별인 영성(靈星)에 대해 제사하는 농경의례의 제단.&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영성단(靈星壇)은 영성을 제사하는 [[소사(小祀)]] 급의 제단이며, 한 개의 담장을 두르고 사방으로 계단을 낸 3층 단(壇) 형식을 하였다. 한성부의 영성단은 노인성단(老人星壇), 원단(圜壇) 등과 함께 숭례문 밖 둔지산(屯地山)에 두었다. 제삿날은 신라 이래로 입추(立秋) 후 진일(辰日)을 삼았다. 영성제(靈星祭)는 봄철 농경 시기를 알려주는 용성(龍星) 별자리 혹은 하늘의 논밭을 상징하는 [[천전성(天田星)]] 별자리를 제사하는 농경의례의 일종이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1) 영성을 제사하는 사전(祀典) 제도 정착 과정에서 개진된 그 [[단유(壇壝)]]와 의절(儀節) 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1413년(태종 13) 예조(禮曹)에서 옛 문헌을 참고하여 여러 제사의 제도를 마련하여 올렸다. 소사에 대해서는, 고려의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에서 풍사(風師)·우사(雨師)·뇌사(雷師)·[[영성(靈星)]]·사한(司寒)·마조(馬祖)·선목(先牧)·마보(馬步)·마사(馬社)·[[영제(禜祭)]]·[[칠사(七祀)]]·주현(州縣) 문선왕(文宣王)을 소사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 풍사와 우사는 당나라 현종의 [[천보(天寶)]] 연간 때부터 이미 [[중사(中祀)]]로 들어갔고, 명나라 『홍무예제(洪武禮制)』에는 운사(雲師)를 덧붙여 풍운뇌우(風雲雷雨)의 신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산천신·성황신과 함께 한 제단에서 제사하였는데 조선도 이를 따르기를 요청하였다. 또 송나라 예제에는 주현의 석전(釋奠)도 중사로 하였으니 함께 중사로 승급하기를 청하였다. 왕은 예조의 말에 따라 고려의 소사 중 풍사·우사·뇌사·주현 문선왕제는 중사로 승급하였고, 나머지 영성·사한·마조·선목 등은 소사로 그대로 두어 제사의 기본 안을 마련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304013_001 『태종실록』 13년 4월 13일]). 같은 해 6월에는 예조의 사전 제도 개정안에서 기존 제사에 설치하던 [[신상(神像)]]과 작호를 대폭 혁파·축소하기를 개진하였다. 그러면서 제사의 단유 제도에 대해서는 오직 사직단과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만이 법식대로 축조되었고, 그 나머지 영성·사한·마조·선목·마사·마보·중농(仲農)·후농(後農)의 단유는 아직 축조되지 못했다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306008_002 『태종실록』 13년 6월 8일]). 그러나 곧이어 6월 13일에는 단유의 설치 규정안이 마련되었다. 이를 보면, 선잠단과 영성단은 높이가 3척(尺), 둘레가 8보(步) 4척이고, 4방(方)으로 나가는 계단이 있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1414년(태종 14)에는 소사급에 대한 의주(儀註)를 정하여 왕에게 올렸다. 단군·기자·고려 시조에 대한 제사 의주와 영성·마조·사한·산천에 대한 제사 의주, 기원하는 목적의 사대문 영제의 의주를 정하여 왕에게 올렸고 왕은 이를 따랐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409008_004 『태종실록』 14년 9월 8일]).&lt;br /&gt;
&lt;br /&gt;
세종 때에는 각 도(道)의 단유 제도가 길이와 넓이, 높이가 일정치 않고, 담을 쌓지 않은 곳도 있어 사람과 짐승이 들어가 더럽히는 문제가 있다면서 이를 통일하는 방안을 개진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2018_005 『세종실록』 12년 2월 18일]). 이에 따라 『세종실록』 「오례」에서는 영성단을 소사급의 기준대로 너비 2장(丈) 1척에 높이 2척 5촌(寸)으로 하고, 한 개의 담장을 둔다고 규정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도(京都) 한성부의 영성단은 노인성단과 원단, 풍운뇌우단과 함께 모두 숭례문 밖 둔지산에 있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봉상시(奉常寺) 판관(判官) 박연(朴堧)은 위의 단유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단유의 거리가 좁아 당상(堂上)과 당하(堂下)를 구분하기 어렵고, 또 제향 음악 연주를 위한 [[헌가(軒架)]]를 설치하기가 곤란하다고 하였다. 단상은 신위와 전찬(奠饌)만 설치할 뿐이나 종묘로 치면 제실과 같은 것이므로 모두 2장(丈) 남짓 되어야 하고, [[등가(登歌)]]와 준소(樽所)의 자리, 헌가를 베풀고 [[일무(佾舞)]]를 출 장소를 참작하여 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예컨대, 우리나라 사직단은 단 아래에 낮은 담 하나만을 만들고 위아래 구별이 없는 까닭에, 제사 지낼 때 등가의 금슬을 탈 장소와 당상에서 집례(執禮)가 제사를 진행할 자리가 없다고 하였다. 때문에 집례와 [[공인(工人)]]이 모두 제단 신위의 앞으로 오르고, 준소 또한 단상에 설치하게 되어, 제사 지낼 때 나아가고 물러서는 예의를 손상한다고 하였다. 또한 터가 좁고 너무 가까워 악공이 다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반은 단상에 앉고 반은 단하에 일어설 수밖에 없어 음악 연주를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강(漢江)의 단(壇)은 비록 음악을 사용하는 곳은 아니나, 터가 기울고 가팔라 제단의 터로 마땅치 않다고 하였다. 그 밖에 영성단·노인성단·마조단·마사단 등도 고치고 수리할 곳이 한 군데뿐이 아니니, 꼭 살피어 개정하기를 거듭 요청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2019_005 『세종실록』12년 2월 19일]).&lt;br /&gt;
&lt;br /&gt;
『세종실록』「오례」의 ‘길례서례 시일’에서 영성제는, 한나라·신라 등과 동일하게 입추 후 진일(辰日)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문헌통고(文獻通考)』와 같이 영성을 용성 좌각 천전성으로 보았고 곡식을 주관하는 농경의 별자리라고 하였다. 신위는 영성단 위의 북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자리는 왕골자리로 한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lt;br /&gt;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lt;br /&gt;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      &lt;br /&gt;
*『여씨춘추(呂氏春秋)』      &lt;br /&gt;
*『회남자(淮南子)』      &lt;br /&gt;
*『천문류초(天文類抄)』      &lt;br /&gt;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lt;br /&gt;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lt;br /&gt;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lt;br /&gt;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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